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의 역사적 개방성과 역동성에 더 주목합시다”

부산닷컴 기사퍼가기

이훈상 동아대 명예교수를 비롯한 부산경남고문서연구팀이 고문서에 대한 토론을 하고 있는 모습(왼쪽). 이훈상 명예교수는 “부산은 개방성 역동성의 도시인데 그 면모를 우리는 아직 마저 알지 못한다”고 했다. 부산경남고문서연구팀 제공·최학림 선임기자

부산(부·울·경)은 어떤 곳인가. 끊임없이 되물어야 하는 질문이다. 이훈상(68) 동아대 사학과 명예교수는 ‘주변부, 주변집단 그리고 주변성’이란 주제의 역사연구를 연구자들과 진행해왔다. 그의 연구팀은 최근 ‘부산경남고문서연구총서’ 4권(22~25권)을 추가로 냈다. 각 권은 철마 남평문씨 대부 장부(강주성 손숙경), 회동동 농촌진흥회 기록(손숙경), 19세기 말 사상면 호적중초(진상원), 인류학자 강신표의 부산 피란시절 기록(이옥부 이훈상) 등이다. 2009년부터 나온 이 총서는 이제 모두 25권을 헤아리게 됐다. 다른 3가지 총서가 더 있다. 근현대사연구총서’(3권) ‘역사민족지총서’(4권) ‘통영기록문화유산과 무형문화유산총서’(4권)까지 합치면 4가지 총서는 총 36권에 이른다. 그 속에 부산의 근현대 역사상(像)이 들어있을 것이다.

이훈상 동아대 사학과 명예교수
연구팀 함께 부산경남고문서 탐독
최근 총서 4권 펴내 총 25권 출간
향리·무임 집단 활발한 개혁 노력
전쟁 겪으며 개방성·역동성 습득
“부산의 역사 아직 마저 알지 못해”

이훈상 교수는 향리, 즉 이서(吏胥)집단에 주목해왔다. 그의 연구팀이 동래에서 발견한 것이 무임(武任)집단이다. ‘2차 집단’인 이서와 무임은 각각 행정과 군사 실무를 담당하면서 실질적으로 조선 후기 부산을 움직여왔다. 그는 “많은 엘리트를 배출한 이들 집단에 의해 부산은 구한말과 근대기에 상당한 근대적 감각을 지닐 수 있었다”고 했다. 부·울·경을 아우르면 의열단 단장인 밀양의 김원봉과 동래의 박차정, 나혜석의 남편 김우영, 기장의 김두봉과 김약수, 신필수와 이하영, 울산의 최현배, 웅천의 주기철, 양산의 정준모 등등이 향리나 무임 가문의 후손이었다. 최현배와 김두봉은 남북한 국어정책을 주도한 인물이었다.

향리와 무임들은 부산의 근대교육을 앞서서 개척했다. 그는 “동래기영회가 1898년 일어학교(동래부학교)를 만든 것은 세계와 시대를 개척하는 데 언어만큼 중요한 게 없다는 실전 감각에 의해 가능했다”고 했다. 동래기영회가 삼락·개양·동명학교를 설립한 것도 그냥 설립한 게 아니다. “나이 든 퇴직자들이 많은 선택 중 학교를 설립했다는 것, 나중에 과감히 공립학교로 전환했다는 것 등은 열린 사회로의 지향과 미래에 대한 준비를 보여주는 뚜렷한 사례예요.” 특히 기장에서 많은 인물들이 나왔는데 그는 “기장뿐 아니라 부·울·경 전체가 개항의 배후지로서 근대의 자극을 받지 않을 수 없었다”고 했다.

부산의 개방성 역동성은 부산이 한국사에서 아주 독특한 곳이기 때문에 가능한 지평이었다. “부산에서 향리 가문들은 조선을 전·후기로 가르는 임진왜란을 거치면서 거의 해체됐습니다. 그래서 안동 경주처럼 ‘독점 가문’이 없었어요. 역설적으로 부산은 ‘열린 변화’의 도시가 된 거지요. 게다가 한국전쟁으로 ‘현대판 해체 진통’을 치르면서 개방성을 가속화한 곳이 부산이지요.” 그렇게 보면 ‘동아시아 세계대전’(임란)과 ‘세계사적 전쟁’(한국전쟁)의 파고를 경계 위치에서 온몸 그대로 받아낸 부산은 한국사에서 예사롭지 않은 곳이다. 위대한 도시의 가능성을 내다볼 수 있는 곳이라는 거다.

이번에 출간한 총서 제25권 <한국전쟁기 부산 피란학교 시절 어느 고등학생의 일상과 독서모임>은 작고한 인류학자 강신표 선생의 방대한 일부 자료를 분석한 것이다. 이 교수는 “강신표 선생의 자료는 피란수도 부산의 모습을 보여주는데 당시 고등학생들이 독서모임에서 헤겔 <역사철학>을 비롯한 아주 다양한 책을 읽었고, 좌우의 폭넓은 이념을 역동적으로 공부한 것을 알 수 있다”며 “그것이 이후 한국의 저력이 됐다”고 했다. 당시 젊은이들이 전쟁의 폐허 속에서 ‘절망과 어둠을 넘어서는 힘’을 지니고 있었고, 그런 힘이 한국을 만들었다는 거다. 그것이 피란수도였고, 부산의 현대였다는 거다.

부산의 역동성을 동어반복 속에 심드렁하게 매몰시켜서는 안 된다. “1970년대 중화학공업 벨트가 부울경 연안지역에 만들어졌어요. 큰 반대와 충돌 없이 대단위 공업단지가 만들어지는 경우는 세계적으로도 드문 경우입니다. 부울경의 역동성에서 이유를 찾을 수 있을 겁니다.” 그는 “부산에 수없이 많은 훌륭한 사람들이 있었으나 그들의 이름이 제대로 드러나 있지 않다”며 “만약 서울이었다면 충분히 제대로 조명이 됐을 것”이라며 지역적 궁구의 아쉬움을 지적했다. 지역이 지역을 모른다는 것이 참으로 안타깝다는 거다.

그의 말이다. “천주교 신앙을 지키다 1868년 수영 장대골에서 순교한 동래의 무임과 향반인 이정식과 양재현은 2014년 로마 교황청에 의해 부산의 순교자 중 첫 복자(福者)가 되었습니다. 전형적인 ’속(俗)의 세계‘에 속한 그들이 지극한 ’성(聖)의 세계‘로 나아가 순교한 그 사실은 놀랍고 신비롭습니다. 우리는 아직 부산의 역사를 마저 알지 못합니다.” 최학림 선임기자 theos@busan.com


당신을 위한 AI 추천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