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영이 묻는다 “우리는 온몸으로 나아가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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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영, 시로 쓴 자서전 / 김응교

“김수영은 정직했던 시인이었다. 너무 정직하여 치부마저 기록했다. 김수영처럼 비루한 시대에 대놓고 일갈하는 인물이 많았으면 좋겠다.”(656쪽) 김수영(1921~1968)은 일찍이 선언했다. “시작(詩作)은 ‘머리’로 하는 것이 아니고 ‘심장’으로 하는 것도 아니고 ‘몸’으로 하는 것이다. ‘온몸’으로 밀고 나가는 것이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온몸으로 동시에 밀고 나가는 것이다.”

그의 72편 시 통해 삶 재구성
온몸으로 썼기에 시가 자서전

김수영 시의 온몸을 느끼고 싶은 충동 앞에 <김수영. 시로 쓴 자서전>이 놓여 있다. 김수영이 온몸으로 썼기에 시가 곧 그의 자서전이라는 것이다. 47년 생애를 살면서 쓴 120여 편 중 72편을 가져와 김수영의 삶을 재구성한 것이 이 책이다. 200자 원고지 2600장의 역작인 이 책은 시인 겸 문학평론가 김응교가 썼다.

김수영은 “스승 없다. 국내의 선배 시인한테 사숙한 일도 없고 해외 시인 중에서 특별히 영향을 받은 시인도 없다.”(290쪽)고 했다. 그러나 그는 함석헌을 말했다. 1961년 김수영은 “썩은 자들이여, 함석헌 씨의 잡지의 글이라도 한번 읽어보고 얼굴이 뜨거워지지 않는가 시험해보아라. 그래도 가슴속에 뭉클해지는 것이 없거든 죽어버려라!”(400쪽)고 했다.

김수영은 시 ‘이제 나는 바로 보마’를 썼다. 1945년이었다. 뭘 바로 보는가. 이미 그는 그때 사이비 모더니스트와의 결별을 선언했다. ‘동무여, 이제 나는 바로 보마/사물과 사물의 생리와/사물의 수량과 한도와/사물의 우매와 사물의 명석성을//그리고 나는 죽을 것이다’. 바로 보는 것, 그리고 새로 태어나기 위해 죽는 것, 그것이 시의 처음이자 끝일 것이다. 그렇게 시를 쓰는 이는 어디 있는가, 누구인가.

‘4월 혁명’ 때 다시 태어난 김수영은 1960년 6월 노래했다. ‘혁명은/왜 고독한 것인가를//혁명은/왜 고독해야 하는 것인가를’. 그러나 4월은 5월 쿠데타에 짓밟혔다. 그 몇 년 뒤 김수영은 ‘거대한 뿌리’를 노래했다. ‘이 우울한 시대를 파라다이스처럼 생각한다/버드 비숍 여사를 안 뒤부터는 썩어빠진 대한민국이/괴롭지 않다 오히려 황송하다 역사는 아무리/더러운 역사라도 좋다/진창은 아무리 더러운 진창이라도 좋다/나에게 놋주발보다도 더 쨍쨍 울리는 추억이/있는 한 인간은 영원하고 사랑도 그렇다’. 지금이 우울한 시대라도, 아무리 썩어빠진 대한민국이라도, 더러운 역사라도 우리는 온몸의 사랑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당신을 일깨우는 김수영의 전언이 그것이다. 우리는 거대한 뿌리를 가졌다는 것이다. 이것이 시라는 이름의 ‘온몸’이다. 우리를 만들어왔던 것, 우리가 되었던 것, 비루하지만 한강 철근 기둥조차도 그 앞에서는 좀벌레 솜털에 불과한 우리의 거대한 뿌리를 확인하는 것이다.

5월로 짓밟힌 그 암울한 시대에 김수영이 썼던 시가 그렇다. 그러니 지칠 수 없는, 비루할 수 없는 우리의 거대한 사랑을 써야 하는 것이 시인인 것이다. 신동엽은 김수영이 죽은 나흘 후에 김수영을 “태백의 지맥 속에서 솟는 싱싱한 분수가 긋는 무지개”로 상징화했다. 김응교 지음/삼인/670쪽/2만 9800원. 최학림 선임기자 theo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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