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MA 컬렉션, 미술관 보고(寶庫) 들여다보기] 165. 여성성 바탕으로 한 생명에의 탐구, 이순종 ‘전리품’
이순종(1953~)은 1990년대 한국 여성주의 미술의 선두로 평가받는다. 작가는 분단국이자 휴전 국가인 한국 상황에 대한 관심을 바탕으로 전쟁의 잔인함과 그로 인한 상처, 동시대 안에 존재하는 여러 문화나 전통 간의 경계 등을 작가만의 ‘에로티시즘(Eroticism)’으로 표현한다. 작가는 평면과 입체, 설치에 이르는 다채로운 작업을 선보여 왔다.
이순종이 추구하는 에로티시즘은 현대사회의 여러 가지 모순 그리고 여성성을 바탕으로 한 생명에 대한의 탐구로 귀결된다. 작가는 ‘침’이라는 독특한 재료를 사용해 자신만의 형상을 만들어 나간다.
그의 작품에 등장하는 뾰족한 침은 동양에서는 몸이 아픈 환자를 치료하는 수단이자 공격성을 지닌 도구로 인식된다. 이것은 여성이 겪는 고통과 아픔을 상징하는 동시에 회복과 치유를 의미하는 양면적 특징을 갖고 있는데, 이는 현대 사회에 존재하는 모순적인 개념을 효과적으로 드러내는 장치이기도 하다.
천장에 사슴뿔이 매달려 있는 형상의 작품 ‘전리품’은 ‘뿔’과 ‘침’이라는 재료가 가진 공격성으로 인해 남성이 지닌 지배욕과 과시욕에 대한 문제를 드러내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중앙의 동그란 모양의 침들은 솜털처럼 보드랍게 보이기도 하고 외부의 공격으로부터 자신을 방어하기 위한 장치로 작동한다. 이렇듯 이순종의 작품에 드러나는 여성성은 연약한 대상을 향한 연민에 머물지 않고 남성성과 여성성이 지닌 자연스러운 생명력과 에너지를 동시에 보여주며 서로를 품고 공존하는 모습을 보인다.
이순종은 작품에서 촉각적인 재료를 사용해 신체적 감각을 유도하며 중심과 주변, 생명과 죽음 등 이 시대의 다양성을 드러낸다. 그의 작품은 한국인과 여성, 작가로의 정체성에 대한 깊은 사유와 자유롭고 실험적인 예술적 실천의 결과이다. 최지아 부산시립미술관 학예연구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