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설위원의 시선] 대통령 후보 배우자 검증 타당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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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적 역할’ 대통령 영부인, 철저한 도덕성 검증 불가피

결국 터진 ‘배우자 리스크’인가, 아니면 “결혼 한참 전의 일”로 대통령 후보에게 책임을 묻는 것은 과한 것인가. 제20대 대통령 선거가 80여 일 앞으로 다가온 가운데 후보 배우자에 대한 언론 보도가 급증하고 있다. ‘비호감 대선’ 분위기가 팽배한 탓인지 후보 배우자에 대한 관심도 여느 대선 때보다 높아지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후보 부인 김혜경 씨는 지난달 집에서 미끄러지는 사고를 당해 며칠간 대중 앞에 서지 못 하는 일이 있었는데, 이것을 두고 각종 의혹이 제기돼 구급차를 타고 이동하는 모습까지 공개해야 했다. 국민의힘 윤석열 후보 부인 김건희 씨는 박사학위 논문 표절에다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가담, 코바나컨텐츠 기업 협찬금, 허위 이력 기재 의혹 등으로 연일 언론에 오르내리고 있다. 대통령 후보 못지않게 배우자에 대한 검증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점점 커지는 배경과 대통령 영부인에 주목하는 이유를 살펴본다.

김건희, ‘허위 경력’ 기재 의혹
김 “윤 후보와 결혼 전의 일”
영부인은 외교·국가적 상징
막대한 국가 예산도 배정돼
대선 후보 못지않은 검증 필요
미셸 오바마·에바 페론 등
소외계층 복지·봉사 사업 앞장
국민적 사랑 받은 대통령 부인
정권 도덕성·청렴성과 직결된
후보 가족과 측근 검증도 대세
지나친 사생활 비판은 논란 대상


‘허위 경력’, 철저한 검증 받아야

며칠 전만 해도 국민의힘이 주장하듯 “우리가 국모(國母)를 선거하는 건 아니지 않나”면서 여성 사생활에만 가혹한 사회를 비판하는 움직임에 동조하는 분위기도 없지 않았다. 하지만 김건희 씨의 ‘허위 경력’ 기재 의혹이 드러난 YTN 보도를 기점으로 “영부인 후보 검증은 ‘여성이라서’가 아닌 대통령 후보 검증에 있어 당연한 절차”라는 의견이 힘을 얻고 있다.

먼저 논란이 된 의혹부터 짚어 보자. 김건희 씨는 2007년 수원여대에 지원하면서 2002년 3월부터 3년 동안 ‘한국게임산업협회 기획팀 기획이사’로 재직했다고 썼다. 하지만 게임산업협회는 2004년 6월에야 설립된 단체이며, 기획이사라는 자리는 없었다고 한다. 또 2004년 8월 ‘서울국제만화애니메이션페스티벌’에서 대상을 받았다고 했지만, 김 씨의 개명 전 이름으로 출품된 작품은 없는 것으로 드러났다. 2004년 ‘대한민국 애니메이션대상 특별상’ 수상은 개인이 아니라 출품 업체가 받는 방식인 것으로 확인됐다.

김건희 씨의 해명은 논란에 기름을 부었다. 기획이사 재직 건과 관련해서는 “믿거나 말거나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답했고, 가짜 수상 경력은 “돋보이려고 한 욕심이었다. 그것도 죄라면 죄”라고 반응했다. 그러면서도 “수상 경력을 학교 진학을 위해 쓴 것도 아닌데 무슨 문제냐”면서 “저는 공무원, 공인도 아니고 당시엔 윤 후보와 결혼한 상태도 아니었는데 이렇게까지 검증을 받아야 하느냐”고 강변했다. 대통령 후보 배우자의 처신치고는 매우 부적절하다는 이야기가 나올 법하다. 이미 소멸한 공소시효나 사과 문제는 논외로 치더라도 후보 배우자 검증 논란에 불을 댕긴 건 틀림없다.



공적 역할 부여받는 대통령 배우자

김건희 씨뿐 아니라 김혜경 씨도 마찬가지겠지만, 유력 대선 후보의 배우자는 미래 대통령 부인이 될 수도 있는 만큼 그의 도덕성은 당연히 검증 대상이라는 데 큰 이견은 없다. 다만 ‘쥴리’ 논란처럼 지나친 사생활 침해는 경계해야 한다는 말 또한 설득력을 얻고 있다. 실제 대통령 배우자의 지위가 법률에 규정돼 있는 것은 아니지만 공적 역할을 부여받고, 막대한 국가 예산도 배정되는 자리인 만큼 그 비중은 막중하다. 청와대는 대통령 배우자를 보좌하는 기구인 제2부속실을 두고 있다. 또한 대통령의 부인은 외교·국가적으로도 상징을 갖기에 그 자체가 공공성을 갖고 있다고 한다. 후보자 못지않게 배우자도 검증이 필요하다는 이야기가 나오는 주요 근거다.

국민 여론도 무시할 수 없다. 여론조사업체 코리안리서치가 MBC 의뢰로 전국 만 18세 이상 성인 1007명을 대상으로 지난 11~12일 대선 후보 배우자의 검증 범위를 물은 결과, 배우자도 검증 대상이라는 응답이 80.2%에 달했다. 국민의힘 지지층에서도 68.2%가 후보의 배우자 검증을 찬성하는 의견을 냈다. 다만 검증의 영역에 사생활을 포함해야 한다는 지점에서는 의견이 엇갈렸다. ‘사생활을 제외한 도덕성과 비리 의혹 중심’이 54.5%, ‘사생활까지 포함’은 25.7%였다. ‘출마 당사자가 아니므로 검증할 필요가 없다’는 응답은 17.2%였다.



‘퍼스트레이디’ 역할 무궁무진

외국으로 눈을 돌려 보자. 미국의 미셸 오바마는 퍼스트레이디 시절 아동 비만 퇴치 캠페인 ‘렛츠 무브(Let’s move)’를 벌여서 미국 아동 비만율이 3.7% 줄어드는 성과를 거두기도 했다. 1940년대 아르헨티나 대통령의 부인 에바 페론은 가난한 사람과 노동자를 위한 정책을 펴고 자선 사업에 앞장서 ‘가난한 자의 성녀’라고 불릴 정도로 국민의 사랑을 받았다.

대만 장제스 총통의 부인 쑹메이링은 어땠던가. 그는 중국 역사에서 가장 혼란했던 시기에 국가이익을 지키기 위해 노력했고, 여성의 교육과 해방을 위해 노력한 선구자였다는 평가를 받았다. 쏭메이링은 단순히 퍼스트레이디라는 정치가의 아내로서 역할을 담당한 것이 아니라, 전문적인 지식과 능력뿐만 아니라 정치적인 야심과 확고한 의지로 자신의 리더십을 발휘해 총통의 부족한 점을 보완할 수 있었고 국제 외교무대에서 폭넓은 정치 외교활동을 통해 모든 정책 결정에 지대한 영향력을 미쳤다.

하긴, 이미 손안에 쥔 대통령 부인 자리를 박차고 남편(니콜라 사르코지)이 재임 시절 이혼한 세실리아 사례도 있다. 퍼스트레이디라는 화려한 겉모양보다 진정으로 자신이 원하는 삶을 살겠다는 세실리아의 선택이었지만, 영부인이라는 사회적 지위를 포기하는 용기가 필요했을 것이다.

그에 비해 한국의 영부인들은 다소 소극적(의전적 영부인, 대통령 의존형, 청와대 안주인)이라는 평가가 많았다. 뉴스빅데이터 분석시스템인 빅카인즈를 통해 ‘영부인’이란 검색어와 함께 프란체스카 도너, 공덕귀, 육영수, 홍기, 이순자, 김옥숙, 손명순, 이희호, 권양숙, 김윤옥, 김정숙 등의 이름을 넣었더니 나오는 내용이 거의 천편일률적이다. 1987년 민주화 이후 영부인의 사생활과 구설수에 관한 기사가 급증한 것은 맞는데, 영부인 단독 활동 기사보다 대통령과의 동반 활동 기사가 증가하는 모습을 보였다는 연구 논문도 나와 있다.



유권자는 후보자·가족 총체적 판단

시대가 달라지고 있고, 대통령 선거 과정에서부터 영부인 후보를 검증해야 한다는 분위기는 거스를 수 없는 대세다. 국민의힘 대선 캠프에서 연일 “우리가 대통령을 뽑는 거지 대통령 부인을 뽑는 게 아니다”라고 강조하지만, 후보와 배우자 문제는 떼려야 뗄 수 없다. 가족과 측근 검증은 정권의 도덕성과 청렴성에 직결된 문제이기 때문에 더더욱 그러하다.

물론 앞서 언급한 여론조사 결과에도 나와 있지만 결혼 전 사생활까지 이것저것 들춰내자는 것은 아니다. 사회적 문제가 될 만한 것, 국민 다수가 관심을 가질 만한 것은 대통령 후보의 가장 가까운 사람으로서 직접 해명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결혼 이전에 벌어진 일’이라는 시점 논리로 피해 갈 수 있는 문제는 아니라는 말이다.

최근 ‘국모 논쟁’이 벌어졌을 때 더불어민주당 권인숙 의원이 SNS에 “정치와 관련된 여성들의 과거 이력에 대해 가십성 폭로가 이어지는 것은 문제고 기본적인 사생활과 존엄성은 보호돼야 한다”면서도 “‘문고리 권력’으로서 배우자 김건희 씨에 대한 공적 검증은 필요하다”고 목소리를 높인 것도 바로 그 때문이다. 국민의힘 이수정 공동선대위원장 역시 “국모라는 아이디어 자체가 너무 올드하다. 조선 시대도 아니고 무슨 국모냐”면서도 “불법행위는 수사하고 유죄가 나오면 책임져야 한다”고 밝혔다.

대선이란 것은 결국 후보자와 후보자 가족 모든 것을 총체적으로 국민들이 평가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후보 배우자에게도 의혹이 있다면 후보를 검증하는 것만큼 사실에 근거해 철저히 검증하고, 그에 따른 충분한 정보를 유권자에게 주는 게 필요하다. 최종적인 판단은 국민의 몫이다.

김은영 논설위원 key66@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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