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에 대한 흔한 착각 BEST 5] 과학의 외피를 입은 오해, 경계에 선 진실
진지하게 관장을 고민한 적이 있다. 숙변을 제거하기 위해서다. 변비도 아닌데 속이 더부룩하고, 왠지 몸이 무겁다. 전형적인 숙변이 쌓인 증세 같았다. 대장은 카펫의 올 같은 융털로 이뤄져 있는데, 융털과 융털 사이에 변 찌꺼기가 끼어 밀려 나가지 않고 쌓인다. 이 찌꺼기들이 계속 유해가스를 내뿜는다. 심해지면 찌꺼기가 몇 kg 정도 양이 된다고 한다.
허위·과장에 근거 없는 찬양 많아
대장 끊임없는 연동운동에 숙변 없어
전자레인지 음식 변형 오히려 덜해
간장·우유·콩에도 천연 MSG 넘쳐나
‘음이온=만병통치’ 효과 입증 안 돼
육각수 인기에 전용 냉장고 출시도
지금도 인터넷엔 각종 숙변 제거 약, 숙변 제거 경험담 등이 많이 올라와 있다. 이미 숙변 제거를 해본 지인은 “관장은 굴욕적이지만, 결과는 시원하다”고 증언했다. 결국 숙변 제거를 결심하고, 가까운 의사에게 상의했다. 대답이 충격적이었다. “사람들이 착각하는데, 숙변 같은 건 없다.”
변비는 있어도 숙변은 없다
많은 사람이 숙변 제거를 고민하는데, 정작 숙변이란 건 없다고 한다. 융털의 단면을 그림까지 그려가며 숙변 제거의 필요성을 설명하는 건 근거 없는 과장 광고가 대부분이다. 숙변을 제거해 개운해졌다는 이들도 실은 변비를 해소했거나, 그냥 기분만 홀가분해진 것일 가능성이 높다.
인간의 대장은 안쪽이 미끌미끌한 점막으로 되어 있고, 끊임없이 연동 운동을 하므로 찌꺼기가 원천적으로 장기간 쌓일 수가 없는 구조이다. 한국의 ‘똥꼬박사’라 불리는 남호탁 외과의사는 ‘똥꼬이야기’라는 책에서 “대장 수술이나 대장 내시경 검사를 해보면 숙변의 존재가 얼마나 허무맹랑하게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것인가가 백일하에 드러난다”며 “단언컨대 숙변은 존재하지 않는 허깨비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전자레인지와 발암
간혹 전자레인지에 음식을 데우면 어르신들로부터 혼이 나기도 했다. 전자파 때문에 음식에 발암 물질이 생긴다는 거다. 전자레인지는 마이크로파가 초당 20억 회 정도로 물 분자를 흔들면서 발생하는 열로 음식을 데운다. 그렇게 많은 마이크로파가 음식을 때려 음식을 유해하게 바꿀 수 있다는 거다.
하지만 눈에서 나오는 가시광선도 초당 10만 회 정도로 사물을 때리고 있다. 실질적으로 가시광선이나 전자레인지의 마이크로파가 성질이 크게 다른 것도 아니다. 게다가 불로 굽든, 끓는 물에 데치든, 열을 가하면 음식의 분자들이 엄청나게 흔들리면서 음식이 익는 건 마찬가지다. 오히려 불로 구우면 연기도 나고 음식도 탈 수 있으며 가열 온도가 높아, 음식 변형은 더 많이 되고 진짜 발암 물질이 생성될 수도 있다. 마이크로파는 음식 내 수분 분자만 건드리므로, 음식 변형은 오히려 덜하다.
MSG는 죄가 없다
근거 없이 미움을 사고 있는 MSG는 글루탐산나트륨(monosodium glutamate)의 약자로 보통 ‘미원’이라고 불린다. 음식에 감칠맛을 더하는데, 단 건 몸에 안 좋다는 인식 때문인지 왠지 유해한 성분 같다. 국내에선 대표적인 유해 첨가물로 통용되기도 한다.
하지만 MSG는 사카린, 아스파탐같이 화학적으로 합성, 변형하는 게 아니라 미생물, 식물 등에서 추출해 농축하는 형태로 만들어진다. 소금을 정제하는 것과 비슷하다. 간장, 된장, 우유, 콩, 버섯 등에도 천연 MSG가 넘쳐나니 ‘미원’을 안 먹어도 누구나 MSG를 섭취하고 있다. 식품의약품안전처는 “식품첨가물 MSG는 평생 먹어도 안전하다”는 입장을 수차례 밝혔다.
음이온, 게르마늄 팔찌, 라돈침대
MSG와는 반대로, 근거 없이 찬양을 받는 사례는 더 많다. 각종 건강식품의 과대광고를 보면 이미 암은 정복된 것 같고, 인간은 평생 늙지않고 살 수 있을 것 같다.
지금도 음이온을 만병통치 물질로 믿는 이들이 많다. 음이온이 혈액 정화, 면역력 증가, 항암 작용 등의 효과가 있다는 광고들이 널려 있다. 그러나 마이너스 전자인 음이온을 아무리 많이 쬐어도 신체는 중성 상태를 유지한다. 음이온이 신체에 영향을 줄 수도 없으며, 어떠한 긍정적 효과도 입증된 게 없다. 그럼에도 음이온이 나온다는 원가 1~2만 원의 게르마늄 팔찌가 수십만 원에 팔리기도 한다. 방사능 논란이 돼 난리가 난 라돈침대 역시 음이온이 나온다는 광고로 유행한 것이다. 일본 오사카대 물리학과 기쿠치 마코토 교수는 “시중에 팔리는 음이온 건강제품은 다 사기”라고 잘라 말한다.
육각수를 기억하시나요
사람들은 몸에 좋거나 나쁘다고 하면 따져 보지도 않고 쉽게 믿어버리는 경향이 있다. 워낙 건강에 대한 욕망이 강해서, 이성적인 비판 사고가 잘 작동하지 않아서다.
대표적인 게 1990년대 중반 육각수 논란이다. 산소와 수소 분자가 육각 형태로 된 물을 마시면, 육각 형태의 분자가 많은 신체가 건강해진다는 거다. 왜 건강해지는지에 대한 과학적 설명은 없지만, 육각수의 인기는 실로 대단했다. 각종 관련 건강 제품이 쏟아지고, 심지어 대기업에서 육각수 전용 냉장고도 만들었다. 물론 그때도 물의 분자 형태는 계속 변하기 때문에 설령 육각수를 마셔도 몸에 들어오는 순간 이미 육각수가 아니라는 게 드러나 있었다. 하지만 건강에 대한 속설은 진실 여부를 떠나 일단 돈이 되기 때문에, 여기저기서 대중을 현혹하려 드는 법이다.
부산대 생명환경공학부 이태호 명예교수는 잘못된 건강상식 등을 묶은 ‘우리는 TV쇼 닥터에게 속고 있다’라는 책에서 “어떤 제품이 좋다고 하면 소비자들은 솔깃하여 구매에 열을 올린다. 하지만 그리 오래지 않아 그 제품은 뒷전으로 밀린다. 그 사기성을 간파당했기 때문이다”며, 반복되는 건강 과장 광고의 문제에 대해 지적했다.
김백상 기자 k103@busan.com
김백상 기자 k103@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