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감] 누군가에게 10월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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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정아 소설가

비로소 가을이다. 가로수 아래를 걸으면 옅은 갈색의 나뭇잎이 바스락거리며 발에 밟힌다. 서늘한 바람이 이마를 스치고 지나가는 느낌이 좋아서, 이런 계절에는 가끔 먼 길을 돌아간다. 하염없이 아름답고 평화로운 시간이다.

하지만 어떤 가을은 결코 아름답지도 평화롭지도 않았을 것이다. 누군가에게는 봄꽃 피는 4월이 시리도록 아픈 계절이 되고,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신록으로 빛나는 5월이 지울 수 없는 고통으로 남아 있듯이, 어떤 이에게는 10월이 그러했을 것이다.

1979년의 10월을 생각해 본다. 자유가 억압받고 민주국가의 이념이 땅에 떨어진 시절, 부산의 학생들이 거리로 나왔다. 그들은 지금 내가 누리고 있는 이 가을의 청명한 공기를 여유롭게 즐길 수 없었다. 다만 최루탄과 곤봉 등 폭력 진압에 맞서면서 ‘유신철폐, 독재타도’를 외쳤다. 그런 학생들을 보고 시민들도 함께 거리로 나섰다. 10·16부마민주항쟁의 시작이었다.

지난 15일 막을 내린 부산국제영화제에서 다큐멘터리 경쟁 부문 초청작인 ‘10월의 이름들’을 보았다. 부마민주항쟁에 참여했던 이들의 오랜 기억을 소환해내는 영화였다. 인터뷰이들은 세월이 켜켜이 내려앉은 목소리로 어린 시절의 이야기부터 담담하게 꺼내놓는다. 그들 역시 여느 누구처럼 평범한 유년 시절을 보냈고, 어쩌면 계속해서 그렇게 살아갈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날 그 거리에 나가지 않았다면, 민주주의를 부르짖지 않았더라면 말이다. 그러나 그들은 거리로 나가는 것을 선택했다. 그 결과 국가의 폭력 앞에 무참히 짓밟히고 구금당하고 고문과 협박을 겪어야 했다. 구금에서 풀린 후에도 전과가 남고 오랫동안 감시를 받는 등 어려운 생활이 지속되었다. 어떤 이는 그때 얻은 후유증으로 오랜 시간 통증을 앓았으며, 여전히 지속되는 악몽과 트라우마로 힘들어하는 사람도 있다.

2019년에 부마민주항쟁이 국가기념일로 지정되고 진상규명위원회도 꾸려졌지만 아직까지 정당한 평가나 피해자에 대한 보상은 부족한 실정이다. 올해부터 부산시에서 부마민주항쟁 관련자에 대해 매월 5만 원의 위로금을 지급하기로 했다는 기사를 읽었는데, 위로금을 지급받기 위한 소득기준이 까다롭고 타 지자체에 비해 지급 금액도 낮다. 피해자들의 뇌리에 각인된 고통스러운 기억들을 단 돈 몇 만 원으로 지울 수야 없겠지만, 그래도 위로금이라는 것에 진심이 담겨 있다면 그런 식의 지급 기준을 두는 것은 곤란하지 않나 싶다.

40여 년이 지난 지금, 담담히 인터뷰를 하다가 어느 순간 어쩔 수 없이 울컥하고 감정이 치솟아 올라와서 말을 잇지 못하는 사람의 얼굴을 카메라 렌즈가 가만히 응시했다. 어떤 기억은 시간이 아무리 지나가도 결코 옅어질 수 없는 것이었다. 이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는, 이만큼의 자유와 평화를 누리고 있는 우리는, 모두 그들의 아픈 기억에 일정 부분 빚을 지고 있다.

말로 다 할 수 없는 오랜 고통을 겪었음에도 불구하고, 영화 속 인터뷰이들은 하나같이 말한다. 다시 그때로 돌아간다 해도 똑같이 행동할 거라고. 또 다시 거리로 나갈 거라고. 조금도 후회하지 않는다고. 그 말을 할 때 그들의 얼굴에는 그 어떤 순간보다도 환한 빛이 감돌았다. 우리 앞에 놓인 역사적 장면 앞에서 후회하지 않을 선택을 한 이들의 표정에는 깊은 만족감과 자부심이 깃들어 있었다. 그것은 말초적인 즐거움에 빠져있거나 개인의 행복만을 추구하며 살아가는 대부분의 사람들에게서는 찾아보기 힘든 표정이었다.

민주주의라는 소중한 가치를 지키기 위해 1979년의 10월을 치열하게 살아낸 이들 덕분에, 나의 10월은 이토록 찬란하고 아름답다. 내 다음 세대를 위해 내가 지켜내야 할 것들은 무엇일지 가만히 생각해보게 되는 가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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