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부산 산불] 태풍급 강풍에 불이 날아다녔다 “전쟁보다 산불이 더 무서워”
4일 오후 7시 17분께 강원도 고성군 토성면 원암리 일대 산불이 확산되고 있다. 사진은 불길이 하늘을 뒤덮고 있는 모습. 연합뉴스
지난 4일 발생한 강원도 산불은 6일 낮 모두 진화됐지만 사흘간 축구장 면적의 742배인 임야 530㏊를 잿더미로 만들고 주택 401채가 불에 타는 등 큰 상처를 남겼다. 다만 사망자와 부상자는 각각 1명으로 인명피해가 적은 점과 산림청 군 경찰 지자체 등이 가용 가능한 인력을 총동원해 비교적 빨리 불길을 잡은 점은 다행으로 꼽힌다.
고성·속초 산불 ‘양간지풍’ 영향
최초 발화지점서 7.7㎞ 떨어진
해안가까지 90분 만에 날아가
45시간 만에 진화 강릉·동해
기도 올리는 신당 발화지점 추정
7일 산림청에 따르면 강원도 산불은 △고성·속초 △강릉·동해 △인제 등 3곳에서 동시다발적으로 발생했다. 특히 고성·속초에서 발생한 산불은 초속 30m의 태풍급 강풍이 불면서 삽시간에 속초시내를 거쳐 바닷가까지 번졌는데 불길은 최초 발화지점에서 7.7㎞ 떨어진 해안가까지 90분 만에 날아갔다. 이 바람은 봄철 동해안에 부는 양간지풍으로 불리는데, 양양과 간성, 양양과 강릉에 부는 국지적 강풍이라는 뜻이다. 속초주민인 김승환(53)씨는 “불이 나자 바닷가가 안전할 것이라고 생각해 가족들과 대피했다”며 “고깃배에까지 불이 옮겨붙을까 봐 시동을 건채 밤새 배에서 대기했다”고 말했다.
이 지역 화재원인은 4일 오후 7시 17분 고성군 원암리 주유소 맞은편 전신주의 개폐기에서 불꽃이 튀면서 시작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이 개폐기는 한전이 관리하는 시설이다. 경찰은 합동 감식을 통해 개폐기와 전선 등 부속물을 수거해 국과수에 정밀 감정을 의뢰했다.
강릉·동해 산불은 4일 오후 11시 50분께 강릉시 옥계면 남양리의 주택 인근에서 발화된 것으로 추정된다. 경찰은 최초 발화 추정 지점이 평소 주민이 기도를 드리는 신당이라는 점에 주목하고 합동감식을 벌이고 있다. 인제 산불은 4일 오후 2시 45분 남면 남전리 약수터 인근에서 시작됐지만 암석지에 경사가 급한 곳이 많아 진화에 애를 먹으면서 45시간 만인 6일 낮 12시께 불길을 잡아 가장 늦게 진화됐다. 이들 3곳의 임야 피해는 고성·속초 250㏊, 강릉·동해 250㏊, 인제 30㏊로 집계됐다.
곳곳에서 긴박한 순간이 적지 않았다. 고성 산불이 속초시 교동 강원진로교육원으로 번지자 직원들은 이곳에 머무르던 춘천 봄내중 학생 179명을 속초중으로 피신시킨 후 건물 소화기와 소화전을 모두 동원해 외벽에 물을 뿌리는 등 진화작업을 펼쳤다. 하지만 산을 넘어온 불길은 건물 외벽을 덮쳤고 직원들은 가까운 교육지원청으로 대피했다가 다시 돌아와 밤새 진화작업을 벌이기도 했다. 마을회관에서 사흘째 생활하는 고성주민 추 모(84) 씨는 “도둑이면 집이라도 남길 텐데 불은 집조차 남기지 않는다”며 “산불이 도둑, 전쟁보다 더 무섭다”고 토로했다.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는 이번 산불로 임야와 주택 외 창고 77채, 관광세트장 158동, 축산시설 925개, 농업시설 34개, 건물 100동, 공공시설 68곳, 농업기계 241대, 차량 15대 등이 소실됐다고 밝혔다. 현재 이재민 722명은 21개 임시 거주시설에 머무르고 있는데 정부는 공공기관 연수시설에 이들이 머무를 수 있도록 추진 중이다.
행정안전부 진영 장관은 “이제는 피해 지역 주민 지원에 집중해야 할 때”라며 “이재민이 원하는 주거 지원 유형을 확인하고 조립주택 설치 등을 위한 용지 확보, 인허가 처리 등 행정절차는 최대한 단축하라”고 지시했다.
김덕준 기자 casiopea@busan.com
김덕준 기자 casiopea@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