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중증 환자의 마지막 생명줄, 사명감으로 버텨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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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곁의 시민영웅들] ‘코로나 전담 병원’ 부산대병원 음압 격리병동 의료진

로나19가 우리의 평온했던 일상을 송두리째 흔들어 놓은 지 어느덧 3년 차를 맞았다. 병원은 하루가 다르게 위중증 환자로 넘쳐 나고, 소외 계층은 더욱 힘겨운 겨울을 보내고 있다. 끝이 보이지 않는 이 터널에 그래도 한줄기 빛이 보이는 것은 꺼져 가는 생명을 살리기 위해 지금도 코로나와 사투를 벌이는 의료진과 이웃들에게 사랑의 손길을 건네는 ‘시민 영웅들’이 있기 때문이다.



N95 마스크에 레벨D 방호복
두 시간만 지나도 탈진 상태
위급 상황에 숨 막히는 긴장감
“환자 가족·동료 응원이 큰 힘”

부산에도 세밑 한파가 몰아쳤던 지난달 28일 오전 11시께 부산 서구 아미동 부산대병원 권역호흡기전문질환센터 711 음압 격리병동. 1cm 두께의 전면 유리창으로 병실과 차단돼 있는 이 병동 간호 스테이션 내에서 돌연 날카로운 경고음이 적막을 찢었다.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고 이틀 전 이곳 준중증 환자 병실로 옮겨온 혈액 투석환자 A(63) 씨가 갑자기 심정지 상태에 빠진 것이다. 심전도 모니터에 나타난 A 씨의 심장 박동 수는 분당 30회 밑으로까지 떨어졌다. 자발 호흡이 어려워지면서 생명의 불씨가 1분 1초가 다르게 사그라들고 있었다. 레벨D 방호복으로 전신을 감싼 의료진 10여 명이 황급히 A 씨의 기도 유지를 위해 기관 내 삽관을 한 뒤 심폐소생술을 실시했다. 4명의 의료진이 일산불란하게 손을 바꿔 가며 20여 분에 걸쳐 가슴을 압박하자 A 씨의 심장이 다시 정상적으로 뛰기 시작했다. 안도의 한숨과 함께 온 신경을 팽팽하게 죄던 긴장감이 일순 풀리면서 땀범벅이 된 의료진에게도 피로감이 몰려왔다. N95 마스크를 쓰고, 고글, 모자, 장갑 등으로 온몸을 밀폐한 방호복을 입으면 한겨울에도 사우나에 들어온 것처럼 금세 땀이 찬다. 여기에 무게가 2kg에 달하는 전동식 호흡보호구(PAPR)까지 착용하면 걸을 때마다 허리가 휘청거려 서 있는 것마저 고역이다. 웬만큼 현장에서 단련된 의료인들도 2시간이 지나면 호흡이 가빠지고 시야가 흐려져 탈진 직전까지 몰리기 일쑤인데, 길게는 6시간이나 이를 악물고 버티면서 환자를 돌봐야 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710병동 김은정 수간호사는 “고혈압, 당뇨, 장기 이식 등으로 면역력이 떨어지는 환자의 경우 코로나 감염으로 본인도 못 느끼는 사이에 폐 섬유화가 급속히 진행돼 위중한 상황으로 치닫는 경우가 적지 않다”며 “피로감으로 주저앉고 싶을 때가 한두 번이 아니지만 언제 위급상황이 발생할지 모르기 때문에 늘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다”고 말했다.

‘코로나19 거점 전담병원’인 이곳 부산대병원 전담 의료진들은 2020년 2월부터 3년째 코로나와 끝이 보이지 않는 사투를 벌이고 있다. 중증환자 18병상, 준중증환자 44병상, 중등증환자 32병상 등 총 94병상에 230여 명의 전담 의료진이 코로나로 생사의 기로에 처하거나 그럴 위험에 있는 환자들을 돌보고 있다. 지난해 말까지 총 1620명이 치료를 받고 완치 판정을 받거나 상태가 호전돼 퇴원했다. 현재는 당뇨, 폐렴, 암 등 기저질환이 있거나 산모 등 중증·고위험 환자 90명이 집중 치료를 받고 있다.

이곳 의료진은 코로나 팬데믹 이후 집에서 마음 편히 쉬어 본 날이 손에 꼽을 정도로 몸과 마음이 한계 상황까지 몰렸다. 하지만, 코로나 바이러스에 잠식당해 목숨이 경각에 달린 환자들에게 마지막 생명줄이라는 사명감으로 또 하루를 이겨내고 있다.

지난해 말 ‘5차 대유행’이 본격화한 이후 이곳 부산대병원에서도 하루에 한 명꼴로 사망자가 발생한다. 어느 죽음인들 비통하지 않겠느냐마는 온 힘을 다해 돌보던 환자가 가족들과 제대로 된 이별조차 하지 못하고 허망하게 생을 마감하는 모습을 보면 의료진의 가슴도 미어진다. 호흡기중환자실 김현희 수간호사는 “당뇨 환자 한 분이 너무 배가 고프다며 과자 하나만 먹으면 안 되겠느냐고 애원하는 걸 말렸는데 결국 돌아가셨다. 유품을 정리하는데 그 과자가 있는 것을 보고 왈칵 눈물이 쏟아졌다. 몰라보게 수척해진 얼굴이 너무 안쓰러워서 입관 전 손수 정성스럽게 면도를 해 드렸다”고 말했다.

무엇보다 이 싸움의 끝이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 마음을 무겁게 짓누른다.그래도 동료들의 배려, 환자와 가족들의 고마움을 담은 응원은 마지막 한 방울까지 짜낼 수 있는 힘이 된다. 77병동 문미혜 수간호사는 “에크모에 의존할 정도로 위중한 산모 환자가 제왕절개 끝에 아기를 낳은 경우도 있었다. 태아에게 해가 될까 봐 백신을 맞지 않아 코로나에 걸렸는데 다행히 집중 치료 끝에 호전됐고, 신생아도 음성 판정을 받았다. 산모가 한 달 만에 아기를 처음으로 품에 안는 순간 가슴이 뭉클했다. 그게 우리를 버티게 해 주는 힘이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박태우 기자 wideneye@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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