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남은 형제들] 03번째 증언(1) "훔쳤다 말하면 집에 보내주겠단 경찰의 한마디에 그만…"

이대진 기자 djrhee@busan.com
부산닷컴 기사퍼가기


※편집자주-1987년 봄, 부산 사상구 주례동 백양산 자락 육중한 담장 너머로 '형제복지원'의 참상이 세상에 알려졌다. 12년 동안 공식 사망자만 513명. 이후 33년이 지났지만 진상 규명과 책임자 처벌, 피해자 지원까지 단 한 걸음도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 <부산일보>는 '살아남은 형제들-형제복지원 절규의 증언' 영상구술사 프로젝트를 통해 피해자들 기억 속 진실의 조각을 맞춰보려 한다. 33인의 목소리가 모여 33년 전 '한국판 아우슈비츠'의 실체를 밝히는 한 걸음, 수만 명 피해자의 아픔을 치유하는 다음 걸음으로 이어지길...('살아남은 형제들' 시리즈는 매주 토요일 게재됩니다.)


<간추린 이야기>

지난해 11월에 이어 지난 5월 5일 두 번째 고공농성 단식에 들어간 최승우(51) 씨. 이틀 뒤, 여야가 형제복지원 진상규명을 포함한 '과거사법 개정안'을 처리하기로 합의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뒤늦은 '어린이날 선물'에 활짝 웃으며 농성장을 내려온 최 씨. 하지만 그가 받고 싶은 '진짜 선물'은 아직 멀었다. 14살 소년에게 '도대체 왜 그런 일이 일어나야만 했는지' 제대로 진상을 밝히는 일이다.

1982년 봄, 개금중학교 1학년생이던 최 씨는 평소와 다름없던 하교길에 기나긴 악몽을 맞닥뜨렸다. 담배를 피우던 경찰과 눈이 마주치는 순간 "수상하다"는 이유로 개금파출소 안으로 끌려들어갔다.

가방 속에서 먹다 남은 빵 한조각이 발견됐다. 도시락을 싸가지 못했던 최 씨 같은 학생에게 주는 '학교 배식'이었다. 하지만 소년은 수치심에 '못 사는 아이에게 주는 빵'이란 말을 차마 하지 못했다. 경찰은 "요 앞 슈퍼에서 훔친 거 아니냐"며 계속 다그쳤다.

방망이로 때리고 라이터로 성기를 지지는 '고문'을 당한 최 씨는 그저 악몽을 벗어나고 싶다는 생각, 빨리 집에 가고 싶다는 마음뿐이었다.

"바른대로 말하면 집에 보내주겠다"는 경찰의 회유에 그만 '거짓말'을 하고 말았다. "훔치지 않았는데 왜 자꾸 훔쳤다고 그래요?" 울먹이던 소년의 입에서 어느 순간 "슈퍼에서 훔쳤다"는 어처구니 없는 말이 튀어나왔다.

'경찰이 시키는 대로 훔쳤다고 말했으니 집에 보내주겠지'라고 생각했던 최 씨. 그러나 곧 '소대장' 모자를 쓰고, 팔에 '선도원' 완장을 찬 형제복지원 사람들이 파출소로 들이닥쳤다. 소년은 더 깊은 악몽 속으로 빠져들었다.

부랑인 선도차량을 타고 어둑해질 무렵 형제복지원에 도착한 최 씨. 시키는 대로 목욕탕에서 씻은 뒤, 정신병동 빈방에서 알몸으로 이불을 뒤집어 쓴 채 울다... 지쳐 잠들었다. 그러고 얼마나 지났을까. 덩치 크고 험상궂은 인상의 소대장이 들어오더니 최 씨를 덮쳤다. 계속된 성폭행으로 만신창이가 된 소년은 사흘째 되던 날 신입소대로 보내졌다.

문을 열고 내무반에 들어서는 순간 '사람이 있다'는 사실만으로 '다행이다'는 생각이 들었다. 홀로 견디던 악몽을 '같이하는' 이들이었다.

성치 않은 몸으로 훈련과 기합을 따라갈 수 없었던 최 씨는 맞고 또 맞았다. 반항하던 한 신입소대원은 동공이 풀릴 정도로 맞아 실려나간 뒤 돌아오지 않았다.

지옥과 같은 곳 아니, 지옥이었다.

형제복지원 피해자 한종선 씨 그림. 형제복지원 피해자 한종선 씨 그림.

<더 많은 이야기>

■ 먹다 남은 빵 한조각 때문에

1982년 4~5월경 봄이었어요. 수업 마치고 오후 한 4시쯤 돼서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었는데...

집이 개금파출소 근처였기 때문에 파출소를 거쳐서 육교를 건너 가야 되거든요. 그래서 걸어가고 있는데 저 앞에서 경찰관 1명이 보이더라고요.

기분이 조금 묘하니 그렇더라고요. 경찰관인데 담배를 피고...

그 경찰관이 딱 저를 쳐다보는 순간 "너 이리와봐 인마! 이 새끼 이거 수상한데? 이리와봐"하면서 나를 끌고 바로 옆 파출소로 데리고 들어가더라고요.

"이 시간에 도둑질하러 다니는 거 아니야?" 그 이야기를 하고 나서 가방을 빼앗고 가방 안을 검사하더라고요.

저는 할머니 밑에서 자랐기 때문에 도시락을 못 싸가서 학교에서 급식을 줬어요. 빵하고 우유.

우유만 마시고 빵을 먹다가 절반 정도를 가방에 넣어 놓았는데 그거를 발견하고 나서는 "이거 어디서 훔쳤냐"면서... 먹다 남은 빵인데... 다그치기 시작하더라고요.

"내가 못 사는 아이고 학교에서 배급을 해준다"라는 이야기가 차마 입에서 안 떨어지더라고요

"그냥 학교에서 주더라. 먹다 남은 빵이다"라고 이야기했더니 "이 새끼 이거 보니까 훔친 건데? 어디서 훔쳤어? 바른대로 말해!"하면서 그때부터 경찰관이 머리를 막 때리더라고요.

"아저씨, 훔치지 않았는데 왜 자꾸 훔쳤다고 그래요?" "집에 보내 달라"고 하면서 그때 눈물이 막 터지기 시작했는데 경찰관이 그 당시 옆에 차고 다니던 몽둥이로 막 패더라고요. 패면서 "바른대로 이야기하라"고...

"앞쪽에 슈퍼에서 뭐 자꾸 없어진다는데 니가 (범인)맞지? 니 딱 이 길로 오는 거 보니까. 훔쳐서 먹었던 거 맞지?" 하면서 계속 다그치길래 저는 끝까지 울면서 "안 훔쳤다"고 했는데 그때부터 인제 막 때리더라고요.

때리고... 고문을 했죠. 위에 교복을 벗고 밑에 바지를 내리고, 자기가 담배 피우던 라이터를 벌겋게 달아오르게 해서 성기에다가 지지고... 그런 고문을 진짜 엄청나게 했죠.

너무 무서워서 그때는 진짜 정말 미쳐버릴 것 같은 심정... '왜 내가 이유도 없이 이렇게 맞고 그 경찰관에게 고문을 당해야 하나' 너무 힘들더라고요.

"니가 바른말 하면 지금 당장 집에 보내 줄게"라는 그 한 마디에... 그래서 훔쳤다고 했죠 "요 앞에 슈퍼에서..."

그러니까 경찰관이 "진작에 새끼가, 바른말 할 것이지. 왜 지금까지 거짓말했어 이 새끼야. 안 맞을 걸 맞았잖아. 기다려"하면서 바로 전화를 하더라고요.

20분도 안 돼서 파출소 안으로 두 사람이 들어오는데 한 사람은 모자에 '소대장', 다른 한 사람은 '선도원' 완장을 차고 있었죠. 순간 너무 불길하더라고요.

그 사람들하고 경찰관하고 서로 이야기하고 뭔가 서류를 작성하는 것 같더라고요.

경찰관이 "목욕도 하고 정신 차리고 그러면 집에 보내줄 거다. 따라가라" 하더라고요.

'부랑인아 선도차'라는 글귀가 그 차에 붙어있었어요. 지금으로 말하자면 '냉동탑차' 같은 곳에다가 두드려 맞아가면서 강제로... 둘이서 저를 들고 태우더라고요. 그러고 나서 곧장 형제복지원으로 들어가게 됐죠.

형제복지원의 '부랑인아 선도차량'. 형제복지원 운영자료집 형제복지원의 '부랑인아 선도차량'. 형제복지원 운영자료집

■ 도대체 나한테 무슨 일이…

탑차에서 딱 내리는 순간 건물이 앞에 보이고, 철문이 보이더라고요. 정신병원 병동이 A·B·C동이 있는데, 거기가 처음 딱 들어가는 정문 옆에 A동이었죠.

A동 2층에 올라가서 발가벗기고 목욕탕을 데려가더라고요. 데려가서 씻기고 첫 번째 방인가... 침대가 7~8개가 양쪽으로 있었죠.

나를 데리고 왔던 소대장이 아닌 다른 소대장이 그때 당시 있었어요. 굉장히 무섭게 생기고 덩치도 컸죠. 그 사람이 침대를 가리키면서 "저기 들어가서 누워라"라고 해서 너무 춥기도 하고 무섭기도 하고, 옷도 안 주기에 이불을 덮고 있었어요.

'도대체 나한테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걸까'라는 그 순간적인 생각에 계속 눈물만 나오더라고요.

"아저씨, 집에 보내 달라"고 했지만 "말 잘 들으면 집에 보내주겠다"고 하고 그 뒤로부터 스르르 잠이 들기 시작했죠. 너무 지친 나머지...

잠도 푹 잔 게 아니고 악몽 속에서 잤는데 조금 눈을 붙이고 있는데 그 소대장 저녁에 들어와서 저를... 성폭행을 했죠... 강간을 했죠...

아 그때는 정말 고통스럽더라고요. 나한테 이렇게 일어나는 일들이 현실인지 싶기도 하고.

거기서 울고불고 했지만 그 소대장이 입을 막고 성폭행을 하더라고요.

3일 동안 그 소대장한테 성폭행을 당하고 항문에서 진짜 막 피가 나고. 그 정도로 진짜 힘든 상태에서 거의 다 죽어가는 그런 몸이었죠.

인터뷰를 이렇게 하면, 그때 악몽들이 떠올라요. 그냥 몸에서 두드러기가 날 정도로...

형제복지원 정신병동의 한 병실. 형제복지원 운영자료집 형제복지원 정신병동의 한 병실. 형제복지원 운영자료집

■ 맞아서 실려나간 뒤 못 돌아온 '그 사람'

우리집이 개금동이었는데 '형제복지원'하고 한 1km정도 떨어진 곳이라서 가까웠어요. 주례동에 사는 친구들도 있어서 오며가며 훤하게 보였던 곳이니까. 군인들이 있는 곳? 이 정도로 생각했지 형제복지원이란 생각은 전혀 못 했던 거죠.

트레이닝복 한 벌 입히고 검정고무신 주고 신입소대로 바로 보내더라고요.

(신입소대)그 안에 들어가는 순간, 나와 비슷한 아이들도 있고 어른들도 있고 이래서 순간적으로 사람이 있었기에 그나마 좀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죠.

제가 어리니까 앞쪽에 자리를 주더라고요. 일어나지도 못하는 그런 몸 상태에서 신입소대에 가서도 엄청 맞았죠. 거기에서 하루 일과 시키는 것들을 하지 않는다고.

신입소대에 들어가면 주로 하는 게 뭐냐면, 기합 받는 거예요. 어쨌든 규율을 잡아야 되니까.

누군가는 맞아서 늘 피가 나고... 쓰러져서 실려 나가고...

한 30~40대 정도 되는 사람이 "내가 왜 여기서 너희들한테 당해야 되노"하면서 공격을 하다가 결국 두드려 맞는 걸 눈으로 목격을 했죠.

네 사람 조장들이 담요를 덮어씌워 놓고 지근지근 밟는데 그 사람은 결국... 거동이 없더라고요. 입에서 피가 막 이렇게 나고, 눈에 동공이 그냥 홱 돌아가 있더라고요.

그 신입 한 사람이 끌려가는 걸 봤는데, 결국 그날 안 돌아왔죠. (그 사람이)죽었다고 생각을 했기 때문에 '잘못하면 맞아 죽는다'라는 그 생각이 엄청나게 강렬했던 거죠.

그곳은 정말 지옥과 같은 곳이다... 얼마나 많은 기합과 그렇게 폭행을 당하고 했는지 참...

이대진 기자 djrhee@

※본 기획물은 언론진흥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이대진 기자 djrhee@busan.com

당신을 위한 AI 추천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