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라-리] "최초 공개합니다" 부산 용두산공원 주차장에 2개의 동굴이?!

이승훈 기자 lee88@busan.com , 정수원기자 blueskyda2@busan.com , 남형욱 기자 thoth@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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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미스터리 수사대 '날라-L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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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2월 '부산 동광동 거대땅굴'(busan.com 2월 25일 자)편을 찍던 중 마주쳤던 한 동굴.

부산 대표 관광지 '용두산공원' 한 주차장 담벼락에 2개의 입구가 나란히 뚫려 있었습니다. 아쉽게도 당시 자물쇠로 굳게 닫혀 들어갈 수 없었습니다.

그 동굴의 정체는 무엇일까요?

15일 오후 2시 부산 중구 용두산공원 A주차장.

성인 가슴까지 올라오는 '멜빵 몸장화'를 신고, 손전등을 집었습니다. 이날 부산시설공단 도움으로 이전에 실패했던 '주차장 동굴'에 들어가기로 한 겁니다.

동굴 안은 물이 상당히 차오른 상태라고 합니다. 배수가 잘 안 되는 데다, 최근 잦은 비 소식에 빗물이 고였다고. 설상가상 촬영 당일도 비가 추적추적 내렸습니다.

조명도 없고 내부 구조도 모르는 '깜깜이' 상황에 다들 긴장했습니다. 동행한 공단 중앙공원사업소 관계자는 "외부 출입 통제와 모니터링은 지속적으로 해왔지만, 이렇게 내부 깊숙이 들어가 보긴 처음"이라고 합니다.

담벼락에 있는 2개 동굴 중 오른쪽 입구로 먼저 진입했습니다. 초입에는 10~20m 길이 좁은 통로가 나옵니다. 성인 1~2명이 한 번에 들어갈 정도의 크기입니다.

동굴 '본체'는 그 이후부터였습니다. '시멘트벽'은 사라지고, 해안절벽에 박혔을 법한 큰 바위가 사방을 둘렀습니다. 뾰족하게 모난 바위 형태를 봤을 때, '인공 동굴'로 추정됩니다.

예상한 대로 빗물이 꽤 차 있었습니다. 공단 관계자에 따르면 수심은 성인 허리 높이 정도. 그러나 메아리치는 목소리에 깜깜한 내부 등 동굴이 주는 위압감에 한동안 들어가지 못하고 머뭇댔습니다.

단단히 마음먹고 들어간 내부는 길이가 족히 30~40m. 다만 왼쪽에 나 있는 다른 동굴과 연결되진 않았습니다.

길은 'ㄷ자형'으로 나 있었는데, 중간 지점에는 4~5평 되는 작은 방이 있었습니다. 끝 지점에는 위에서 무너져 내린 듯 흙과 바위들이 널브러져 길을 막았습니다. 확인되지 않았지만, 동굴은 더 뚫려 있었던 것으로 추정됩니다.

왼쪽 동굴은 상대적으로 입구가 컸지만, 내부는 작았습니다. 창고 형태의 작은 방이 전부였습니다. 벽면은 거친 바위도 없이 깔끔하게 마감됐습니다.

취재 결과, 이 동굴들은 일제강점기 태평양전쟁 때 지어진 '방공호'였습니다.

부경근대사료연구소 김한근 소장은 "동굴에 있는 주차장 부지는 옛 소학교가 있던 곳으로, 일본인 학생과 교사 대피를 위해 굴을 지은 것으로 보인다"면서 "당시 부산항 일대에 연합군의 B-29 등 융단폭격기가 가끔 출몰하니, 일본군이 군데군데 방공호를 만들라고 지시한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다만 내부 형태는 일반적인 방공호와 조금 다르다고 합니다. 통상 방공호는 폭격으로 한 쪽이 막힐 경우를 대비해 출입구를 2개 뚫습니다. 그러나 이날 왼쪽 방공호는 입구도 하나인 데다, 방 같은 공간이 전부였습니다. 일시적 공습에 대비해 잠시 대피하는 곳이거나 일본인들의 소형 창고일 가능성이 제기됩니다.

일제강점기 때 학교가 있던 자리에는 보통 방공호가 뚫려 있다고 합니다. 그러나 '인명대피용'임에도 불구하고 일본인 학생이 많이 다니는 학교 위주로만 볼 수 있다고..

취재 도중 우리는 용두산공원 일대 방공호가 무려 7~8개 더 있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공사나 다른 이유로 내부를 들여다볼 수 없다고. 실제 이날 찾아간 현장은 시멘트로 입구가 막혔거나, 공사로 인해 입구로 통하는 길이 끊겼습니다.

대부분 방공호는 한국에서 근무하는 일본인 고위직 관료들을 위한 겁니다. 과거 용두산공원 일대에는 지금의 부산시청, 부산헌병대, 일본 신사(神社) 등이 있었습니다.

옛 부산헌병대 부지에 개인용 방공호도 목격됐다는 증언이 나옵니다. 동광동에 사는 한 주민은 "높이가 180~200cm 정도로 성인 한 명이 이동할 정도의 '탈출구'가 건너편 집에 뚫려 있었다"면서 "바로 옆 언덕을 따라 동굴 길이만 수십m 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용두산공원 일대는 가는 곳마다 부산의 '아픈 역사'였습니다. 부산항에서 일본인 신사로 가는 계단, 그 계단에 박혀 있는 일본인 묘비석, 배수로가 나 있는 독특한 건물 축대 등 무심코 지나쳤던 것들이 모두 일제강점기 흔적입니다. 이런저런 개발로 정체를 알기도 전에 사라진 역사도 많습니다.

전문가들은 안타까웠던 '그때의 모습'은 후대에 재해석되거나 미래의 자산이 될 수 있다고 말합니다.

"여태껏 일제강점기 시설물들이 당장 필요한 용도와 맞지 않다는 이유로 방치되기 일쑤였습니다. 지금부터라도 제대로 된 실태조사와 보전 방안을 모색하는 것이 우리 역할 아닐까요."

이승훈·남형욱 기자 lee88@busan.com

제작=정수원 PD / 정연욱 대학생인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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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훈 기자 lee88@busan.com , 정수원기자 blueskyda2@busan.com , 남형욱 기자 thoth@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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