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영희와 함께 읽는 우리 시대 문화풍경] 시대의 어둠과 빛을 갈마드는 예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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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대 대학원 예술·문화와 영상매체협동과정 강사

1867년 6월 19일 이른 아침 멕시코 황제가 처형됐다. 막시밀리안. 35세의 푸른 나이였다. 오스트리아 황족으로 유럽 제국주의시대를 상징한다. 그는 어떻게 멕시코의 황제 자리에 올랐으며, 재위 3년 만에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질 수밖에 없었을까. 에두아르 마네(Eduard Manet, 1832~1883)는 이 소식을 접하고 1년 반 남짓 작업에 몰두하여 유화 스케치 1점과 석판화 1점, 대형 유화 3점을 남겼다. 이다. 마지막 작품에는 서명과 함께 처형 날짜를 덧붙였다. 마네는 제국주의 역사가 빚은 폐허의 무덤에 영혼조차 쉽게 잠들지 못하는 이름으로 막시밀리안을 기록했다.

베니토 후아레스는 1861년 멕시코 대통령이 됐다. 인디오 출신이다. 가톨릭교회와 대지주를 겨냥해 토지개혁을 단행했을 때 기득권층의 반발이 거셌다. 미국의 도움으로 3년간의 내전을 잠재우지만, 외채상환과 재정위기가 국가의 미래를 암울하게 했다. 모라토리엄을 선언하자 반후아레스 세력은 프랑스와 손을 잡았다. 먼로주의에 기초하여 미국이 프랑스를 압박하자 프랑스 부대가 철군했다. 막시밀리안은 결국 유럽 열강과 미국 팽창주의가 격돌하던 시대의 희생양이 되고 말았다. 인디오의 보호자를 자처하며 진정한 황제를 열망했던 그의 꿈도 아침이슬처럼 스러졌다.

마네의 그림은 이 시대의 역사를 담담하게 증언한다. 막시밀리안의 비극과 후아레스의 독립항전, 중남미와 미국의 관계를 비롯해 담장 너머 민중들의 무심한 표정까지 다채롭게 그려내었다. 무엇보다 19세기 유럽 제국주의의 민낯이 압권이다. 처형을 집행하는 멕시코 병사들의 복장은 프랑스군 제복과 다름없으며, 최후의 일격을 위해 총알을 장전하는 병사는 나폴레옹 3세와 교묘하게 중첩된다. 막시밀리안을 죽인 장본인이 프랑스라는 사실을 붓질로 화폭에 기록한 셈이다. 시대를 응시하는 예술가의 명징한 눈이 돋보인다. 나폴레옹 3세가 통치한 시기 파리에서는 전시되지 못했으나, 1869년 완성한 마지막 버전은 1879년 뉴욕과 보스턴에서 공개됐다. 1884년에는 복제가 금지됐던 석판화 50점이 제작되기도 했다.

피고 지는 벚꽃처럼 다시 4월을 맞는다. 시인 김수영이 말했듯 혁명에는 왜 피의 냄새가 섞여 있는가를 되새기게 하는 계절이다. 4월혁명, 부마민주항쟁, 6월항쟁에 이르기까지 예술은 역사의 격랑을 어떻게 기억하고 갈무리했던가. 순수예술의 이름 아래 예술계를 장악한 심미주의에 반발하며 1980년대 민중미술의 물길이 시대의 어둠과 빛을 갈마들었다. 걸개그림은 그 자체로 저항이자 역사의 기록으로 부족함이 없다. 예술이 생산하는 불화의 담론은 시대를 일깨우며 역사에 생기를 불어넣는다. 시대와의 불화를 감내하며 역사적 진실을 탐구하는 것이야말로 예술의 운명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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