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사진으로 보는 그 시절 부산의 동물원
1983년 부산 금강공원 내 동래동물원의 모습입니다. 타조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은 아이들은 지금 어떤 모습일까요. 부산일보DB
지난달 25일 부산 유일 동물원 '삼정 더파크'가 문을 닫았습니다. 폐쇄 10년 만에 다시 문을 연 부산 유일 동물원은 또 다시 아이들의 추억 속에서만 존재하게 됐습니다.
그래서 더파크 이전 부산의 양대 동물원이었던 동래·성지곡동물원을 <부산일보> 옛 사진 속에서 소환해봤습니다. 엄마·아빠 또는 아이 손잡고 동물원 들어가려고 줄섰던 그 시절, 기억나시나요?
■전국 최초의 민간 동물원
1995년 3월 1일 동래동물원에서 코끼리를 구경하는 상춘객들의 모습입니다. 부산일보DB
1964년 부산 동래구 금강공원 내 문을 연 '동래동물원'은 우리나라 최초의 민간 동물원이었습니다. 면적 3만 1600㎡( 축구장 4.5개 규모 ) 동물원이 문을 열었을 때 코끼리, 호랑이 등 동물 140종 860마리가 있었다고 하네요. 동물원의 인기가 얼마나 좋은지 휴일만 되면 동물원 입구부터 망미루까지 400m 구간은 입장표를 사려는 관람객들로 장사진을 이뤘습니다.
동래동물원은 1970∼1980년대 전성기를 누렸고, 대형 놀이공원 등이 생기면서 1990년대부터 쇠퇴의 길을 걷게 됩니다. 운영사도 제때 투자를 안 하는 바람에 경영난도 가중됐어요. 결국 동물원은 2002년 최종 폐쇄됐고, 코끼리를 비롯한 180여 마리의 동물들은 모두 대전동물원에 팔려 갔죠.
1978년 2월 28일 동래동물원을 찍은 사진입니다. 치마·저고리 차림과 중절모에 두루마기를 입은 관람객들이 눈에 띄네요. 부산일보DB
동래동물원이 문을 연 1964년부터 폐쇄된 2002년까지 사진으로 보는 관람객들의 모습도 쏠쏠한 재미를 선사합니다. 남녀노소 할 것 없이 행복한 표정은 시대와 상관없이 비슷하지만, 복장과 머리 모양 등은 변해 갔어요. 1960~1970년대 사진을 보면 치마·저고리 차림의 여성들이 많이 발견돼요. 할아버지는 중절모에 두루마기를 갖춰 입었죠. 1980~1990년대 사진에는 뽀글뽀글 파마머리를 한 여성들의 모습이 많이 보입니다.
1982년 동래동물원에 소풍 온 유치원생들입니다. 동래동물원에는 가족단위 나들이객, 유치원 초중고등학교 단체 관람객들이 늘 즐비했죠. 부산일보DB
동래동물원은 문을 닫기 전까지 부산 시민들의 '최애 나들이 장소' 중 하나였습니다. 특히 봄이면 가족단위 나들이객은 물론, 유치원, 초·중·고등학교의 단체 관람객도 즐비했죠. 동래동물원이 있던 금강공원은 당시 케이블카와 놀이시설, 동물원, 식물원 '4종 세트'를 갖춰 국내 최고의 유원지로 이름을 떨쳤으니 소풍 인파도 엄청났답니다. 40대 후반의 한 독자는 "고등학교 소풍 단골 코스가 동래동물원에서 코끼리를 보고 온천장 극장으로 이동해 영화를 관람하는 것이었다"고 회고하기도 했어요.
동래동물원 최고의 재롱둥이는 단연 물개였습니다. 1978년 2월 동래동물원에서 조련사가 물개에게 먹이를 던져주는 장면입니다. 부산일보DB
동래동물원에 다양한 동물이 있었지만, 최고의 재롱둥이는 단연 물개였습니다. 점프해서 긴 막대기에 걸린 물고기를 받아먹을 때 관람객들이 '물개박수'를 쳤죠. 1990년 6월에는 시민들의 사랑을 독차지했던 20년생 '금강(수컷)'과 5년생 '동래(암컷)' 가 1990년 6월에 새끼를 낳는 경사가 있었죠. 덕분에 동래동물원에는 물개 식구가 6마리로 늘었다고 하네요.
동래동물원의 '슈퍼 스타'는 코끼리 '삼돌이'었습니다. 삼돌이는 동물원이 문을 닫으면서 대전으로 팔려갔지만, 현재까지 잘 지내고 있다네요. 부산일보DB
동래동물원의 '슈퍼 스타' 하면 단연 이 동물이었죠. 바로 코끼리 '삼돌이'였습니다. 삼돌이는 코끼리로는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태어난 '국내산 1호 코끼리'입니다. 서울대공원에 있는 코끼리 '키마(암컷)'와 '칸토(수컷) ' 사이에서 1994년 태어났죠. 관람객들에게 재롱을 부려 인기를 독차지했던 삼돌이도 동래동물원이 문을 닫으면서 대전동물원으로 팔려갔어요. 정말 안타깝죠?
불행 중 다행으로 삼돌이는 현재 대전에서 건강히 잘 지내고 있다네요. 삼돌이 아빠 칸토는 2018년 6월 2일서울대공원에서 삶을 마쳤습니다.
■적자 눈덩이 민간 동물원의 한계
<부산일보> 1991년 9월 7일 자에 실린 기사입니다. 인기가 시들해진 동래동물원에 대해 다루고 있죠. 부산일보DB
1990년대부터 동래동물원은 민간 동물원의 한계를 고스란히 노출합니다. 부산 최고의 소풍 코스였던 동래동물원이 어떻게 몰락하고 있는지 <부산일보> 1991년 9월 7일 자 17면에 실린 기사는 다음과 같이 전합니다.
"각종 유원지 놀이기구의 발달로 부모들이 자녀들을 동식물원에 데려가기보다는 근교 유원지로 데려가는 풍조가 확산됨에 따라 이곳을 찾는 시민들의 발길은 갈수록 뜸해지게 됐다. "
"이 때문에 또 수입이 줄게 된 동물원 측이 더 이상의 투자를 외면함에 따라 시민들의 관심 밖으로 밀려나는 악순환이 되풀이되고 있다. "
실제 1994년이 되면 동래동물원은 한 차례 폐쇄 위기를 맞게 되지요. 당시 동물원 측은 동물 사료비와 인건비 등에만 연간 5억 원이 드는데, 입장 수입은 2억 원에 불과해 적자만 눈덩이처럼 불어난다고 전합니다. 동물원 측은 결국 부산시에 동물원 인수 등 해결책 모색을 요청했지만, 이미 회생이 어려운 지경에 빠졌어요.
2014년 12월 25일 세상을 떠난 동래동물원의 황제 펭귄 생전 모습이에요. 부산일보DB
이런 와중에 동래동물원에서 비극이 하나 발생합니다. 그때 동래동물원에는 부산에서 유일하게 남극산 황제펭귄 한 마리가 있었죠. 그런데 이 펭귄이 그만 죽어버린 거예요.
한 수산업체로부터 기증 받은 이 펭귄은 기록적인 폭염이 덮쳤던 1994년 여름 얼음을 충분히 공급받지 못해 스트레스를 받은 데다 식욕부진으로 영양실조에 빠졌습니다. 결국 시름시름 앓다가 그해 11월 25일 새벽 세상을 떠났어요.
당시 동물원 관계자는 "황제펭귄은 그 동안 하루 3~4마리의 전어와 고등어를 먹어 치워 심각한 병이 아닌 것으로 생각했는데 이틀 전부터 숨을 가쁘게 쉬면서 움직이지 못했다"면서 비탄에 빠졌습니다.
동물원은 그야말로 초상집 분위기였어요. 가뜩이나 경영난으로 동물원이 폐쇄될 위기에 처했는데, 동물마저 죽어나가니 실의에 빠질 수밖에 없었겠죠.
1994년 12월에는 효림초등학교 학생들이 동래동물원을 살려달라면서 성금 5만여 원을 모아 <부산일보>에 기탁했어요. 부산일보DB
동래동물원이 폐쇄 위기에 처했다는 소식이 알려지자 시민들의 실망감도 컸습니다. 그러자 동래동물원을 살려야한다는 움직임도 일어났습니다. 그중에는 초등학생들도 있었는데, 바로 부산 사하구 장림2동의 효림초등학교 학생들이었죠.
운동의 발단은 이 학교 6학년 8반의 학급회였습니다. 1994년 11월 25일 동래동물원의 황제펭귄이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을 접하고 충격을 받은 학생들은 동래동물원을 살리기 위한 학급회의를 열고 성금을 모으기로 결정했어요. 이어 전교 45개 학급 별로 모은 성금 5만 6890원을 <부산일보>에 기탁했어요. 정말 기특하죠? 학생들이 보낸 편지를 한번 읽어볼까요?
"동래동물원은 우리 어린이들의 꿈과 희망이 가득 담겨 있으며 신기한 동물을 실제로 볼 수 있어 산지식을 얻을 수 있는 좋은 학습장입니다. 동물원을 살리기 위해 신문사 아저씨들께서도 도와주세요. … 조그마한 정성이 받는 이에게 큰 기쁨이 되듯 우리의 작은 정성도 동물들에게는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동물 구경에 놀이기구는 덤
1992년 4월 19일에 찍힌 성지곡동물원 사진입니다. 아이들이 늑대를 구경하고 있어요. 부산일보DB
성지곡동물원은 1982년 어린이대공원 내에 문을 열었어요. 면적은 1만 4035㎡(축구장 2개 규모)였고, 폐쇄될 당시 동물 85종 410마리가 있었다고 합니다. 성지곡동물원은 특히 어린이대공원에 있어서 아이들이 동물도 구경하고, 다양한 놀이기구도 탈수 있었어요. 부산 어린이들에게 그야말로 '인기 만점' 장소로 사랑받았습니다.
성지곡동물원의 물개 연기는 서울 대형동물원도 부러워할 정도였죠. 1992년 4월 19일 성지곡동물원에서 재롱을 부리는 물개 모습입니다. 부산일보DB
성지곡동물원 역시 '물개쇼'로 유명했어요. 조련사가 물개에게 가르친 묘기가 물구나무서기, 피아노 연주 등 60여 가지에 이른다고 하네요. 서울에 있는 대형 동물원들이 군침을 흘릴 정도로 연기가 수준급이었죠. 이 물개들이 주로 먹는 것은 고등어와 꽁치, 오징어였다고 합니다. 한때 물개 9마리가 하루에 고등어 5상자를 먹어 치웠다고 하니 물개를 먹이는 비용도 만만치 않았겠죠.
2002년 3월에는 부산·경남에서 성지곡동물원에 딱 한 마리가 있는 코끼리가 요절하는 사건도 있었죠. 위 코끼리는 1994년 4월 24일에 촬영된 것입니다. 부산일보DB
2002년 3월에는 부산·경남에 딱 한 마리 있던 20살 코끼리가 요절해 주위를 안타깝게 만들었죠. 코끼리가 갑자기 쓰러져 동물원 측은 코끼리를 세우려고 온갖 노력을 기울였지만 결국 다시 일어서지 못했답니다. 코끼리는 쓰러져 몸을 일으키지 못하면 배설을 못하고 복부에 가스가 차 결국 죽게 돼요. 코끼리가 보통 60년까지 사는데 이 코끼리는 평균 수명 3분의 1밖에 채우지 못한 셈이죠.
성지곡동물원 역시 1990년대 중반부터 인기가 시들해지면서 만성 적자에 시달리게 됩니다. 심지어 동물 사료조차 조달하기 어려웠다고 하네요. 부산시는 한때 동래·성지곡동물원을 인수하는 것도 고려했지만, 실현되지 않았어요. 성지곡동물원도 결국 2005년 10월 문을 닫아버렸죠. 물론 '더파크'라는 이름으로 2년 만에 재개장하려 했지만 더파크는 2014년이 돼서야 모습을 드러냅니다.
■'신창원 원숭이'를 아시나요
1997년 12월에 성지곡동물원을 탈출한 원숭이는 신출귀몰한 행동이 신창원을 닮았다 해서 '신창원 원숭이'라는 별명이 붙었습니다. 당시 <부산일보>에 보도된 '신창원 원숭이' 삽화. 그래픽=류지혜 기자 birdy@
동물원에서는 동물이 탈출 소동을 벌이는 일이 종종 벌어지죠. 성지곡동물원도 예외는 아니었는데요, 그중 1997년 12월에 동물원을 뛰쳐나간 원숭이는 혀를 내두를 정도입니다.
앉은키 40cm가량의 히말라야 원숭이는 동물원에서 탈출해 인근 100여 개 주택을 돌아다니면서 배달우유를 훔쳐먹거나 장독을 깨는 행패를 일삼았다고 하네요. 심지어 집 주인에게 들켜 달아난 원숭이가 다음날 또 찾아와 장독에 오줌을 누는 보복까지 했다고 하니 참으로 영악하죠.
동물원과 경찰이 원숭이 검거에 나섰고, 원숭이 생포에 현상금 30만 원도 붙었어요. 그런데 이 원숭이가 워낙 신출귀몰해서 허탕을 치기 일쑤였죠. 오죽했으면 이 원숭이가 1997년 1월에 탈옥한 신창원 같다고 해서 '신창원 원숭이'라는 별명까지 붙었을까요.
'신창원 원숭이'의 생포 과정을 묘사한 <부산일보> 1999년 2월 6일 자 기사입니다. 부산일보DB
원숭이의 도피행각은 1999년 2월에 붙잡히면서 끝이 납니다. 무려 1년 3개월 만에 붙잡혔으니 대단하죠? <부산일보> 1999년 2월 6일 자 보도에는 '신창원 원숭이'의 생포 과정이 상세히 묘사돼 있어요. 이 원숭이를 잡으려고 동물원 사육사와 119구조대원 10명, 주민 20명이 투입됐죠. 원숭이를 잡으려고 조련사가 여장까지 하는 수고도 마다하지 않았어요. 이렇게 허무하게 잡힌 원숭이는 성지곡동물원에서 여생을 편안하게 마쳤을까요?
■모두가 행복한 동물원은 부산에 언제?
지난달 25일 개원 6년 만에 폐쇄된 '삼정 더파크'의 출입문이 가로막혀 있어요. 이를 바라보는 아이와 어른의 뒷모습이 씁쓸해 보입니다. 부산일보DB
"왜 동물원이 문을 닫았어요?"
아이가 이렇게 물었을 때 여러분은 어떻게 답하셨나요? 아마도 "코로나 바이러스 때문에 닫았어"라고 대답하신 분도 계실지 모르겠습니다. '삼정 더파크'를 둘러싼 부산시와 민간 기업 사이의 복잡한 관계를 아이에게 설명하기가 쉽지는 않을거에요. 우리는 부산시와 민간기업의 지리멸렬한 줄다리기를 언제까지 봐줘야만 할까요? 아이들과 동물 모두 행복한 동물원을 언제쯤 가질 수 있을까요?
황석하 기자 hsh03@busan.com
※이 기사는 아래 링크를 통해 <부산일보> 인터랙티브 포토 스토리로 보실 수 있습니다.
황석하 기자 hsh03@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