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을 여는 시] 5구역
신정민(1961~ )
은밀한 데이트 장소로 공동묘지만 한 곳이 없다
죽은 자는 말이 없기 때문이다
후회와 함께 시작된 사랑은 묘역을 오래도록 바 라보는 일
곁에 있어 들을 수 없었던 속삭임이 있었다
묻힌 곳에 머물지 않는다는 죽음의 트럼펫 소리
누군가 오래도록 데니보이를 연습하고 있다
말이 필요 없는 데이트
모르는 자의 무덤 앞에 조화를 바치는 햇살들
인생은 요약되지 않아서 어려웠다
우리는 결국 모르는 사이
잊지 못할까 봐
잊는 법을 배울 수 있는 최적의 장소에서 종종
만나곤 했다
-시집 <저녁은 안녕이란 인사를 하지 않는다>(2019) 중에서-
죽은 자는 말이 없다. 죽은 자는 이미 잊힌 자이므로 산자들이 기억을 돕기 위해 묘지를 세운다. 우리는 잊히지 않기 위해 서로에게 말을 건넨다. 잊히지 않기 위해 강박관념에 사로잡힐 때 말이 말을 낳는다. 보라. 잊히기 위해 꽃은 떨어지고 사람은 죽는다. 그러나 어디서나 만나는 산과 들, 강은 말을 하지 않아도 잊히지 않는다.
공동묘지에서 데이트를 하고 죽은 자의 비석 앞에서 사랑을 꿈꾸는 시인은 잊히지 않기 위해 시를 쓴다. 현란한 평론가들은 잊히지 않기 위해 풍경의 장소성을 이야기하지만 꿈을 잃은 시인은 풍경 앞에서 말이 없다. 죽지 않는 풍경에 더 이상 감동받지 못하는 시인은 이렇게 말한다. 사람만한 풍경이 없었다.
이규열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