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감] 부산국제영화제에서 만난 이창래
올해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웨인 왕 감독이 선보인 〈커밍 홈 어게인〉은 한국계 미국인 소설가 이창래의 에세이를 원작으로 한 영화이다. 맨 처음 이 소식을 들었을 때, 그러니까 이창래가 1995년 10월 〈뉴요커〉에 발표한 글이 영화화됐다는 뉴스를 접했을 때 다소 의아한 생각이 들었다. 왜 그의 소설이 아니라 에세이를? 하는 의문이 들었다.
이창래 에세이 원작 ‘커밍 홈 어게인’
올해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상영
미국사회 이민가정 모자 갈등 다뤄
웨인 왕 감독 저예산 독립영화로 제작
한국계 미국인 정체성 기록 의미
한국 음식 세심한 묘사 축소 아쉬워
한국계 미국인의 정체성과 소외의식을 다룬 아름다운 데뷔작 〈네이티브 스피커〉 이후 이창래는 꾸준히 문제작을 발표해오고 있다. 일제강점기 ‘위안부’ 소녀의 삶이 등장하는 〈제스처 라이프〉, 미국인 중산층 가족의 일상을 파헤친 〈가족〉, 한국 전쟁에 관한 풍부하고 통렬한 시각을 제시한 〈생존자〉, 미래의 가상현실을 배경으로 한 독특한 분위기의 〈만조의 바다 위에서〉에 이르기까지 그의 소설들은 영화의 원작으로 삼기에 넘치는 매력들을 품고 있다.
지난 6일 첫 상영된 〈커밍 홈 어게인〉에서 웨인 왕 감독은 이 영화를 만들게 된 배경을 영상 메시지를 통해 전했다. 암 투병 중인 어머니를 보살피는 아들에 관한 에세이가 감독의 가슴에 오랫동안 남아 있었고, 지난 2014년 감독의 어머니가 파킨슨병으로 세상을 떠난 후 더욱 공감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지난해에 감독은 ‘친구’인 이창래를 만나 영화를 만들기로 의기투합했고, 시나리오를 함께 썼다. 그런데 이 영화가 투자자를 모을 수 있는 내용은 아니라서 ‘공동체’의 자원으로 제작했다. 배우들의 즉흥 연기에 의존한 저예산 영화는 이렇게 해서 단 2주 만에 촬영을 마치게 되었다.
영화를 관람한 후 아쉬운 마음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었다. 감독이 한 인터뷰에서 밝혔듯이 이 영화가 “자본의 간섭을 덜 받는 독립영화 형태”로 제작되었다는 사정을 감안하고서라도 그랬다. 이창래의 에세이를 읽으며 떠올렸던 풍부한 의미들과 먹먹한 감동을 (제작 여건 때문이었겠지만) 스크린에서는 충분히 느낄 수 없었다.
예를 들어 어머니가 어린 아들에게 은행에 대신 전화를 걸어달라고 부탁하는 장면은 모자 간 갈등의 중요한 축을 이룬다. 미국에서 교육을 받는 어린 아들의 눈에는 영어도 못하고 한국식 생활방식을 고집하는 어머니가 답답하고 부끄럽게 여겨지는 것이다. 가족 간의 이러한 세대 갈등은 미국 사회의 이민 가정에서 흔히 일어나는 현상이다. 그러기에 이 장면은 영어에 서툰 어머니가 어린 아들에게 한국어로 부탁해야 한다. 하지만 영화 속 어머니는 매끈한 영어로 성인으로 분한 아들에게 전화를 걸어달라고 부탁한다. 그러하기에 이어지는 아들의 독설과 어머니가 받는 마음의 상처, 그리고 세월이 흐른 후 이 일을 회상하며 아들이 느끼는 회한의 감정이 충분히 드러나지 못했다.
지지고 볶고 굽고 데치는 한국의 요리 역시 중요한 모티브가 된다. 어머니가 평생 만들어준 요리들을 이제 아들이 병든 어머니를 위해 요리하며 지난 시간들을 회상하는 것이다. 음식에 관한 세심한 묘사와 일화들이 영화에서 축소되었다는 점이 아쉬웠다. 결국 어머니와 아들을 정서적으로 연결시키고 화해시키는 계기가 되는 건 바로 한국 음식들이다.
이창래 작가가 어머니를 간호하던 영화 속 시간은 바로 그가 데뷔작 〈네이티브 스피커〉를 준비하던 습작의 시간들이었다. 월스트리트의 전도유망한 펀드매니저 직업을 그만두고 집으로 돌아와 어머니를 돌보며 자신을 이루는 것들, 즉 한국계 미국인으로서의 정체성에 대해 사유하고 기록한 것이다. 이런 이유 하나만으로도 사실은, 이 영화가, 충분히 반갑고 감동적이었다. 이후 작가는 자신만의 언어의 집, 문학의 집을 다시 발견하게 되었으니까. ‘커밍 홈 어게인’!
황은덕
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