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리우폴 지키다 투항한 ‘아조우 연대’… 전쟁 ‘새 불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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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크라이나 마리우폴의 아조우스탈 제철소에서 80일 넘게 항전하다 러시아에 투항한 우크라이나 병력 수백 명의 운명이 전쟁의 새로운 쟁점으로 떠오르고 있다. 러시아가 이들의 신병을 어떻게 처리하느냐에 따라 확전의 또 다른 불씨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러시아 내에서는 벌써 수백 명을 테러리스트로 규정해 처형하려는 움직임도 있어 제네바 협약 위반 논란도 일고 있다.

러시아 국방부는 18일(현지시간) 지난 사흘간 이 제철소에 은신했던 우크라이나 병력이 950명 넘게 투항했다고 밝혔다. 이들 중 일부 부상자는 병원으로 옮겨졌고, 나머지는 교도소에 수감됐다.

아조우스탈 제철소서 항전 뒤 투항
우크라군 950여 명 신병처리 놓고
제네바협약 ‘전쟁포로’ 인정 ‘쟁점’
러, 앞서 투항한 병력엔 처형 시도

당장 러시아가 이들에게 제네바 협약에 따른 전쟁포로 지위를 인정할 것인지가 쟁점이다. 러시아는 이들을 ‘전쟁범죄 용의자’로 보기 때문이다. 전쟁포로에 대한 처우를 규정한 제3차 제네바 협약은 적군에 생포된 시점부터 전쟁포로로서 인도적 대우를 받아야 하며, 전쟁에 참여했다는 것만으로는 처벌할 수 없다고 규정한다. 그러나 러시아 내에서는 이 중 상당수 병력들을 사형에 처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투항한 마리우폴 수비군 상당수가 2014년 극우 성향 민병대로 시작했다가 이후 우크라이나군에 편입된 ‘아조우 연대’ 대원이라는 이유에서다.

러시아는 나치주의를 추종하는 아조우 연대가 우크라이나 동부 돈바스 지역의 친러시아 성향 주민을 대량으로 학살, 고문하는 범죄를 자행했다고 주장한다. 러시아가 2월 우크라이나를 침공하면서 내세운 명분 중 하나인 ‘탈나치화’는 아조우 연대 같은 우크라이나 내 강경 민족주의 세력을 겨냥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러시아로선 투항병들을 전쟁포로로 대우하는 대신 법정에 세워 처벌하는 것이 이런 논리에도 맞고 전쟁을 정당화하는 데도 도움이 된다. 이에 따라 러시아 내에서는 이런 주장을 ‘실증’하려는 절차가 시작된 것으로 보인다. 러시아 대법원은 이달 26일 아조우 연대를 테러 조직으로 지정할지를 놓고 심리를 진행하기로 했고, 러시아 연방수사위원회도 투항병들을 상대로 돈바스 지역의 민간인 대상 범죄 연루 여부를 조사하겠다고 밝혔다. 제네바 협약을 위반하지 않고 포로를 처벌할 수 있는 유일한 방안이 전쟁범죄 재판인 만큼 이러한 움직임은 러시아에 신병이 넘어온 이들을 기소하려는 사전 작업으로도 해석된다.

유엔 인권최고대표사무소 자료 등에 따르면 아조우 연대 일부 병사가 돈바스 지역에서 친러 반군과의 분쟁이 발발한 직후, 약탈하거나 친러 성향 주민에 대한 고문과 성적 학대 등에 관여한 사실이 확인되기도 했다. 하지만 아조우 연대가 우크라이나 정규군에 편입되면서 인적 구성이 크게 바뀌었다는 점을 고려하면 투항병 가운데 사건 관여자들이 남아 있지 않을 가능성도 크다.

우크라이나 총참모부는 지난 17일 마리우폴에서 ‘작전 임무’를 끝냈다며 사실상 퇴각을 발표했다. 우크라이나 당국은 아조우스탈 병력을 포로 교환을 통해 데려오겠다는 입장이지만 침묵을 존중해달라며, 아직 구체적인 계획은 내놓지 않고 있다. 러시아 측에서 포로 교환과 관련해 호응할 것이라는 조짐도 아직 나타나지 않고 있다.

이현정 기자 yourfoot@busan.com·일부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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