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와 함께하는 산과 길] <664> 통영 사량도 지리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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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담하고 낮은 섬 산? 비명부터 준비하세요

근친상간의 아픔을 간직한 옥녀봉이 남섬과 북섬 사이 사량해협과 이 둘을 잇는 연육교를 지긋이 내려다 보고 있다. 근친상간의 아픔을 간직한 옥녀봉이 남섬과 북섬 사이 사량해협과 이 둘을 잇는 연육교를 지긋이 내려다 보고 있다.

섬에 있는 낮은 산이라고 얕보아선 큰 코 다친다는 사량도 지리산을 갔다. 늘 마음에 품었지만, 배를 타야하는 부담감 때문에 후순위로 밀렸던 산이다. 최고봉인 불모산(일명 달봉)이 해발 400m로 멀리서 보면 나지막하고 아담한 산이지만 막상 능선에 들고 보면 온통 바위 능선이 이어진 골산으로 공룡의 등뼈 같아 험준하기 짝이 없다. 산을 사랑하는 이에게는 산타는 즐거움이 배가 되겠지만 그저 시프게 여기고 덤벼든 이에게는 체력을 감당해 내지 못할 지경에 이르러 자칫 큰 사고로 이어질 수도 있겠다. 〈월간 산〉이 선정한 ‘한국의 100대 명산’ 중에서 25번째에 등재될 만큼 경관이 수려하고 산세가 빼어나다.

‘한국의 100대 명산’ 중 25번째 등재

공룡 등뼈처럼 바위 능선 이어진 골산

얕보았다가 큰코다칠 정도로 ‘험준’

돈지·내지 마을 경계에 있어 지리산

초입, 금평 포구나무 옆 산길로 잡아

슬픈 설화 간직한 옥녀봉을 지나면

연지봉과 가마봉 사이의 출렁다리

톱바위 사다리 앞에 서니 다리 ‘후들’

푸른 물결에 떠 있는 섬들로 눈 ‘호강’

‘한국의 100대 명산’ 중 25번째 등재 공룡 등뼈처럼 바위 능선 이어진 골산 얕보았다가 큰코다칠 정도로 ‘험준’ 돈지·내지 마을 경계에 있어 지리산 초입, 금평 포구나무 옆 산길로 잡아 슬픈 설화 간직한 옥녀봉을 지나면 연지봉과 가마봉 사이의 출렁다리 톱바위 사다리 앞에 서니 다리 ‘후들’ 푸른 물결에 떠 있는 섬들로 눈 ‘호강’

사량도 지리산은 남한 최고의 명산 지리산을 바라본다는 의미의 지리망산에서 유래 했다고 알려져 있지만 이는 잘못된 이야기다. 사량도 원래 이름은 박도였다. 파도가 거세게 부딪힌다는 의미다. 〈신증국여지승람〉에 상박도와 하박도로 기록하고 있고, 상박도와 하박도 사이를 흐르는 작은 해협이 마치 뱀이 기어가는 형상을 하고 있어 이 섬을 사량도라 불렀다 한다. 그 외에도 섬에 뱀이 많아서 붙여졌다고도 하고 섬의 형상이 길다랗게 생겨서 붙였다는 이야기도 있으나 해협설이 가장 근접해 보인다. 지리산의 이름은 남쪽의 돈지 마을과 북쪽의 내지 마을의 경계를 이루고 있어서 지리산이라 불리게 되었다는 것이 정설이란다.

고성 용암포에서 오전 10시에 출발하는 카페리 풍양호를 탔다. 사량도 내지항에 도착하기까지는 25분이 걸린다. 상갑판 위에서 시원하게 불어오는 바닷바람에 머리카락을 흩날려 본다. 앞쪽으로 길게 늘어선 사량도 지리산 능선을 바라보며 파도를 헤쳐 나가는 가슴 두근거리는 뱃머리도 보았다.

내지 뱃머리에 하선하니 25인승 관광버스가 기다리고 있었다. 돈지 마을로 가느냐고 물으니 갈 수 있단다. 그런데 거기까지 대절해 가면 산을 탄 뒤 다시 금평에서 내지까지 버스를 대절해서 와야하는 번거로움이 있으니까. 여기서 바로 금평으로 가서 그곳에서 산을 올라 내지로 내려오는 역코스를 잡으면 좋다고 기사가 조언을 해 준다. 통영의 가오치 항에서 배를 타고 금평에 내려 돈지까지 버스를 타고 가서 지리산 산행을 하고, 금평으로 내려가서 돌아가는 배를 타는 것이 가장 일반적이 산행코스란다. 그러나 고성에서 출발하면 내지항에 내려 금평으로 가는 버스를 타고 가서 거기서 역코스로 산을 타는 것이 가장 편리하다고 일러 준다. 참고로 가오치에서 사량도 드는 배는 두 시간 마다 운행하고 고성 용암포에서는 한 시간마다 운행되기에 자투리 시간을 최대한 줄일 수가 있다. 부산에서 접근하는 방식은 고성용암포로 가는 방법이 가장 시간을 절약할 수 있는 최선이라고 할 것이다.

소형 관광버스는 거의 택시 수준이었다. 나눠주는 명함에 전화번호가 있고 어디서든 호출하면 태우러 온다고 한다. 섬의 노선버스는 가오치 카페리 시간에 맞춰져 있기 때문에 두 시간 간격으로 섬을 일주한다고 하였다. 그러기에 시간 낭비하는 부분이 많다는 것이다. 사량도는 북섬과 남섬에 일주도로가 잘 닦여 있어서 8자 형태로 드라이브 하기에 최적합이다. 올려다보는 옥녀봉과 달봉 사이의 능선 풍광도 아주 훌륭하여 맘껏 힐링되는 코스가 될 것이다.

일단 금평까지 가서 버스 기사가 일러준 포구나무 옆으로 난 산길을 초입으로 잡고 옥녀봉을 오르기 시작했다. 산의 경사도가 심해서 초반부터 숨을 헉헉거리며 내쉬었다. 45분여를 걸어서 옥녀봉(261m) 정상에 도착한다. 옥녀봉이라는 지명을 가진 봉우리들에는 슬프고 아픈 설화를 간직하고 있다. 특히 섬에 있는 옥녀봉에는 어김없는 근친상간의 아픔이 묻어나는 설화가 담겨있다. 부녀지간에 상간을 피하기 위해 아버지에게 마루 밑에 들어가 개가 짖듯이 세 번 짖으면 허락해 주겠다고 한 뒤 아버지가 그러는 사이에 절망한 딸은 뒷산 산봉우리로 올라가 바위 벼랑 아래로 몸을 던져 죽었다는 이야기들이 그것이다. 사량도 옥녀봉도 예외없이 암봉으로 되어 있으며 천 길 낭떠러지를 간직하고 있어 그런 설화를 뒷받침하는 지형적 특색을 잘 갖추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눈을 감지 말아요 그대

벼랑 끝에 서서 아비를 탓한들 무엇해요

섬을 벗어나지 못하는 갈매기들도

거센 파도소리에 날개를 접지 못해요

불끈 솟은 암봉들에 둘러 싸여

금평항은 고요하기만 해요

그리던 산을 몸에 들이고 나니

아픔보다는 더 큰 사랑이 흐르는 걸요

관광 명물이 된 출렁다리 모습. 관광 명물이 된 출렁다리 모습.

옥녀봉을 지나면서부터 산길은 암릉 구간으로 바뀌어 험준해 진다. 목제로 덱 계단이 설치되어 있거나 철제 계단으로 이어져 안전을 최대한 도모하고 있다. 이전 안전시설이 미비할 때 사량도 산행에서 추락 사고가 많이 일어나기도 했다. 줄을 타던 구간이었던 연지봉(295m)과 가마봉(301m) 두 개 암봉 사이에는 출렁다리가 설치되어 관광객들을 불러 모우기도 한다. 함께 배를 타고 온 젊은이들도 옥녀봉과 출렁다리만을 목표로 사량도에 왔다고 하며 산행기점을 대항고개에서 출발하였다. 산행 길은 이런 험로를 다 거치게 되어 있어 오르락 내리락 네 발을 이용하도록 요구한다. 티라노사우르스 등을 타고 가는 듯한 착각을 일으키게도 한다. 그것이 재미를 듬뿍 안겨준다.

가마봉을 지나 톱바위 앞에 서면 반짝이는 장대한 사다리가 하늘까지 걸쳐져 있는 것이 보인다. 벌써 다리가 후들거린다. 경사도도 심하다. 난간을 붙들고 한 발 한 발 천천히 올라야 했다. 암봉은 좋은 조망을 가졌다. 고성반도와 통영 앞바다의 숱한 섬들이 푸른 물결 위에 동동 떠있다. 양식장의 하얀 부표들이 바다를 경작하는 것 같아 보는 일도 행복하다. 그렇게 눈을 즐겁게 하면서 어느덧 톱바위를 넘으면 한동안 흙길이 이어지고 그늘 아래 쉬어가기 좋은 곳도 군데군데 만난다. 달바위로 불리는 불모산(400m) 정상 60여m도 톱날같은 암봉구간이다. 바람이 불거나 비바람이 몰아칠 때는 위험하다는 생각이 든다. 이곳을 통과하면 흙길이 이어진다. 329m 봉우리 하나를 지나면 내지항으로 빠지는 갈림길이 나온다. 배 시간 때문에 시간을 단축하고 싶으면 지리산은 포기하고 여기서 하산하면 된다. 갈림길에서부터 지리산 정상까지 가는 길은 뭍에 있는 지리산의 어느 산길을 걸어가는 듯한 착각을 일으킬 정도로 수목이 우거지고 길에 힘이 느껴진다. 마지막 힘을 쏟아 지리산 정상에 오르면 늘 품어 왔던 그리움이 한꺼번에 녹아 사라지게 하는 조망이 펼쳐진다. 손에 닿을 듯한 삼천포항이 있고. 용암포를 출항한 카페리가 하얀 꼬리를 남기며 다가오고 있는 것도 보인다. 지리산은 보이지 않았다. 지리산 봉우리를 지나 385m 봉우리 하나를 넘자 곧 삼거리 이정표가 나왔다. 여기에서 돈지와 금북개 방향으로 갈라지는 곳이다. 내지로 가려면 금북개를 향해 오른쪽 길을 잡아야 한다. 시작되는 작은 능선도 공룡의 꼬리 부분처럼 암릉 구간이다. 지친 몸에 다리가 풀려 있다면 자칫 위험할 수도 있다. 그러나 시간에 쫒기지 않고 쉬엄쉬엄 내려가며 위험요소를 배제할 수 있다. 278m 봉우리를 넘고 다시 작은 봉우리를 넘으면 능선을 벗어나는 하산길이 이어진다. 일주도로를 조금 걸어서 내지항에 도착하니 오후 4시였다. 4시 30분 카페리를 타기에 넉넉했다. 총산행시간은 5시간 20분이었다.


강영환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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