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설위원의 시선] 슬픈 코미디가 돼 가는 대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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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 2’ 비호감만 고공행진… 싫은 후보 억지로 뽑아야 하나

11월 2일 서울 송파구 올림픽경기장에서 열린 더불어민주당 제20대 대통령선거 선거대책위원회 출범식 장면(왼쪽)과 같은 장소에서 12월 6일 열린 국민의힘 중앙선거대책위원회 출범식 모습. 국회사진기자단

이틀 뒤면 ‘대통령 선거의 해’다. 정권 재창출과 정권 교체를 각각 내걸고 여야가 명운을 건 한판 승부를 본격적으로 펼치게 된다. 정의당 심상정, 국민의당 안철수 후보 등이 있지만 현실적으로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국민의힘 윤석열 후보의 양강 구도로 굳어지는 모양새다. 그런데 이·윤 두 후보 간 과열된 네거티브 공방으로 역대급 비호감 대선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누가 더 나쁜가 경쟁하는 모습이라 국민에겐 한 편의 코미디로 비친다. 결코 웃기지 않는, 슬픈 코미디다. 현재까지의 이번 대선을 한 마디로 평하자면 그렇게 정리된다.

두 후보 과열된 네거티브 공방
‘묻지 마’ 폭로·비방·고소·고발
국민 정치 혐오·실망감 커져
국힘 윤 후보-이 대표 갈등
각본 따른 고도의 전술 시각도
민주 이 후보, 득표에만 몰두
기존 입장 지나치게 뒤집어
국민 60%가 두 후보에 비호감
유권자 심정 감안 깊은 참회를


누가 더 저급하게 나오나 경쟁?

“저들이 저급하게 나와도 우리는 품격 있게 가자!”(When they go low, we go high!)

미셸 오바마 여사가 2016년 미국 대선 당시 힐러리 클린턴 민주당 후보 지원 연설에서 했던 말이다. 비록 그해 선거에서 민주당은 도널드 트럼프 공화당 후보에게 패했지만 미셸의 그 말은 두고두고 세간에 회자됐다.

그에 비해 지금 우리 대선에서는 여야 불문하고 “저들이 저급하게 간다? 그럼 우린 더 저급하게!”를 외치는 듯하다. 후보 간 서로 흠집 내기에만 몰두하는 사이 정책과 경쟁은 찾아보기 어렵다. ‘묻지 마’ 폭로와 비방, 난무하는 고소·고발로 얼룩진 진흙탕 선거는 국민들의 정치 혐오를 부추기고 있다. 실제로 윤 후보는 ‘본부장’ 후보라는 비아냥을 듣는다. 본인·부인·장모의 비리로 둘러싸인 후보라는 의미에서다. 이 후보는 ‘형수 욕설’, ‘전과 이력’ 등 부정적인 프레임에 갇혀 있다.



“선거 못 하겠다”는 당 대표

국민의힘의 최근 행보는 가관이다. 이준석 대표는 “더 이상 못하겠다”며 선대위를 박차고 나갔다. 윤 후보와 사사건건 충돌하던 참에 윤 후보 측근 최고위원이 항명하면서 발생한 일이다. 그런데도 국민의힘에서는 초선의원들까지 나서 이 대표를 비난했다. 뒷배가 돼 주던 김종인 총괄선대위원장까지 이 대표를 곱지 않은 시선으로 보고 있다. 사면초가에 빠진 이 대표는 이른바 ‘윤핵관’(윤석열 후보 핵심 관계자) 세력의 전횡을 지적하며 선대위 쇄신을 요구하지만, 윤 후보는 이 대표를 “제삼자적 평론가”로 치부하며 갈등의 실타래를 풀 의지를 보이지 않는다.

황당한 것은 윤 후보와 이 대표의 갈등을 각본에 따른 고도의 전술로 보는 시각도 있다는 점이다. 윤 후보의 부인 김건희 씨에 대한 이목을 돌리기 위한 소위 ‘짜고 치는 고스톱’으로, 조만간 이 대표가 어떤 이벤트를 통해 선대위에 복귀한다는 시나리오를 제시한다. 사실 여부를 떠나 이런 음모론적인 시각이 존재한다는 것 자체가 국민의힘을 국민이 어떻게 보고 있는지 여실히 보여 주는 사례라 하겠다.

“부득이해서 왔다”는 후보

윤 후보는 최근 “민주당은 갈 수가 없어서 부득이 (국민의힘을) 선택했다”고 밝혔다. 자신이 몸담고 있고 자신을 대통령 후보로까지 뽑아 준 당을 스스로 깎아 내리는 발언이라 이 말을 들은 이들은 헛웃음을 지었다.

국민의힘 일각에선 윤 후보의 이 발언이 그냥 나온 게 아니라는 말이 나온다. 이 대표는 “창당을 노리는 세력이 있다”고 공개적으로 말했다. 대선을 치르기도 전에 당을 쪼개려는 시도가 있음을 지적한 것이다. 그 당사자로 김한길 국민의힘 새시대준비위원장이 지목되기도 한다. 새시대준비위의 ‘새 시대’라는 말이 창당 내지 분당을 의미한다는 것이다. 그와 관련해 이들은 김 위원장이 신지예 전 한국여성정치네트워크 대표를 영입하는 등 국민의힘의 정체성과 맞지 않는 행동을 한 것을 의심한다. 특히 김 위원장은 ‘창당 전문가’로 불릴 정도로 여러 차례 정계 개편을 주도한 전력이 있어 의심을 더한다.

윤 후보는 이 밖에도 “토론을 하면 결국은 싸움밖에 안 난다”며 토론회 무용론에 가까운 주장을 펼쳐 민주주의 정치의 본질에 무지하고 국민의 알 권리를 외면한다는 비난에 직면했다.



득표 위해서라면 소신 따위는…

민주당 이 후보가 출마 당시 내세운 슬로건은 ‘이재명은 합니다’였다. 29일 이 슬로건은 ‘나를 위해’로 변경됐는데, 세간에는 그보다 ‘이재명은 바꿉니다’로 해야 맞지 않냐는 야유를 듣는다. 국민에게 미치는 영향이 큰 이슈를 면밀한 검토 없이 불쑥 던졌다가 여론이 좋지 않다 싶으면 다급히 주워 담는 일이 반복됐기 때문이다. 실제로 이 후보는 과거 노무현 정부나 현 문재인 정부가 절치부심해 세운 정책을 차별성을 앞세워 폐기하려는 모습을 보였다. 득표를 위해 기존 입장을 지나치게 쉽게 바꾼다는 비판이 나올 수밖에 없다.

‘전 국민 재난지원금 추진’이 그랬다. 정부는 물론 당과도 충분한 사전 협의 없이 내던진 것이라 당정 간 갈등만 초래했다가 결국 철회했다. 민감한 이슈인 부동산 정책을 둘러싸고도 비슷한 양상을 보였다. 자신의 평소 발언과도 배치되는 ‘다주택자 양도세 중과 한시적 유예’를 언급했다가 정부와 청와대의 반대에 부딪치자 “선거 후에 생각해 보겠다”며 물러서기도 했다. 이외에도 국토보유세를 공약으로 내세웠다가 “국민이 반대하면 안 한다”며 움츠리나 싶더니 토지이익배당금제라는 이름으로 바꿔 다시 제시했다. “거래세를 완화하라”며 현 정부의 부동산 기조를 허물 수밖에 없는 요구도 서슴지 않았다. 당연히, 사실상 매표행위라는 비판을 받았다.

원자력발전과 관련해서도 “이재명 정부는 탈원전이 아닌 감(減)원전 정책을 하겠다”고 밝혀 파문을 일으켰다. 부산 시민처럼 핵 불안을 안고 사는 지역민들로서는 서운할 수밖에 없는 발언이었다.



새해엔 국민 보는 정책 선거 돼야

사정이 이러니 비록 양강이라고는 하지만 이·윤 두 후보 모두 지지율 경쟁에서 특별히 치고 나가지 못하고 비호감도만 고공행진을 하고 있다. 한국리서치가 지난 20일 발표한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이 후보의 호감도는 39.3%인데 비호감도는 59.1%를 기록했다. 윤 후보도 호감도는 38.0%에 그친 반면 비호감도는 60.5%로 나타났다. 두 후보에 대해 국민 10명 중 6명꼴로 좋기보다는 싫다는 반응을 보인 것이다. 요컨대 이번 대선에서 유권자들은 좋아하는 후보가 아니라 싫은 후보 중에서 억지로 대통령을 뽑아야 하는 서글픈 현실에 처한 셈이다.

내년 대선을 두고 “혐오 선거”라고 노골적으로 욕하는 사람도 있다. 대선 후보끼리 정책 경쟁은 간 데 없고 누가 더 못난 후보인가 경쟁하는 양상을 보다 못해 그러는 것이다. 어떤 이는 이번 선거를 ‘독이 든 사과’에 비유하기도 한다. 독이 들어 있는지 뻔히 아는데도 먹지 않을 수 없는 사과처럼, 나라 망하게 할 것 같은 느낌이 드는데도 투표하지 않을 수 없는 국민의 심정을 대변한 셈이다. 지금 상태라면 우리 정치는 물론 국민의 삶까지 큰 피해를 입을 수밖에 없는 대선이 될 판이다. 새해를 맞아 후보들의 처절한 참회가 요구된다 하겠다. 임광명 논설위원 kmyim@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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