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화는 15세기가 아니라 1000년 무렵 이미 이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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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0년/발레리 한센

21세기 들어 세계사가 계속 새롭게 쓰이고 있다. 마르크스의 아시아적 생산양식도, 서양 중심의 근대도 깨지고 있다. 새로운 역사, 가려진 진실이 드러나고 있다. 과거의 역사가 발견되는 것이 아니라 현재의 역사가 새롭게 만들어지고 있는 거다. ‘세계가 하나로 연결되었을 때’라는 부제가 붙은 이 내놓은 주장은 다음과 같다. “세계가 하나로 연결된 세계화는 15세기 지리상의 발견보다 훨씬 이전인 1000년 무렵에 이뤄졌다.” 미국 예일대 역사학과 교수가 썼다. 책은 할머니가 옛이야기를 들려주듯 많은 예를 들면서 1000년 무렵의 세계화를 편하게 술술 풀어낸다.

당시 세계는 블록화돼 자체 교역망 갖춰
중국 송나라 취안저우 세계화 중심 도시

1000년 무렵 세계 곳곳은 블록화되어 자체 교역망을 갖췄으며, 그 교역망은 팽창 압력을 견디지 못해 경계를 넘나들면서 세계화로 나아갔다고 한다. 그 세계화의 첫째 증거는 1000년 무렵에 전 세계의 왕국들은 세계 4대 종교(이슬람교 기독교 힌두교 불교)로 개종했다는 거다. 이때 많은 교류를 통하면서 서서히 4대 종교가 자기 영역을 만들었다는 말이다. 그 결과 오늘날 세계 종교 신자의 92%가 이 중 하나를 믿는다. 신장 위구르의 이슬람화, 러시아 정교회 신앙의 출발점이 이 시기였다.

더욱 놀라운 점은 콜럼버스의 아메리카 도착 500년 전 바이킹이 아메리카에 먼저 도착했다는 거다. 바이킹은 1000년 무렵 오늘날 캐나다 동부 지역 ‘빈란드’를 3차례나 탐험했다. 원주민과 서로 교역했고 싸움을 벌이기도 했다. 이뿐만 아니라 1000년 무렵 아메리카 내부에서도 남북 교역망이 형성돼 있었다. 유카탄반도의 마야인들은 북으로 미시시피강, 남으로 콜롬비아까지 갔다. 아프리카 내부에도 정교한 교역 시스템이 형성돼 있었다.

이렇게 세계화가 진행된 것은 당시 생산력이 팽창했으며, 세계 인구도 교류하지 않을 수 없는 상태로 늘어났기 때문이다. 1000년 무렵 세계 인구는 2억 5000만 명이었는데 이 인구가 세계화의 임계치였다. 1000년 당시 세계의 중심은 아시아, 더 좁게는 중국 송나라였다. 당시 세계 인구 2억 5000만 명 중 아시아가 50% 이상, 유럽과 아프리카가 각각 20%, 아메리카는 10% 이하를 차지했다고 한다. 중국 송나라의 수도들인 카이펑과 항저우의 인구는 100만 명이었고, 이슬람 도시였던 스페인의 코르도바 인구는 45만 명, 파리 인구는 2만~3만 명이었다. 유럽은 굉장히 미숙한 상태였다.

1000년 무렵 중국 송나라에서 광저우 취안저우는 세계화의 중심 도시였다. 사실 송나라 때 강남이 개발되고 농업·기술혁명이 일어났으며 주자학이라는 사상혁명도 일어났다. 취안저우에는 1000년 무렵 남인도인들이 사찰을 지었고, 또 이슬람인들이 중국 최고(最古)의 이슬람사원을 지었을 정도다. 아랍어를 사용한 무슬림 거주지가 있었다. 중국과 인도양 지역은 1000년이 되기 훨씬 전부터 폭넓게 교역했다고 한다. 중국~페르시아만 해로는 700~800년대에 형성돼 있었고, 그 해로는 동아프리카까지 연장되었다. 세계사는 서구의 장막을 걷어내고 이제 전혀 다른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발레리 한센 지음/이순호 옮김/민음사/488쪽/2만 7000원. 최학림 선임기자 theo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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