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수록 +] 메주와 누룩에 왜 곰팡이를 슬게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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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호의 미생물 이야기(32)

음식에 곰팡이가 피면 기겁을 하면서도 왜 메주에는 일부러 슬게 할까. 그 이유는 우리의 대표적 양조식품인 간장·된장을 만들기 위함이다. 이 곰팡이는 인체에 무해하고 콩 단백질 등을 분해하는 프로테아제(protease)를 대량 생산해 준다. 이를 누룩곰팡이라 부른다. 미생물이 스스로 메주 속에서 살아가기 위해 만든 효소를 인간이 대신 빌려 쓰는 셈이다. 이 곰팡이는 전분분해효소인 아밀라제(amylase)의 생산능도 강하다.


놀라운 것은 메주의 재료인 대두(大豆)의 원산지가 한반도라는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을 수입에 의존한다. 수입 콩은 우리의 재래종을 서양이 가져다 개량한 것이라니 정말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그래도 원산지답게 콩의 이용성은 우리가 세계 으뜸이다. 간장, 된장, 청국장, 두부, 콩자반, 콩나물 등 그 종류는 다양하다.


메주를 만드는 것이 양조과정에서 가장 중요하다. 좋은 메주가 간장·된장의 질을 좌우하기 때문이다. 메주를 소금물에 침지하여 숙성시키는 과정은 그냥 하나의 기계적 수순일 뿐, 크게 기술적·학문적 배경은 필요치 않다. 메주를 소금물에 넣어 장기간 콩 속 단백질을 녹여내는 과정을 ‘장담기’라 한다. 이때 불용성인 콩 단백질이 미생물효소에 의해 아미노산과 짧은 펩타이드로 녹아나와 간장의 맛을 좋게 한다. 된장과 간장의 맛은 아미노산 맛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메주를 만드는 방법은 간장의 종류에 따라 달라지기 때문에 이하 예를 들어 설명한다.


전통식 메주 : 이를 조선식, 한식, 재래식메주라고도 하며 우리의 간장·된장을 만들기 위한 주재료이다. 과정은 우선 대두를 충분히 물에 불린다. 열에 의해 잘 삶겨져 조직의 붕괴를 도와주기 위함이다. 삶는 시간을 오래하면 좋다. 이렇게 하면 미생물이 만들어 준 효소에 의해 물질분해가 잘 일어나 콩 성분이 간장 속에 많이 녹아 나올 수 있어서다.


다음은 삶은 콩을 적당히 파쇄하기 위해 절구에 찧거나 갈아준다. 기호에 따라 찧는 정도는 달리한다. 곱게 갈아주면 효소에 의한 분해속도는 빨라지나, 나중에 된장으로 사용할 경우 분말이 미세하여 싫어하는 사람도 있다. 성형의 형태는 정해진 것이 없으나 보통은 적당한 크기의 사각형으로 뭉쳐준다.


전통식 메주는 따로 미생물을 식균(植菌)하지 않고 환경에 있는 것이 자연히 착생하여 자라게 한다. 성형 후 볏짚을 깐 따뜻한 바닥에 옮겨놓고 며칠 동안 방치한다. 짚에는 단백질분해 효소를 생산하는 고초균이 많이 붙어있어서다. 실제 메주에는 누룩곰팡이뿐만 아니라 단백질분해능이 강한 고초균도 많이 번식한다. 그렇다고 이 고초균은 인체에 나쁘지는 않다. 청국장균과 거의 동일한 세균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환경 속 다양한 미생물이 메주에 착생하여 왕성하게 자란다는 점이다. 이때 유해미생물이 자랄 위험이 다분히 높다는 것. 온갖 잡균이 자랄 수 있어 자칫 인체에 해로운 물질이 만들어지기도 해서다. 실제 전통식메주는 만드는 사람, 장소, 계절에 따라 그 질이 달라진다. 비위생적일 수도 있고 일정한 제품이 나오지 않을 수도 있다.


이런 전통메주에는 실제 독소를 생성하는 곰팡이가 자주 확인된다. 황색, 청색(푸른색), 검은색 등 여러 곰팡이가 번식하는데 그중에는 독소를 만드는 것이 간혹 있다는 것. 지난해에도 전통된장과 메주를 식약처가 수거해 검사한 결과, 517개 제품 중 30개 제품에서 아플라톡신 등 곰팡이독(mycotoxin)이 기준치를 초과했다. 이들 독에는 간장독, 신장독, 신경독, 위장독 등이 포함된다.


개량식 메주 : 전통메주의 단점을 보완한 것이 소위 개량메주라는 것이다. 좀 더 과학적이고 합리적인 방법을 쓴다. 미생물의 자연착생을 기다리지 않고 우량곰팡이를 분리·보관했다가 삶은 콩에 직접 이식해 비교적 무균적인 환경에서 단시간 배양한다. 당연히 메주 덩어리를 만들지 않는다. 낱알로 된 메주콩에 곰팡이가 번식한 알메주가 그것이다. 개량메주로 간장을 담그는 편이 실패할 확률이 적고 독소문제도 없다. 전통메주에서 나는 특유의 이취도 적다. 겉으로 보기엔 곰팡이의 포자가루가 펄펄 날려 우려도 하지만 인체에 해롭지는 않다. 보통 물로 살짝 헹궈내고 쓰지만 이때는 효소의 손실도 감수해야 한다.


양조간장용 메주 : 이상한 사실이 있다. 전통(조선)간장도 양조식이지만 어째서인지 양조간장이라 하지 않는다는 것. 양조간장은 왜식간장만을 의미한다. 해괴한 경우가 아닐 수 없다. 왜식간장을 만드는 메주는 재래식과 전혀 다르게 제조한다. 콩가루와 통밀을 갈아 같이 섞어 쓰며, 사용 균주는 자연착생을 기다리지 않고 우량종을 선별해 거의 순수하게 배양한다. 덩어리로 하지 않고 가루형태로 한다. 잡균의 오염에 의한 실패의 염려가 적고 독소문제에도 자유롭다. 전통된장에 가끔 나타나는 쓴맛도 적다.


왜식은 간장용과 된장용을 따로 만든다. 우리처럼 간장을 담그면서 된장은 빼지 않는다. 이때는 철저히 분해하여 남는 찌꺼기는 버린다. 밀가루전분이 들어가므로 포도당이 나와 단맛을 낸다. 우리의 전통메주와 원리는 같으나 가장 큰 차이는 밀가루 등 전분질을 혼합하고 간장용과 된장용을 따로 만든다는 것이다. 용도와 선호도에 차이는 있지만 우리 전통메주보다 과학적이고 위생적인 셈이다. 시중에 유통되는 간장 중에는 이런 왜식간장이 가장 많다, 아니 대부분이다. 일본에서는 우리처럼 가정에서 간장·된장을 만들어 먹는 습속이 없다. 이런 메주는 시장에 유통되지도 않는다.


그럼 우리도 철저하게 제조과정을 통제하면 이런 곰팡이 독소에서 자유로울 것이 아닌가하는 생각이다. 즉, 단백질분해능이 강한 우량종을 선택하여 사용하는 방법 말이다. 그런데 왜인지 그렇게 만들면 법적으로 전통메주가 아닌 개량메주가 된다는 것. “전통메주는 대두를 주원료로 하여 찌거나 삶아 성형하여 발효시킨 것을 말한다.”라고 법으로 규정지어 있어서다. 즉, 우량종을 선별하여 종균으로 사용하면 전통메주가 아닌 개량메주가 되고 이 메주로 간장을 담으면 조선간장이 아닌 양조간장으로 해야 한다는, 요상한 법규 말이다.


문제는 자연조건에서 만드는 전통메주는 이들 유해균의 차단이 불가능하고, 아플라톡신 등 곰팡이 독의 제어가 어렵다는 점이다. 이를 막기 위해 우량종으로 전통메주를 만들어 간장을 빼도 우리의 전통간장으로 쳐 주지 않는다는 사실, 이 무슨 개와 도야지 같은 법인가.


이런 식품공전의 허점은 손봐야 할 적폐에 해당한다. 전적으로 자연에 의존하면 그게 전통이고 재래식인가. 이런 비위생적인 방법도 우리가 지켜내고 장려해야할 덕목인가. 이는 필시 천연(자연) 좋아하는 세태가 만들어 낸 병폐이지 싶다. 소비자의 건강을 해칠 수 있는 전통이라면 폐기하고 마땅히 과학이 관리하는 제도를 도입해야 한다.


누룩에 대해서는 전회에 이미 글을 썼다. 간단히 언급한다. 메주와 동일한 곰팡이를 쓰기 때문에 누룩이 메주와 유사한 것으로 생각하기 쉬우나 전혀 다르다. 이 곰팡이는 단백질분해효소뿐만 아니라 전분을 분해하는 아밀라제도 다량 생산해 주기 때문에 간장과 술 담기에 같이 쓴다. 누룩은 콩이 아닌, 전분질이 많은 밀이나 쌀로 만든다. 누룩곰팡이가 만드는 효소로 전분(녹말)을 분해하고 이를 효모로 하여금 술로 전환케 하는 조작이 ‘술 담기’다. 즉, 누룩은 전분을 포도당으로 만들어 주는 아밀라아제를 확보하기 위해 곰팡이를 키우는 셈이다. 이에도 전통식(재래식) 누룩이 있고 개량식이 있다. 지금도 전통방식을 고수하는 양조장도 있지만 대개는 개량법을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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