[국제시장 청년몰 '오리책방' 이야기] 무늬만 '청년지원'… 열악한 입지 탓 책방 옮길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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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 시장 청년몰 지원 사업으로 생애 첫 창업은 이뤘지만 열악한 환경 탓에 불과 1년 만에 새로운 곳을 찾아 떠날 준비를 하고 있는 독립서점 '오리책방' 운영자 임성은 씨.

1평에서 1평 반쯤 되려나, 그곳에선 그저 한 칸으로 불렸다. 원래 국제시장 상인들이 창고로 쓰던 공간을 '청년몰' 사업장으로 개발하다 보니 칸칸이 문도 만들 수 없는 구조였다. 할 수 없이 접이식 문, 일명 '자바라'로 겨우 공간 구분은 했지만 냉난방 시설은 언감생심. 할 수 없이 청년들은 난로로 겨울을 버텼다. 매서운 칼바람에 속이 다 시렸다. 올여름은 또 얼마나 무덥던지 여건만 되면 하루빨리 다른 공간으로 이전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

부산 중구 신창동 국제시장 '왔나몰'(1공구 B동 2층)에서 탄생한 독립서점 '오리책방' 이야기다. 지난해만 해도 그곳은 '전통시장에 새 바람을 불어넣는 청년 상인'으로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아기자기한 소품을 파는 업체부터 독립서점, 한글 티셔츠 제작 판매 업체까지 10곳의 청년 창업자들을 불러 모았다. 하지만 불과 10개월 만에 '왔나몰'은 온데간데없이 사람들 기억 속에서 사라졌고 원래의 창고형 빈 점포로 되돌아갔다. 오히려 적든 크든 한 칸 당 5만 원이던 임대료는 인테리어를 하고 나니까 10만 원으로 올랐다.

전통시장 청년지원사업으로
젊은 상인들 속속 찾아왔지만
냉난방커녕 구석진 자리 내몰려
청년 점포 10곳 중 9곳 텅 비어

"책방 하나 보고 광주서 이사
첫 창업이자 제 인생의 꿈
고깃집 알바 뛰며 근근이 유지
청년몰 중 유일하게 남았지만
하루빨리 이전하고 싶어요"

"요즘은 하루 종일 있어도 손님 구경을 거의 못 해요. 책방만 해도 인스타그램을 보거나 전화를 하고 개인적으로 찾아오는 분이 대부분입니다. 새로운 책방 자리를 찾아다니느라 몸도 마음도 분리 상태에요."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지난 17일 오리책방 주인 임성은(28) 씨를 만나러 갔다가 깜짝 놀랐다. '왔나몰' 외부 간판은커녕 오리책방 실내 안내판조차 이미 사라진 뒤였다. 본인도 미처 몰랐다는 듯 너털웃음을 보였다.

"6월 말로 공식 지원은 끝났으니 실제 지원받은 기간은 10개월입니다. 이전에 기본 교육(40시간 필수)과 창업 절차, 세무회계 교육 등 필요한 선발 절차는 진행하면서 2개월이 소요됐어요. 하긴, 이런 것 저런 것 다 떠나서 지금 있는 공간만 괜찮았어도 자부담 인테리어 비용 등을 감안해서 옮기지 않고 영업을 계속 했을 걸요. 올데갈데없는 저 하나 빼고는 다 빠져나간 것만 봐도 장소 선정에 문제가 있었던 게 아닌가 싶어요. 지원은 끝나더라도 자립에 도움이 되는 공간이었다면 훨씬 좋았을 텐데요."

아닌 게 아니라 '국제시장 청년창업지원사업'으로 국제시장 1공구에 들어온 청년 창업자 10명(한 팀은 인테리어 공사까지 마치고 아예 나오지 않았다) 중 오리책방을 제외하면 한 명도 남아 있지 않다. 국가 지원 사업이란 게 성공할 수도 있고 실패할 수도 있지만 '용두사미'가 되어 버린 사업에 대한 반성이나 후속 조치 하나 없이 청년 점포 홍보에만 열을 올리는 것 같아서 화가 났다고 했다. 어쨌든 이번 지원 사업을 통해 창업이라도 해 볼 수 있었던 건 감사했지만 책방 하나만 보고 광주에서 부산으로 이사까지 온 그로선 몹시 황당했다.

부산으로 오기 전 그는 광주 대인시장 활성화 프로젝트에 참여했다. 대인시장 일을 하면서 독립출판물을 처음 접했다. 글을 잘 써서가 아니라 책이 나오기까지 과정이 재밌었다. 정형화되어 있지 않은 것들이 만들어 내는 공감이 좋았다. 이야기가 재밌다 보니 책에도 애착이 가기 시작했다. 그때였던 것 같다. 언젠가 책방을 해 보면 좋겠다고 생각한 게. 대인시장 프로젝트를 끝낸 뒤 편집 디자인 일을 하다가 더 나이 들기 전에 저지르자 싶어 회사 생활을 정리했다.

공간 이야기는 접고 오리책방 이야기로 돌아갔다. 오리책방은 독립출판물을 다루긴 하지만 특정 주제가 있는 건 아니라고 했다. 책방을 열면서 어떤 책방을 열 것인가에 대한 콘셉트도 많이 고민했는데 비주류의 문화에 주목했다고. 어쩌면 동네책방 자체가 대형 서점에선 인정하지 않는 비주류의 문화고, 공간은 작지만 누구나 입고를 문의할 수 있는 공간이 되어야 할 것 같았단다. 최대한 많은 책이 우리 책방을 거쳐 갔으면 하는 바람이 컸다. 책 말고도 엽서와 디자인 문구류도 있지만 이건 개인 공방을 하는 분이거나 소규모 디자인 그룹에서 만든 것이었다.

"처음 시작할 때 100여 종의 책을 들여왔어요. 위탁 판매를 하지 않고 전부 구매했죠. 이러다 보니 통장 잔고는 늘 비었어요. 내 나름의 고집이었지만 독립출판물이란 게 좋아서 가져왔는데 안 팔린다는 이유로 되돌려 보내는 건 더더욱 미안했어요. 죽이 되든 밥이 되든 해 보자 싶었어요. 놔두면 누군가에겐 팔려 나갔으니까요."

물론 많이 팔린 건 아니었다. 그래도 누군가는 찾아왔고, 누군가는 꾸준히 사간다는 게 힘이 됐다. 그래서 더더욱 포기할 수가 없었다. 심지어 지금은 고깃집 서빙을 하루 6시간씩 하면서도 책방을 유지하는 중이다. 한편으론 초조하고, 더 잊히기 전에 옮기고 싶은데 월세나 보증금 걱정 때문에 그마저도 쉽지 않다. 한참 뒤 성은 씨로부터 카톡을 받았다. 그녀가 지난 1년 청년몰을 겪으면서 진짜 서운하게 생각한 내용이 들어 있었다. "저한테는 첫 창업이자 지금 나이까지 품어온 꿈 같은 것이었는데 꿈은 바뀔 수 있다지만 많이 노력해 볼 수 있는 것들이 사라진 것 같아서 정말 아쉬웠어요." 청년들이 왜 청년몰을 떠나는가에 대해선 진지하게 생각해 볼 때다.

글·사진=김은영 선임기자 key66@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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