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른말 광] <947> 도마 옆?
이진원 교열부장
‘올해 하반기부터 더 쓴 카드 사용액의 10%를 되돌려주는 ‘상생소비지원금’ 이른바 ‘카드 캐시백(적립금 환급)’ 정책이 시행된다.’
여기서 ‘되돌려주는’은, 따지고 보면 겹말이다. ‘도로’의 뜻을 더하는 접두사 ‘되-’를 붙이지 않아도, ‘돌려주다’가 ‘빌리거나 뺏거나 받거나 한 것을 주인에게 도로 주거나 갚다’라는 뜻이기 때문. ‘도로’가 겹치는 것이다. 우리말에 ‘도리도리’는 있어도 ‘도로도로’는 없다.
‘출산 휴가가 없어 딸이 태어난 후 3주 동안 휴가를 쓴 때가 유일하게 연차를 다 소진한 해였을 것이다.’
여기에 나온 ‘다 소진한’이라는 표현도 설명이 겹쳤다. 다 쓴 것이 소진이기 때문에 ‘다 쓴’이나 ‘소진한’ 가운데 하나만 쓰면 되는 것.
겹말을 피한다는 것은, 뻔한 이야기를 쓰지 않는다는 얘기이기도 하다. 즉, ‘도마 밑에 오르다/도마 옆에 오르다’가 도저히 벌어지지 않을 상황에서 굳이 ‘도마 위에 오르다’라고 하지 않아도 되는 것. 그냥 ‘도마에 오르다’면 충분하다.
‘등산을 하다 보면 나처럼 생수통 안에 물을 담아오는 이가 있는가 하면 텀블러를 갖고 다니는 사람들도 있다.’
여기서도 굳이 ‘생수통 안’이라고 할 것 없이 그냥 ‘생수통’이면 충분한 것. 마찬가지로 ‘단시간 안에’는 ‘단시간에’, ‘법이 허용하는 범위 내에서’는 ‘법이 허용하는 범위에서’로 줄일 수 있다. 이처럼, 문장을 꼼꼼히 들여다보면 줄여야 할 말이 나오게 마련이다. 그렇다면, 아래 문장에서 줄일 말을 찾아보자.
‘은 현존하는 것 중 가장 오래된 한글 조리서다. 1670년대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책에는 모두 146가지 음식 조리법이 실려 있다.’
먼저, 첫 문장에서는 ‘것 중’이 필요 없는 말. 둘째 문장에선 ‘에 만들어진’을 지워도 된다. 게다가, 첫 문장에서 ‘현존하는’까지 줄여도 무리가 없다. 해서, 이렇게 짧고 힘 있는 문장이 되는 것.
‘은 가장 오래된 한글 조리서다. 1670년대 것으로 보이는 책에는 모두 146가지 음식 조리법이 실려 있다.’
하지만, 언론 기사만 보더라도 생각 외로 많은 겹말이 있다. 제작 시간이 바빠서 그랬겠지만, 그렇다고 용서가 되는 건 아니다.
*경험이 부족한 것이 약점인→경험 부족이 약점인
*생명이 위독한→위독한
이런 예 외에도 ‘자신을 초등학교 교사라고 밝힌 30대 남성’에서는 ‘자신을’이 필요 없고 ‘마음이 심란하다’에서는 ‘마음이’가 필요 없다. 욕심을 덜어내야 가벼워질 수 있는 법. jinwoni@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