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물썰물] 오해가 낳은 참극
세상의 많은 비극은 오해에서 비롯된다. 오해 때문에 나라 간 전쟁으로 비화한 역사적 사례들도 많다. ‘엠스 전보 사건’이 대표적이다. 1870년 독일 통일을 꿈꾼 프로이센의 재상 비스마르크가 빌헬름 1세의 전보 내용을 교묘하게 수정해 언론에 흘리는 식으로 프랑스를 자극한 사건이다. 비스마르크가 바꾼 전보 내용도 충분히 문제가 된 데다가 이 전보를 받은 프랑스 통신사가 번역 과정에서 결정적인 오역을 해 기름을 부었다. 결국 두 나라 사이에 전쟁까지 일어났으니 바로 1870년 보불 전쟁이다. 조작과 오해가 부른 전쟁은 제1차 세계대전과 2차 세계대전으로 이어졌다.
각종 인종차별도 오해의 대표적 사례라 할 것이다. 올해로 30주년을 맞은 ‘LA 폭동’은 오해가 더 큰 오해로 번진 참사였다. 당시 한인 상점 주인이 10대 흑인 소녀를 절도범으로 오해해 총으로 살인한 사건으로 ‘한흑 갈등’이 촉발됐다. 흑인들에게 극단적인 혐오와 차별의 대상은 백인이 아니라 같은 약자인 한국계 미국인이었다. 제주 4·3 사건에서도 오해의 극단을 본다. ‘빨갱이 폭도’와 ‘토벌대 군경’ 어느 쪽에도 가담하지 못하는 도피자와 가족들이 양쪽으로부터 지독한 의심과 오해에 시달렸다. 이쪽 아니면 저쪽, 흑백 논리만 난무하던 우리 현대사의 여러 비극적 장면들은 여전히 풀어야 할 숙제로 남아 있다.
엊그제 한 살인 사건의 피고인이 징역 20년을 선고받았다는 뉴스가 들렸다. 언어가 통하지 않는 중국인과 한국인이 소통을 위해 앱 번역기를 사용했는데, 낱말 오역으로 뉘앙스가 달라지는 바람에 오해가 불거졌고 급기야 참극으로까지 이어진 것이었다. 물론 잔인한 살인은 용서받지 못할 행위지만 인간의 감정을 대변하지 못하는 기계가 살인의 계기로 작용했다는 사실이 충격적이다. 얼굴 보고 대화해도 소통하기 힘든 판국인데 비대면 중심 사회로 갈수록 오해가 깊어져 더 많은 비극을 낳는 건 아닌지 두려워진다.
일상적인 인간관계에서도 오해는 힘이 세다. 직장에서의 오해, 사랑과 관심, 배려를 둘러싼 오해, 심지어 오해에 대한 오해까지. 특히 가족과 같은 소중한 사람과의 대화에서 더 많은 오해가 생기고 스트레스도 더 많이 받는다. 당연하다고 생각되는 그것이 당연하게 전달되는 건 아니기 때문이다. 오해는 불통의 다른 말이다. 좋은 의도를 적절한 방식으로 잘 표현하는 것이야말로 이 시대에 정말 필요한 삶의 자세가 아닐까. 김건수 논설위원 kswoo33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