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트 코로나19 ③] “프리랜서 or 이직”…불투명한 미래가 더 겁나는 ‘소상공인’
심층기획 '코로나19가 바꾼 항로, 미래 시계가 빨라졌다'
앞당겨진 4차산업혁명 "생존하려면 전부 바꿔야죠"
"3년 전 코로나19를 훌륭하게 견뎌내고 피트니스의 신세계를 연 이곳! 제가 다녀왔습니다."
2023년 4월 10일 오후 7시. SBS 시사교양프로그램 '생방송 투데이' 리포터의 강렬한 멘트가 TV에서 울려 퍼진다. 화면 속에 등장한 곳은 부산 강서구의 한 소규모 '그룹PT' 시설. 일반 피트니스클럽과 달리 '운동 마니아'들이 조를 짜 파워리프팅 등 맞춤형 운동을 하는 곳이다.
40평 규모 공간에는 남녀노소 수십 명이 바글바글하다. 한쪽에선 5명이 벽을 향해 팔과 다리를 뻗는 '단체 체조'를 하고 있다. '파워랙' 기계에서 바벨을 드는 사람 곁에 두세 명이 둘러 서서 "하나, 둘, 셋" 큰소리로 숫자를 센다. 모자 사이로 보이는 중년 여성과 10대 소년은 땀범벅이 되어 나란히 자전거 페달을 돌린다.
리포터는 이곳 회원이 이들 뿐만이 아니라고 자랑한다. 운영자인 임원진(34) 코치는 떠오르는 ‘유튜버’다. 개인 방송 구독자만 20만 명. 생소한 소규모 그룹PT를 소개하는 재치 넘치는 10분짜리 영상을 올릴 때마다 기본 조회 수가 30만을 넘나든다.
"3년 전 코로나19가 세계를 휩쓸었을 때 회원이 엄청나게 줄었어요. 살아남으려고 유튜브를 시작했는데 말 그대로 '대박'이 났습니다." 임 코치는 인스타그램 등 SNS에서도 소규모 그룹PT가 입소문이 나면서 온·오프라인 회원 수가 덩달아 늘고 있다고 소개한다. 이어 사무실 옆 작은 공간에 카메라 3대를 설치하고 '파워리프팅'을 재미있는 해설과 함께 선보이는 모습을 공개했다.
"코로나19 같은 위기가 언제 또 찾아올지 몰라, 거금을 들여 재난 보험에도 가입했어요. 마스크도 넉넉하게 비치하고 방역도 전문 업체가 정기적으로 소독을 해서 회원들로부터 신뢰를 되찾았습니다."
■ 코로나19가 집어삼킨 '소상공인'
'장밋빛 미래'를 꿈꾸며 살기에도 짧은 생이지만, 2020년 대한민국은 '코로나19 쓰나미'가 모든 걸 붙잡고 있다. 임 코치 역시 벼랑 끝에 섰다. 지난 2일 <부산일보> 취재진과 만난 자리에서 그는 "지자체에서 재난 문자까지 시민들에 보내 체육시설 방문을 자제시키고 있으니, 최악의 상황"이라고 전했다.
실제 코로나19 사태가 장기화하면서 빚더미에 앉은 채 폐업하는 자영업자가 속출하고 있다. 특히 대면 접촉과 거친 호흡이 불가피한 체육시설의 타격이 가장 크다. 정부나 지자체의 긴급재난지원금, 대출 지원 정도론 감당이 되지 않는다.
임 코치는 20대 중반부터 8년간 트레이너 생활을 하며 착실히 창업 자금을 모았다. 이후 3년 전 부산 북구 화명동에 새로운 형태의 '소규모 그룹PT시설'을 열었고, 올 1월 강서구 명지동으로 사업장을 옮겼다.
그러나 새 보금자리에 자리를 잡기도 전인 올 2월 ‘코로나19’ 사태가 터졌다. 한때 60~70명에 달하던 회원 수가 지금은 대중없다. 전 회원을 대상으로 체육관 이용을 한 달 연기시킨 뒤 휴관을 결정한 상태. 당장 한 달 뒤 회원이 몇 명이나 남을지 알 수 없다.
자금도 바닥나고 있다. 임 코치는 모은 돈 전부를 투자해 창업한 터라 여윳돈이 없었다. 해외에서 수입한 대형 파워랙 등 장비 비용만 4000만~5000만 원에 달해 창업 비용을 대기에도 빠듯했었다. 오히려 사업장을 옮기며 추가 대출 2000만 원을 받은 상태다. 코로나19로 수입이 ‘0’이 되면서, 이젠 더 버티기가 힘들다. 월세, 관리비, 보험비 등 고정비만 한 달에 200만~300만 원이 들어서다. 현재 추가로 받았던 대출금으로 이를 메꾸고 있다.
소상공인을 위한 코로나19 대출도 사실상 무용지물이다. 코로나19가 창궐한 이후인 2월 초에 사업자 대출을 받았다는 이유로 저금리 대출 대상에서 제외됐다. 기존 대출을 갈아탈 수 있는 상품이 나와, 소상공인진흥공단을 찾았지만 역시나 '실패'였다. 임 코치는 "오전 10시가 채 되지 않아 공단에 도착했는데도, 모든 돈이 소진됐다며 돌려보냈다"며 "아침 일찍부터 기다린 한 손님은 직원에 말에 화가 나 멱살잡고 다투기도 했다"고 말했다.
코로나19가 언제 사라진다고 누구도 말할 수 없는 상황 속에 이미 임 코치 주변 체육관 3곳이 버티지 못하고 폐업했다.
“코로나19로 체육시설들이 자체 휴관 중인데, 최근 정부에서 또 지침이 내려왔습니다. ‘2m 거리를 둬라’ ‘샤워실, 정수기 이용을 금지하라’ 등의 내용인데 문을 열더라도 체육시설업은 이를 지킬 수가 없습니다. 결국 또 휴관해야 하는 거죠.”
■ 막막한 '미래 설계'…그래도 희망은 있다
임 코치와 같은 오프라인 중심 소상공인들은 미래가 더 걱정이다. 언제든지 감염병과 같은 재난이 또 일어날 수 있어서다. 코로나19 이후 시민들이 오프라인 시장에 이전과 같은 관심을 두지 않을까봐 노심초사하고 있다.
임 코치는 "하루에도 수십 번씩 방역을 하고 있지만, 사람들이 찾지 않으면 소용이 없는 게 아니냐”면서 "여의치 않으면 사업을 접고 프리랜서 트레이너를 하거나, 평소 관심 있던 운동기계 제작을 해볼까 자꾸 딴 생각이 난다"고 말했다.
하지만 임 코치는 요즘 마음을 다시 다잡고 있다. 유튜브 영상 등 온라인 콘텐츠를 기획하고 제작하는 경험을 적극적으로 해볼 생각이다. 임 코치는 “온라인상에서 볼 수 있는 자세 등이 한계가 있긴 하지만 대세가 그쪽이라면 충분히 도전할 만한 가치가 있는 것 같다"며 "온라인 영역을 넓혀가면서 동시에 시민 인식을 개선하고 마케팅을 더 적극적으로 해서 오프라인 시장을 유지하기 위한 대책도 세워야 한다"고 말했다.
가장 최근 데이터인 '2017년 전국 사업체 조사' 자료에 따르면, 2017년 전국 소상공인 사업체는 318만 8000개에 달한다. 전년보다 5만 개가량 늘었으며, 매년 2만~10만 개 정도 증가하는 추세다. 같은 해 부산의 소상공인 사업체 수도 23만을 넘어설 정도로 소상공인이 지역 경제에서 큰 비중을 차지한다. 이들이 무너지면 지역경제가 초토화된다는 의미다.
부산시 소상공인지원담당관실 관계자는 10일 "매출이 없어 임대료, 인건비를 감당하지 못한다는 민원이 이어진다. 최근 민생지원금이 발표된 뒤로 문의 전화가 끝이 없다"고 말했다. 이날 박헌영 부산시상인연합회 회장도 "코로나19 여파로 경기 침체가 2년을 갈지, 3년을 갈지 예측할 수 없어서 미래 대안을 세우기가 쉽지 않다"며 "우선 경기가 회복돼야 전통시장도 살 수 있기 때문에 이번 사태가 끝나면 소상공인, 자영업자 등이 합심해 지역경제 살리기 운동을 펼칠 계획"이라고 말했다.
■ 소상공인 R&D 부활해야
'포스트 코로나19 시대'가 오면 온라인 '비대면' 시장이 더욱 확장될 것이며, 그에 따라 그나마 버텨오던 전통산업 역시 급속히 재편될 것이란 전망이 많다.
우선 소비재 거래의 무게추가 온라인 쪽으로 확 옮겨갈 것으로 보인다. 사실상 전 국민이 격리생활 과정에서 온라인 소비의 장점을 깨닫게 돼 쉽게 이를 되돌리기 어려울 것이기 때문이다. '무조건 오프라인'을 고수하던 주변인들이 '이런 것까지 배달이 돼?' '어, 집에서 편하게 맛집 음식을 먹을 수 있었네’ 라면서 온라인 쇼핑에 열광한다는 글이 SNS에서 퍼지고 있다. 기업들은 사활을 걸어 ‘온라인 마케팅’에 열을 올릴 것이 뻔하다.
개인 소비, 취미 활동은 물론 축제나 관광 등 대표적 '대면 행사'까지 모든 것이 4차산업혁명의 '클라우드'로 옮겨가면 정보력, 자본력이 부족한 소상공인들은 예상보다 더 빨리 도태될 수 밖에 없는 구조다.
부산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도한영 사무처장은 "지금 당장 문제 해결을 위해 재난기금 등을 지원하는 것도 좋지만, 포스트 코로나19 시대를 맞아 산업 구조의 현실과 미래를 예측하는 '공론의 장'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소상공인들이 새로운 도전에 나설 수 있도록 '소상공인 R&D 활성화' '대학생·소상공인 협동조합 설립' 등 가능한 지원 프로그램을 더 서둘러 마련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온라인 헬스클럽' '온라인 재래시장' 등이 현실화되도록 소상공인의 자구 노력뿐 아니라 지자체나 정부 지원이 병행돼야 한다는 것이다. 현재 부산시상인회와 부산시도 온라인 판매 활성화를 위한 플랫폼 구축 방안을 논의 중이다.
'대학생·소상공인 협동조합'은 소상공인들이 새 유통 경로인 유튜브나 SNS 등 아이디어와 기술을 배우고, 대학생들도 창업 경험, 지식 등을 쌓는 기회를 갖자는 아이디어다.
부경대 경영학부 이유태 교수는 "매년 100만 곳이 창업하면, 약 80만 곳이 폐업하는 게 현실"이라며 "코로나19 이후 상황에 대비할 산업 안전망 구축이 시급하다"고 조언했다.
박세익·황석하·이승훈 기자 lee88@busan.com
이승훈 기자 lee88@busan.com , 박세익 기자 run@busan.com , 황석하 기자 hsh03@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