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백 대의 악기를 나누다, 시민들의 온기를 나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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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악기야놀자' 축제는 시민합주와 악기 체험을 통해 생활문화를 활성화하는 것과 함께 또 하나 중요한 목표가 있었다. 시민들이 사용하지 않는 악기를 기부받아 이를 필요로 하는 복지단체나 아동센터에 전달하는 악기 기부 캠페인이었다. 문화나눔을 확산하려는 취지였다. 부산문화재단은 이번 축제를 앞두고 어떤 악기가 얼마나 필요한지 지역 복지기관과 아동센터로부터 기부 신청서를 받았다.

악기를 처음 배운다는 에이스지역아동센터는 "구청 지원으로 음악 교사가 생겼으나 어린이 20명이 사용할 악기가 없어 수업 진행을 하지 못하고 있다"며 우쿨렐레 20대를 요청했다. "연말 가족과 지인들을 모시고 작은 연주회를 열고 싶다"는 게 소망이었다.

악기 기부 캠페인도 함께 개최
복지기관 등 필요한 악기 요청
시민들 기부로 목표량 채워


풀잎지역아동센터는 클라리넷 10대를 신청했다. "지원사업을 통해 클라리넷을 배운 아이들이 지난 8월 작은 발표회도 열었지만 사업이 끝나고 악기를 반납하게 돼 안타까워하고 있다"며 "이미 배운 아이들은 더 배우고 싶어하고, 배우지 않은 아이들도 클라리넷을 배우고 싶어한다"고 센터 측은 밝혔다. 악기가 없어 강사에게 대여해 사용하는 행복나눔지역아동센터는 수업이 끝나면 악기를 바로 반납해야 해 연습이 안 되고 있다고 했다. 기타 5대로 15명이 수업을 하는 금사나너울지역아동센터의 사정도 딱했다.

이렇게 복지기관과 아동센터에서 기부를 요청한 악기는 우쿨렐레 167대, 어쿠스틱 기타 101대, 오카리나 60대, 바이올린 55대, 플루트 32대, 클라리넷 20대, 피아노 10대, 전자 피아노 12대, 클래식 기타 2대, 일렉트릭 기타 2대, 드럼 4대, 장구 10대 등 꽤 많았다.

부산문화재단은 첫 행사여서 사전 홈페이지 등록을 받기도 했지만 내심 기부자가 적을까 봐 걱정했다. 하지만 부산시민의 나눔 정신은 식지 않았다. 행사 당일 기부 접수 부스를 지켜보니 심심찮게 기부자들이 악기를 가져왔다. 사전 접수를 합해 49명이 기부에 참여해 악기 188대를 내놓았다. 이날 목표로 한 기부자와 악기 수는 거의 채웠다. 내년 초 부산문화재단이 '온라인 공유문화 플랫폼'을 정식으로 가동하면 상시 기부가 가능해진다. 이 플랫폼에서는 악기뿐 아니라 재능, 공간, 관람권 등 다양한 형태의 문화 나눔이 가능해진다.

하모니카 동아리 활동을 3년째 하고 있는 강진옥(58) 씨는 이날 자녀가 어릴 때 불던 리코더와 단소를 가져 왔다. 강 씨는 "하모니카를 부는 2시간이 참 즐거운데 아동센터나 복지기관 어린이들도 음악과 함께 행복한 시간을 보내면 좋겠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이날 현장 기부 1호로 기록된 이승윤(9) 군은 공부도 잘하고 운동도 잘하던 동네 형에게서 물려 받은 리코더를 선뜻 내놓았다. 어머니 황규혜 씨는 "학교 수업에 필요해서 산 리코더 두 개를 갖고 있다가 좋은 데 기부한다고 해서 가져 왔다"며 "악기가 없어 어려움을 겪는 또래 친구들에게 이 리코더가 조금이라도 도움이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사회복지사로 활동하다 퇴직 후 우쿨렐레 동아리 '네 줄 하모니' 활동을 하며 재능기부에도 열심인 홍옥이(66)씨는 교회 동료 신도로부터 바이올린을 기부해달라는 부탁을 받고 가져왔다. 홍 씨는 "전해주신 분이 기부할 기회를 주셔서 감사하다며 바이올린을 주더라"며 "이 바이올린을 받은 아이들이 사랑스럽고 밝게 자라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호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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