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시민의 눈높이는 높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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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세헌 해양수산부장

1일 급기야 시민단체들이 장관을 업무방해 등으로 고발하는 사태까지 빚어졌다.

올해 4월부터 논란이 돼 왔던 ‘부산항 북항 1단계 재개발사업’과 관련해서다. 올 한 해를 뜨겁게 달구고 무수한 기사를 쏟아냈다. 어찌보면 복잡한 사안들이 많지만, 독자들이 알기 쉽게 단순화시킬 필요가 있다.

북항 재개발사업 누가 부담·소유로 갈등
반년 넘은 해수부-부산시 마찰로 사업 난항
해수부, 지역 무시 고압적 자세 벗어나야

문제의 발단은 지난 4월 해양수산부가 부산항 북항 재개발사업을 내부 감사하면서부터다. 여기서 해수부는 절차상 문제를 들어 그동안 업무를 추진해왔던 ‘부산항북항통합개발추진단’ 단장을 교체하고, 감사 결과를 토대로 지난 10월 부산항 북항 재개발 10차 사업계획 변경안을 내놨다.

변경안의 핵심 쟁점은 일단 크게 2가지다. 첫째, 트램 차량 구입비 180억 원을 ‘누가 부담’하느냐와 둘째, 일부 공공콘텐츠 시설을 ‘누가 소유’하느냐다. 당초에는 트램 차량 구입비의 경우 사업시행자인 해수부(정확하게는 사업시행자인 해수부 산하 부산항만공사)가 내고, 일부 공공콘텐츠 시설(1부두 복합문화공간·해양레포츠콤플렉스)은 부산시가 소유(정확하게는 국가 귀속)하는 것으로 돼 있었다. 그런데, 해수부가 어깃장을 놓은 것이다. 트램 차량 구입비는 부산시가 부담해야 하고, 일부 공공콘텐츠 시설도 해수부가 소유하는 것으로 자신들에게 유리하게 일방적으로 방침을 바꿨다.

뒤통수를 맞은 시는 반발을 했고, 쟁점 해결을 위해 부산시-해수부-BPA(부산항만공사) 관계자가 참여하는 실무협의회가 지난달 9일 1차로, 이어 1일 2차로 열렸다. 각자의 주장만을 앞세워 입장차만 확인하면서 여전히 평행선을 달리는 것으로 알려졌다.

자, 이제 부산시민의 입장에서 보자. 해수부가 부담하든 부산시가 부담하든, 혹은 해수부가 소유하든 부산시가 소유하든 시민 입장에선 통칭 ‘정부’라고 불리는 기관끼리의 떠넘기기 혹은 밥그릇 싸움으로 보인다. 시민들은 부산의 미래인 북항이 얼마나 많은 볼거리와 즐길거리가 있는 랜드마크로 빨리 탈바꿈하느냐는 것에 관심이 있을 뿐이다. 기관끼리의 다툼이 반년 이상 지속되는 것에 피로감을 느낄 뿐이고, 이로 인해 북항 재개발 사업이 표류되는 것에 반감을 가질 수밖에 없다.

하물며 1단계 총사업비 2조 6000억 원에 달하는 규모(2단계 재개발사업 총 사업비는 4조 4000억 원)에 비해 고작 1% 수준에도 미치지 못하는 금액을 두고 북항 재개발 사업이 난항을 겪고 있다는 것을 이해할 시민은 없을 것이다. 특히 ‘아들 퇴직금이 50억, 50억 클럽’ 등으로 국민 눈높이(?)가 아주 높아진 상황에서 트램 차량 구입비 180억 원 때문에 부산의 미래가 흔들린다는 것을 누가 납득할 수 있을까.

지금은 문제의 발단을 제기한 해수부가 전향적인 입장 변화를 보일 때다. 말로만 부산의 이익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가 아니라 행동으로 보일 때다. 실무협의회에서 트램 차량 구입비의 부담 주체를 두고 법제처의 유권해석을 받는 것으로 어느 정도 의견을 조율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법제처의 결과가 나오기까진 빨라도 한 달 이상이 소요된다. 부산의 반발을 당연히 예상했다면 해수부는 애초부터 자체 유권해석이 아니라 법제처의 유권해석을 거친 뒤 북항 재개발사업 변경안을 내놨어야 했다. 일단 떠넘기고 저지르고 보는 중앙 부처의 오만이 묻어 있다. 법제처의 유권해석은 단골 메뉴다. 지난해 가덕신공항(김해신공항 폐지)의 안전 문제를 두고도 국토교통부와 시는 법제처의 유권해석을 받는 등 공무원 특유의 ‘면피’로 시간을 끌기도 했다.

해수부의 북항 재개발사업에 대한 감사도 조직 내부의 알력에 따른 ‘표적 감사’라는 말이 나오는 가운데, 해수부가 지역을 무시하는 고압적인 태도를 계속 유지할지 부산시민들은 지켜보고 있다.

부산시도 이젠 달라져야 한다. 지역의 중요한 현안마다 항상 전략 부재라는 비판에서 벗어나야 한다. 가덕신공항의 경우 세밀하지 못한 전략으로 시작해서, 결국 지역 여론을 등에 업고 힘들게 성사된 전례가 있다. 2030 부산세계박람회 개최 추진도 미 55보급창 이전이라는 선결 과제도 해결하지 못한 채 개문발차한 뒤 지역 여론이 힘을 실어주고 있다. 북항 재개발 사업의 경우 시는 지난해 오페라하우스추진단을 축소하는 등 안일하게 대처하다가 아직까지 건설 비용 문제를 매듭짓지 못하고 있다.

북항 재개발 사업은 아직 갈 길이 멀다. 1단계가 2024년 마무리되고, 2단계는 2030년까지다. 해수부와 시는 지엽적인 문제로 시간과 에너지를 낭비할 게 아니라 ‘부산의 지도와 역사를 바꾼다’는 사명감으로, 대승적인 차원에서 접근하길 바란다. cornie@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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