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병철의 인사이트] 2030월드엑스포, '미래 부산' 대전환 시험대
논설위원
2010년 8월, 중국 상하이를 가로지르며 흐르는 황푸강 둔치에서 열린 2010상하이엑스포. 강변 양쪽에 끝없이 펼쳐진 행사장을 보면서 ‘크긴 큰 나라구나’라는 놀라움을 가졌다. 난푸대교 아래 엑스포 A 구역에는 중국관, 한국관 등이 들어서 있었다. 한글을 콘셉트로 여러 개의 한글 자모를 기하학적으로 디자인한 한국관은 산뜻해 보였다. 전시관에서 삼성과 LG 대형 모니터에 IT맨, 에코걸, B(비보이)걸 등 가상 캐릭터가 한국의 미래상을 소개하던 장면, 아이돌그룹 동방신기의 영상 공연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지금이라면 메타버스 기술로 현실과 가상세계의 벽을 무너뜨린 BTS 공연이 가능했을 듯하다. 한국관 인근에 주최국 중국이 세워 줬다는 북한관의 분위기가 너무 썰렁해 동포애(?)로 기념우표 몇 장을 샀다.
2010상하이엑스포, 중국 굴기 계기
세계 움직이는 중심축 성장 신호탄
‘웨스트 번드’ 등 탈바꿈 눈부셔
부산, 2030월드엑스포 유치전 돌입
‘받는 국가에서 주는 국가’ 스토리
세계인 사로잡을 청사진 제시해야
당당하게 새치기해 들어오는 중국 관람객을 온몸으로 막으면서 반나절 이상 줄을 섰던 중국관에서 경제대국으로 성장하려는 그들의 기운, 미래 세계 경제를 주도하겠다는 의지를 엿보았다. 한자 ‘세(世)’자를 부모와 아이 한 가족이 어깨동무하고 나가는 모습으로 형상화했다는 엠블럼은 중국이 엑스포를 통해 지구촌의 다원적 문화를 융합한다는 뜻을 담았던 것으로 회상한다. 상하이엑스포 주제는 ‘더 좋은 도시, 더 좋은 삶(Better City, Better Life)’이었다. 상하이라는 도시에 담긴 중국의 힘도 살짝 느꼈지만, 무더위에 지친 데다 빈약한 소프트웨어 앞에서 최첨단의 근사한 미래를 보지는 못했다. 꿈이나 세련된 문화, 첨단의 기술보다는 수많은 관람객과 무질서한 끼어들기, 규모에 질려서 당일 일정으로 엑스포 관람을 마쳤다. 행사장에서 전기차를 엑스포 셔틀 차량으로 활용한 것이 꽤 이색적이었지만, 이제는 일상이 됐다.
숙소였던 대학 기숙사 선반에 짐을 올렸다가 벽이 뜯기는 황당함, 웃통을 벗거나 잠옷 차림으로 대로를 활보하던 시민들의 모습도 눈에 선하지만, 상하이는 엑스포를 거치면서 세계인을 도시로 불러들이는 데는 성공했다. 세계를 움직이는 중요한 축이 되었다는 것을 널리 알린 세기적인 사건이었다. 그 후 유유히 서해로 흐르는 황푸강은 변함이 없지만, 몇 배로 확장된 푸둥공항과 우후죽순 올라간 스카이라인 등 상하이의 상전벽해는 눈부시다. 2019년 11월, 코로나19 사태가 터지기 직전 찾았던 황푸강 서쪽 엑스포 개최지 웨스트 번드(West Bund)는 마치 영국 런던 사우스 뱅크에 온 듯한 착각이 들 정도였다. 20세기 중국 제조업의 발상지인 웨스트 번드는 강변을 따라 퐁피두센터 등 각종 문화시설이 들어서면서 아시아 최첨단 예술단지로 탈바꿈했다. 함께 상하이를 여행했던 일본인 친구 부부는 “도쿄보다 낫다”라며 놀랄 정도였다.
다시, 10년이 지나고 이제 부산이 2030엑스포 유치전에 뛰어들었다. 사우디아라비아 리야드까지 가세하면서 부산, 러시아 모스크바, 이탈리아 로마, 우크라이나 오데사 등 5개 도시가 운명을 걸었다. 170개 회원국 3분의 2 이상의 지지를 얻어야 하는 2023년 상반기 최종 투표일까지 20개월 동안 할 일이 산적해 있다. 핵심은 얼마나 절실한가이다. 그 이전에 ‘부산이 도시, 국가, 세계적인 차원에서 무엇을, 어떤 가치를, 어떤 변화하는 미래를 보여 줄 것인가’를 스스로 질문하고, 답하는 확인 절차를 거쳐야 한다. 엑스포 유치 성공의 관건은 ‘부산이 곧 대한민국이어야 한다’는 청사진을 내놓을 수 있느냐이다.
부산이 내세운 2030부산월드엑스포 주제는 ‘세계의 대전환, 더 나은 미래를 향한 항해’이다. 부산은 대한민국의 과거와 현재, 미래를 가장 잘 보여 준다. 엑스포 예정지 부산 북항은 한국전쟁 당시 UN군과 의료진, 원조 물품을 하역한 곳이다. 그 원조 물품과 미국 등 UN군의 도움으로 전쟁고아와 북한 피란민을 수용하면서 한국 복지의 싹이 튼 곳이 부산이다. 1957년 가난한 사람들의 아버지 알로이시오 신부가 구호사업을 펼쳤던 곳, 50년 뒤 아프리카 남수단의 빈곤을 어루만져 줬던 이태석 신부를 탄생시킨 곳도 부산이다. 최빈국이던 한국이 ‘받는 국가에서 주는 국가’로 성장한 감동 스토리의 출발점이 바로 부산이란 뜻이다. 이런 역사를 바탕으로 앞으로 반세기, 대한민국이 세상을 어떻게 바꿀지를 170개 회원국과 공감해야 한다.
지난달 28일 열린 부산엑스포 유치 국제 콘퍼런스 기조연설에서 마우로 기옌 영국 케임브리지대 교수는 “성장하는 도시 부산이 스마트 도시가 얼마나 세계에 기여할 수 있는지를 보여 줘야 한다”라고 말했다. 한국과 부산이 지닌 가치와 기술을 접목해 세계인을 사로잡을 비전과 콘텐츠를 제시해야 한다는 의미였다. 세계인을 불러 모을 우리의 가치와 힘, 기술, 역량을 결합하는 작업, 이를 통해 세계의 중심축이 되겠다는 포부와 자신감이 2030월드엑스포 유치의 열쇠다. 앞으로 200일, ‘미래 부산’ 축의 대전환을 이룰지 시험대에 올랐다. peter@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