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전거도로 달릴 전동킥보드, 인프라 뒷받침 안 돼 지뢰밭
지난달 20일 국회 문턱을 넘은 도로교통법 개정안이 시행되는 올 12월부터 전동킥보드가 자전거도로 위를 합법적으로 질주하게 됐지만, 정작 자전거도로 사정이 열악해 보행자와 자전거에다 전동킥보드까지 뒤섞이는 아찔한 상황은 개선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법은 현실을 반영했으나 현장의 정부와 지자체 모두 자전거도로 정비·확충에는 의지가 없어 시민 안전을 등한시하고 있다는 지적이 잇따른다.
2일 부산시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부산의 자전거도로 총 길이는 441.64㎞다. 이 중 보행자와 자전거가 함께 사용하는 ‘자전거·보행자 겸용도로(이하 겸용도로)’가 390.47km로 88.41%에 이른다. 반면 인도와 차도 사이에 분리된 ‘자전거전용도로(이하 전용도로)’는 49.28㎞로 고작 11.14%에 불과하다.
12월부터 개정법 시행 운행 합법화
곳곳에 충돌 위험·장애물 ‘지뢰밭’
시, 예산 확보 않고 말로만 ‘활성화’
문제는 인도 위에 자전거도로가 설치된 겸용도로가 압도적으로 많다 보니 보행자와 전동킥보드의 충돌 위험이 늘 도사리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 〈부산일보〉 취재진이 지난달 26일부터 이틀 동안 부산 남구 대연동과 수영구 광안리해수욕장 겸용도로에서 전동킥보드를 타 보니 곳곳이 ‘지뢰밭’이었다. 도시철도역을 지날 때 출구와 엘리베이터, 환풍구, 변압기 등이 나타나 인도로 방향을 틀 수밖에 없었다. 인도 너비가 2m가 채 되지 않는 구간에서는 보행자를 아슬아슬하게 스쳐 지나갔다. 광안리 해변 겸용도로는 전체 너비가 10m에 이를 정도로 넓지만, 아이부터 어르신까지 산책 나온 시민들과 움직임을 예측하기 힘든 반려견 사이로 자전거와 전동킥보드 등 각종 탈것이 어지럽게 뒤엉켰다.
이번에 개정된 도로교통법은 전동킥보드 이용 가능 연령을 만13세 이상까지로 대폭 낮춰 전동킥보드를 비롯한 ‘개인형이동수단(PM·Personal Mobility)’ 이용자가 폭증할 것으로 예상된다. 실제 빅데이터 플랫폼 ‘모바일인덱스’가 지난달 25일 펴낸 보고서는 전동킥보드 앱(안드로이드 기준) 사용자가 지난해 4월에 3만 7294명이었지만, 올 4월에는 21만 4451명으로 6배 가까이 증가했다고 밝혔다.
PM 시장의 급속한 성장에 발 맞춰 전동킥보드와 자전거 등을 안전하게 탈 수 있는 전용도로를 확충해야 하지만, 현실은 이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2018년 수립된 ‘부산시 자전거 이용 활성화 계획’을 보면 부산시는 2019년부터 2023년까지 168억여 원을 들여 자전거도로 38개 노선(72.27km)을 새로 만들겠다고 공언했었다. 그런데도 현재까지 반영된 예산은 단 한 푼도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
심지어 사라질 위기에 처한 자전거전용도로도 있다. 2009년 설치된 부산 남구 도시철도 2호선 경성대·부경대역~㈜한탑 1.2km 구간이다. 이 지역은 무가선 저상트램 건설이 확정돼 좁아진 차로 확보를 위해서는 전용도로를 철거할 수밖에 없다고 한다.
부산시 관계자는 “이명박 정부 때는 자전거 타기를 장려해 국비 예산이 많이 내려왔지만, 현재는 그렇지 않다”며 “계획된 노선 중에서도 실시설계 단계까지 가야 전용도로 확정 여부를 알 수 있다. 전용도로를 만들려면 차로를 줄여야 하기 때문에 쉽지 않다”고 말했다.
반면 공유자전거 ‘따릉이’를 운영하는 서울시의 경우 자전거 전용도로 길이가 부산보다 3배나 긴 148.7㎞에 이르고, 자전거도로 전체에서 차지하는 비율도 부산보다 5%포인트 가까이 높다. 서울시 관계자는 “앞으로 신설하는 자전거도로는 가급적 전용도로 형태로 만들 것이다”며 “전동킥보드의 자전거도로 허용이 쟁점으로 떠오른 만큼 설계 기준 변경 등 세부적인 사안을 고민하고 있다”고 답변했다.
황석하 기자 hsh03@
황석하 기자 hsh03@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