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른말 광] < 919 > 보름딸 뜬 산낄에서?

이진원 기자 jinwoni@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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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원 교열부장

〈“슛오프 때 ‘쫄지 말고 대충 쏴’ 했는데 운빨 좀 받았어요”〉

어느 신문에 실린 도쿄 올림픽 양궁 삼관왕 ‘안산’ 선수 인터뷰 기사 제목인데, 잘못이 2개 있다.

먼저, ‘쫄지 말고’는 ‘졸지 말고’라야 했다. ‘위협적이거나 압도하는 대상 앞에서 겁을 먹거나 기를 펴지 못하다’라는 우리말 속어는 ‘쫄다’가 아니라 ‘졸다’이기 때문이다.(‘재주도 없고 졸망하게 생긴 사람을 낮잡아 이르는 말’도 ‘쫄보’가 아니라 ‘졸보(拙甫)’인데, 이건 ‘졸다’와는 상관없는 말이다.)

또 ‘운빨’은 ‘운발’의 잘못이었다. 이 말은 운수를 뜻하는 ‘운’에 기세 또는 힘의 뜻을 더하는 접미사 ‘-발’이 붙은 파생어이기 때문이다. ‘끗빨, 말빨’로 소리 나지만 ‘끗발, 말발’로 써야 하는 것과 마찬가지.(참고로, 일부 명사 뒤에 붙어서 ‘효과’의 뜻을 더하는 접미사도 ‘-빨’이 아니라 ‘-발’로 써야 한다. ‘조명빨 화장빨 약빨’이 아니라 ‘조명발 화장발 약발’이 옳은 것.)

사실 저렇게 소리 나는 대로 쓴다면, 우리말은 좀 우습게 될 것이다. 어떻게 되는지 보자.

‘식땅밥보다 집빱이 좋다./보름딸이 뜬 날엔 산낄 쪽 길까보다는 강까에서 술짠을 기울이는 게 운치 있다./그 녀석은 압따리를 꺼떡꺼리며 만화까게에서 만화를 보는가 했더니 어느새 길꺼리로 나왔다./봄빠람 앞의 등뿔 같은 존재.’

설마, 이렇게 쓰는 사람이 어디 있겠느냐고 반문할 일이 아니다.

‘음식에도 웰빙 요리가 대세다. 그중에서 전통방식의 호박꼬지 요리가 뜨고 있다. 호박꼬지란 호박을 얇게 썰어 그늘에 바싹 말린 것을 말한다.’

‘머위, 도라지, 마늘, 호박꼬지, 고구마 줄기, 시금치, 상추, 무청, 토란대 같은 로컬푸드 상품들이 이슬 맞고 햇볕 쬐고 정말 좋은데. 지금 젊은 댁들이 깨끗하고 화려하고 좋은 것만 사 가요.’

이들 기사에 나온 ‘호박꼬지’가 바로 그런 예인 것. 국립국어원에서 펴낸 〈표준국어대사전〉을 보자.

*호박고지: 애호박을 얇게 썰어 말린 반찬거리. 물에 불려 볶아서 나물로 무쳐 먹는다.(울타리마다 주렁주렁 매달려 달게 익은 호박고지를 보노라니 저절로 자기 혼자 풍성해지는 기분이었다.〈이문구, 장한몽〉

이렇게 ‘호박고지’로 써야 할 것을, 발음 때문에 언론마저 ‘호박꼬지’로 쓰는 게 현실이다. 하지만 ‘호박, 박, 가지, 고구마 따위를 납작납작하거나 잘고 길게 썰어 말린 것’을 ‘고지’라 부르니 호박을 썰어 말린 것은 ‘호박고지’가 된다. 박은 ‘박고지’가 되고…. 다만, ‘가지고지’는 〈우리말샘〉에서 ‘가지말랭이’의 충청 방언으로 처리했으니 참고하실 것. jinwoni@busan.com


이진원 기자 jinwoni@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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