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원전 폐기’엔 박차 ‘핵폐기물 처리’엔 뒷짐
대통령직인수위원회가 ‘탈원전 정책 폐기’에 가속 페달을 밟지만 핵폐기물 처리 문제에 대해서는 “고준위 방폐물 처리 특별법이 필요하다”는 원론적 입장 표명에만 그치고 있다. 인수위 출범 한 달이 되도록 고준위 방사성 폐기물을 어떻게 처리할지 아직 방향조차 잡지 못하는 것이다. 부산·울산·경남 지역은 우리나라 최대 원전 밀집지로,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의 탈원전 백지화 기조에 수차례 우려를 표시해 왔다.
원희룡 인수위 기획위원장은 12일 서울 종로구 통의동 인수위 기자회견장에서 브리핑을 통해 “문재인 정부가 추진해 온 탄소중립정책이 실제로는 실현 가능성이 크게 떨어지는 한편 민생 압박 요인도 갈수록 심해질 것으로 나타났다”면서 에너지 정책의 대대적인 전환을 예고했다.
‘친원전 정책’ 공식화 윤 인수위
고준위 방폐물 처리엔 답 없어
“특별법 필요” 원론적 입장 급급
윤, 대선서 처리장 조속 확보 약속
시민단체 “지역에 떠넘기기 안 돼”
원 위원장은 ‘실현 가능한 탄소중립’이라고 설명했지만 그간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탈원전 정책 전면 재검토 의지를 강하게 밝혀 온 데다, 에너지 정책 담당 부처인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으로 내정된 이창양 후보자 역시 “합리적이고 실용적인 에너지 정책을 추진하겠다”며 뒷받침한 만큼 사실상 탈원전 정책 폐기를 공식화한 것으로 해석된다.
이처럼 윤석열 정부는 ‘친원전 정책’을 예고한 상태지만 정작 원전 폐기물 처리 문제에 대해서는 인수위 출범 한 달이 넘도록 논의가 진전되지 않은 상태다. 원일희 인수위 수석대변인은 지난 11일 “탈원전(정책)이 폐기되고 원자력 발전이 늘어나게 된다는 전제 아래 고준위 방폐물 처리 특별법은 필요한 사안이라고 인식한다”면서도 “현재 유사 법안이 국회에 계류 중인 가운데 인수위에서 특별법 제정까지 논의가 진전되지는 않은 상황”이라고 말했다.
윤 당선인이 올해 2월 서면 인터뷰에서 고준위 방사성 폐기물 처리장과 관련, “집권하면 사용후핵연료 중간저장시설과 영구처분시설 확보를 위한 절차를 조속히 추진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하지만 인수위 출범 3주가 넘도록 대책 마련에는 손을 놓고 있다.
인수위가 구체적인 방향성 없이 고준위 폐기물 특별법 필요성만을 언급하면서 일각에서는 국회에 계류 중인 ‘고준위 방사성 폐기물 관리에 관한 특별법’(고준위 폐기물 특별법) 전철을 밟는 것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지난해 9월 발의돼 현재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에 머물러 있는 고준위 폐기물 특별법은 더불어민주당 김성환 의원이 대표발의한 법안으로 주요 내용은 고준위 방사성폐기물 관리위원회 설치다. 하지만 ‘원전 부지 내 임시저장시설 설치’가 담겨 기존 원전을 영구처분장으로 만드는 데 악용될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 쏟아졌다.
이에 대해 시민단체에서는 원전에 이어 고준위 방사성 폐기물까지 지역민들에 책임을 전가해서는 안 된다고 지적한다. 탈핵시민연대 정수희 활동가는 "최소 20만 년을 보관해야하는 고준위 핵폐기물에 대한 대책도 없이 핵발전 최강국을 만들겠다는 주장을 반복한다"며 "문재인 정부가 핵발전소 지역에 핵폐기물까지 떠넘기겠다는 기본계획을 수립한 바 있는데, 주민 반발을 의식해 윤석열 당선인 역시 주민 의견을 좀 더 수렴하겠다는 것 이상의 계획이 없는 상황"이라고 비판했다.
이은철 기자 euncheol@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