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승일의 디지털 광장] 공화주의와 알고리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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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에디터

‘인공지능에 정치를 불허하라!’( 2019년 12월 2일 자 26면 보도)

뉴스 추천 알고리즘의 위험성을 경고했던 앞선 칼럼의 제목이다. 공동체의 미래를 결정짓는 정치 선거를 다루는 뉴스마저 트래픽에 휘둘려서는 안 된다는 취지였다.

그 뒤 ‘알고리즘에 좌우되는 대통령 선거’( 10월 13일 자 22면 보도)가 되어서는 안 된다고도 지적했다. 포털 뉴스 서비스에서 대통령 선거 기사만큼은 알고리즘 추천을 중단하는 실험도 제안했다.

다음 뉴스탭, 알고리즘 추천 중단
네이버도 PC 뉴스 구독제 도입
AI가 공론장 왜곡할 우려 반영

전자 정부의 알고리즘 결정 등
AI 추천, 개인 자유 위축 소지 있어
공화주의 관점에서 공론 시작해야


포털과 SNS가 ‘관심사 추천’을 미끼로 클릭을 끌어모은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알고리즘의 본질은 호기심의 자극이어서 필연적으로 부작용을 동반한다. 페이스북(현재 메타) 본사 내부자의 고발로 알고리즘 유해성 은폐가 드러난 것이 그 실례다.

그런데 쇼핑몰 사이트가 연관 상품을 추천해 주는 것과 인공지능(AI) 뉴스 추천은 다른 차원에서 다뤄져야 한다. 뉴스는 담론을 형성하는 역할을 수행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알고리즘 뉴스 추천은 공론장을 왜곡할 소지가 있다.

예컨대 페이스북에서는 ‘친구’의 가치가 저널리즘의 가치에 앞선다. 포털에서는 다수가 본 콘텐츠가 좋은 평가를 받고 대량 소비와 공적 가치의 기준인 것처럼 비쳐진다. 뉴스가 클릭을 유도하는 수단이 되어서는 안 되는 까닭이다.

더욱이 한국은 신문과 방송사의 뉴스 사이트 방문율이 전 세계에서 최하위인 반면 뉴스 트래픽을 장악한 포털과 SNS에서 알고리즘 추천된 기사가 넘쳐 나는 것이 현실이다. 이는 온라인 뉴스를 소비하는 시민들이 알고리즘에 무방비로 노출되어 있다는 뜻이다.

알고리즘 추천이 개개인의 확증 편향을 초래하는 것을 넘어서서 디지털 뉴스 생태계를 위태롭게 한다는 사회의 우려가 드디어 변화를 이끌었다.

다음카카오가 뉴스 배열 알고리즘 포기를 선언한 것이다. 새해부터 알고리즘 추천으로 채워지던 다음앱의 뉴스탭에서 AI 루빅스(RUBICS)의 역할은 사라진다. 대신 사용자가 구독한 매체의 뉴스가 채워진다. 뉴스, 정확히는 콘텐츠 구독 모델로 바뀌는 것이다. 상반기 PC도 구독제로 바뀐다.

네이버도 최근 모바일앱의 언론사편집판을 PC 뉴스 서비스에 적용해 구독제로 전환했다. 네이버 AI 에어스(AiRS)가 모바일앱의 My뉴스에서 여전히 뉴스 추천을 하고 있는데, 앞으로 어떤 변화가 생길지 주목되는 대목이다.

뉴스 알고리즘이 시험대에 오른 것을 계기로 일상 전반에 스며든 AI 추천에 대한 사회적 공론을 심화해야 한다.

지금까지 알고리즘은 편리성과 부작용 양가적 범주에서 거론됐다. 이를 넘어서는 논의의 틀로 공화주의가 적절하다. 공화주의는 공동체 현안에 책임감을 갖고 적극 참여하면서 개인의 자유를 실현하는 정치 윤리에 기반하고 있다.

공화주의에 비춰 볼 때 알고리즘 추천은 개인의 자유를 침해하는 요소가 된다. 사용자가 알고리즘 추천 원리를 이해할 수가 없고, 특히 추천된 결과에 대한 책임과 정당성을 따져 물을 수 없기 때문이다.

거대 플랫폼은 추천 알고리즘의 원리를 비공개로 유지하면서, 편향된 결과를 낳을 가능성도 인정하지 않는다. 따라서, 이용자들은 해당 기사가 추천된 이유를 묻거나 책임 소재를 반문할 수 없게 된다.

일상 생활에서 필수불가결하게 사용되는 검색/소셜 플랫폼의 알고리즘에 갇혀 뉴스 선택권을 박탈당하는 것은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시민’의 덕목에도 배치되는 것이다. 마치 알고리즘이 시민 사회 위에 군림하는 존재가 되는 것이다. 달리 표현하면 사용자들이 알고리즘의 노예로 전락한 것이다.

이는 공화제와 대척점에 있는 군주제가 연상되는 대목이다. 신문과 방송의 철칙인 팩트 체크와 게이트 키핑 역할 범주 밖에서 온라인 뉴스가 대량 유통되면서 생겨난 새로운 사회적 문제다.

이 문제 의식은 국가로도 확장된다. ‘포털’의 자리에 ‘정부’를 대입하면 된다. 전자 정부가 구가되는 시대, 공적 의사 결정에까지 알고리즘이 작동되는 세상이다. 알고리즘에 의한 결정이 많아질 경우 시민은 그 결과에 어떤 이의를 제기할 수 있을까. AI의 선택이 시민의 자유를 제약하는 것일 경우 책임과 타당성, 합법성을 따질 수 있을까.

알고리즘이 시민의 자유를 위축한다면, 그 알고리즘의 존재 이유는 무엇인가. AI 전성 시대가 공동체에 던진 숙제다. dojune@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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