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숨비] “오리발 대신 실내화도 괜찮아”… ‘부산 청사포’ 해녀들 #7

장병진 기자 joyful@busan.com , 이우영 기자 verdad@busan.com , 서유리 기자 yool@busan.com , 남형욱 기자 thoth@busan.com , 정수원 PD blueskyda2@busan.com , 정윤혁 PD jyh6873@busan.com , 이지민 에디터 mingmini@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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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숨비’는 제주도 밖 육지 해녀의 대명사인 부산 해녀를 기록하는 프로젝트입니다. 부산은 제주도 해녀들이 처음 출향 물질을 하며 정착한 곳이지만, 지난해 말 기준 60대 미만 부산 해녀는 20명 남았습니다. 인터뷰와 사료 발굴 등을 통해 사라져가는 부산 해녀의 삶과 문화를 기록하고, 물질에 동행해 ‘그들이 사는 세상’도 생생히 전달할 예정입니다. 제주도 해녀보다 관심이 적은 육지 해녀가 주목받는 계기로도 삼으려 합니다. 이번 기획 보도는 〈부산일보〉 지면, 온라인, 유튜브 채널 ‘부산일보’ 등 다양한 플랫폼에서 만날 수 있습니다.


6월 17일 오후 4시께 부산 해운대구 중동 청사포 앞바다. ‘푸른 모래의 포구(청사포)’에서 물질하던 해녀들이 한 명씩 뭍으로 돌아왔다. 어깨에 ‘물건(해산물)’을 담은 망사리와 주황색 테왁을 멘 해녀들은 계단을 타고 해안도로까지 올라왔다.

해녀들은 청사포 명물인 조개구이 식당과 카페 앞길을 따라 걷기 시작했다. 노란 손수레나 유모차에 망사리와 테왁을 실어 옮기는 해녀도 있었다. 몇몇 관광객은 발길을 멈추고 호기심 어린 눈으로 그들을 바라봤다.


청사포 해녀들이 6월 17일 오전 바다로 들어가기 위해 물질 도구를 든 채 해안도로를 걷고 있다. 정수원 PD blueskyda2@busan.com 청사포 해녀들이 6월 17일 오전 바다로 들어가기 위해 물질 도구를 든 채 해안도로를 걷고 있다. 정수원 PD blueskyda2@busan.com

청사포에도 해녀 ‘숨비소리’가 울린다. 잠수한 후 내뿜는 ‘호이~’ 소리는 해안가 식당에서도 들릴 정도다. 그들은 유명 관광지 해운대에서 ‘부산 해녀’라는 자부심으로 수십 년간 물질해왔다.

청사포 해녀들은 부산 여타 지역과 다른 특징도 있다. 새벽이 아닌 점심쯤 물질을 떠나고, 오리발 대신 실내화를 신는다. 큰 욕심 부리지 않는다는 뜻이다. 미역이나 전복 등 바닷속 물건에 대한 자부심도 크다.


청사포를 지킨 부산 해녀들

올해 5월 처음 만난 청사포 해녀들은 총 13명이 물질한다고 했다. 5월 31일과 6월 17일 바다에 들어간 해녀는 각각 11명. 지난해 말 기준 부산시에 등록된 청사어촌계 해녀는 42명, 신고 해녀는 14명이었다.

다른 지역처럼 청사포 해녀도 줄어드는 추세다. 그들은 약 40년 전엔 해녀가 서른 명 정도라고 했다. 현재 미포, 우동, 송정어촌계는 신고 해녀가 한 자릿수인 상태. 청사포는 그나마 해운대에서 해녀가 많은 편이다.

5월 31일 하늘에서 내려본 청사포 전경. 빨간 등대에서 항구 방향으로 따라 걸으면 해녀 휴게실을 갖춘 ‘청사포 마켓’이 있다. 정윤혁 PD jyh6873@busan.com 5월 31일 하늘에서 내려본 청사포 전경. 빨간 등대에서 항구 방향으로 따라 걸으면 해녀 휴게실을 갖춘 ‘청사포 마켓’이 있다. 정윤혁 PD jyh6873@busan.com

청사포 해녀들은 부산을 포함한 육지 출신이라고 자신들을 소개했다. 청사포에서 태어났거나 시집온 부산 해녀가 전부라고 했다. 부산 영도, 송도, 다대포 등 제주도 출신이 많은 바닷가와는 달랐다. 휴게실이나 바닷가에서도 제주말 대신 진한 부산 사투리만 오갔다.

청사어촌계 김업이(69) 해녀는 “지금 청사포에서 물질하는 해녀 중 제주 출신은 하나도 없다”며 “어린 시절부터 청사포에서 자연스레 물질을 배웠거나 기장군 등에서 시집와 해녀가 됐다”고 말했다.

청사포 해녀들이 6월 17일 해산물을 수확하러 가기 위해 테왁을 들고 흩어지고 있다. 정수원 PD blueskyda2@busan.com 청사포 해녀들이 6월 17일 해산물을 수확하러 가기 위해 테왁을 들고 흩어지고 있다. 정수원 PD blueskyda2@busan.com

심지어 청사포에서 해녀가 자생적으로 탄생했다고 보기도 한다. 수십 년 전 제주 출향 해녀들이 청사포에 온 적은 있었지만, 애초에 청사포에도 해녀가 있었다는 것이다. 부산 출신 해녀가 많은 기장군에도 부모가 제주 출신인 경우는 꽤 있다. 그런데 청사포 해녀들은 부모도 제주 출신이 아니라며 자신들이 ‘토박이 해녀’라고 입을 모은다.


욕심 없이 느긋하게

청사포 해녀들에겐 남다른 ‘여유’가 있다. 보통 ‘억척스럽다’는 말을 듣는 해녀들과는 다르다. 5월 31일 오전 9시 30분께 마을버스 정류장 옆 ‘청사포 마켓’. 이곳 해녀 휴게실에서는 아침부터 ‘드라마’나 ‘병원’ 이야기 등이 오갔다. 이른 새벽부터 바다에 들어가는 다른 지역 해녀들과는 다른 모습이었다.

청사포 해녀들이 6월 17일 사물함에서 테왁 등 물질 도구를 꺼내 바다에 들어갈 준비를 하고 있다. 정윤혁 PD jyh6873@busan.com 청사포 해녀들이 6월 17일 사물함에서 테왁 등 물질 도구를 꺼내 바다에 들어갈 준비를 하고 있다. 정윤혁 PD jyh6873@busan.com

휴게실에서 한참 수다를 떨던 해녀들은 오전 11시가 넘어서야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들은 “이제 물질하러 가자”고 하더니 각자 집으로 향했다. 탈의실이 없어 옷을 갈아입으러 집으로 간 것이다. 인근 마을에 사는 해녀들은 곧 다시 모여 물질 도구 등을 챙겼다. 해녀들은 청사포 앞바다에 들어간 뒤 오후 3~4시쯤 밖으로 나왔다.

청사어촌계 김형숙(70) 해녀는 “우리는 크게 욕심을 안 내서 아침 일찍부터 움직이진 않는다”며 “아침에 한참 쉬었다가 물 빠지는 시간에 맞춰서 물질을 다녀온다”고 했다. 그는 이어 “배워놓은 게 물질이라 안 하기도 그렇다”며 “바다에 가면 돈을 버니까 천천히 하려고 한다”고 덧붙였다. 청사포 해녀들은 6월 17일엔 낮 12시가 넘어서 바다에 들어가기도 했다.

청사포 해녀들이 6월 17일 오후 4시께 물질을 마친 뒤 성게 등을 손질하며 장사를 준비하고 있다. 정수원 PD blueskyda2@busan.com 청사포 해녀들이 6월 17일 오후 4시께 물질을 마친 뒤 성게 등을 손질하며 장사를 준비하고 있다. 정수원 PD blueskyda2@busan.com

그렇게 잡은 물건은 ‘청사포 마켓’에서 바로 판매한다. 전복이나 ‘성게알(성게소)’ 등을 손질해서 팔 때 해녀복은 벗지 않는다. 옷을 갈아입으러 집까지 가야하고, 해녀들이 잡아 왔다는 점도 알리기 위해서다. 김업이 해녀는 “잠수복을 안 입으면 해녀가 잡아 온 게 아니라고 의심하기도 한다”며 “우리는 다른 물건을 받아오지 않고, 잡아 온 것만 천천히 팔고 끝낸다”고 말했다.


■ 오리발 대신 실내화

청사포 해녀들은 오리발을 신지 않는다. 오리발은 제주도뿐만 아니라 부산 해녀에게 소중한 장비다. 물속에서 수월하게 이동하게 도와주고, 잠수할 때 힘을 덜 쓰게 해준다.

현재 활동하는 청사포 해녀 13명은 오리발 대신 ‘실내화’를 신는다. 고무 재질뿐만 아니라 발이 편한 면 실내화도 있었다. 1990년대 초등학교 교실에 흔했던 하얀색 실내화를 신은 해녀도 눈에 띄었다.

지난달 31일 오전 청사포 해녀가 하얀 실내화를 신은 발을 바다에 담그고 있다. 정윤혁 PD jyh6873@busan.com 지난달 31일 오전 청사포 해녀가 하얀 실내화를 신은 발을 바다에 담그고 있다. 정윤혁 PD jyh6873@busan.com

오리발을 사용하지 않는다 해서 청사포 물살이 약한 건 아니다. 청사포 해녀들이 물질하는 다릿돌 주변은 특히 조류가 센 편이다. 김형숙 해녀는 “오리발을 차면 수월하긴 할 텐데 청사포에서는 어머니 세대부터 쓰지 않았다”며 “어머니들 따라서 배우다 보니 자연스럽게 실내화를 신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다릿돌은 몸이 떠내려갈 정도로 물발이 세도 오리발 없이 하다 보니 괜찮다”고 말했다.

청사포 해녀들이 6월 17일 갯가에 앉아 물질을 떠날 준비를 하고 있다. 정수원 PD blueskyda2@busan.com 청사포 해녀들이 6월 17일 갯가에 앉아 물질을 떠날 준비를 하고 있다. 정수원 PD blueskyda2@busan.com

청사포 해녀들은 대신 바닷속 돌에 닻을 걸어 줄을 연결하는 방식을 활용한다. 오리발 없이도 빠른 속도로 내려갈 수 있고 방향을 쉽게 잃어버리지도 않는다. 청사어촌계 정영자(68) 해녀는 “오리발을 차면 발목이 아프다는데 굳이 쓸 필요가 있냐는 의견에 따라 단체로 실내화를 신기로 했다”며 “닻에 연결한 줄을 타면 바닥까지 금방 내려가서 큰 문제는 없다”고 말했다.

오히려 실내화가 편한 점도 있었다. 일부 해녀는 얕은 갯가에서 해산물을 건졌는데, 오리발보다 실내화를 신은 덕에 이동이 더 편해 보였다.


해산물 명당은 다릿돌

청사포 해녀들은 다릿돌 전망대부터 청사포 등대 일대 바다를 누빈다. 겨울에도 바다에 들어가는 다른 지역과 달리 보통 5월부터 10월 말까지만 물질한다.

그렇게 잡아 온 미역, 전복, 소라 등 해산물은 품질이 좋다고 자부한다. 겨울에는 일주일 정도 말똥성게(앙장구)를 잡기도 한다. 옛날에는 우뭇가사리나 점착제를 만드는 재료인 ‘도박’ 등도 수확했다.

6월 17일 청사포 해녀가 잡아 온 두툼한 전복. 정윤혁 PD jyh6873@busan.com 6월 17일 청사포 해녀가 잡아 온 두툼한 전복. 정윤혁 PD jyh6873@busan.com

김업이 해녀는 “해산물을 머리에 인 채 철길 따라 해운대까지 걸어간 뒤 버스를 타고 자갈치로 이동해 물건을 팔던 시절도 있었다”며 “청사포 물건은 품질이 좋아서 모두 다 알아줬다”고 말했다.

특히 다릿돌 지역은 물살이 세고 돌이 좋아 품질 좋은 해산물이 나오기로 유명했다. 다릿돌은 안돌, 넙덕돌, 거뭇돌, 상좌, 석우돌 등 5개 바위섬으로 이뤄진 곳이다.

미역 등 품질 좋은 해산품이 자라는 청사포 다릿돌 5개 바위섬 중 한 곳. 정수원 PD blueskyda2@busan.com 미역 등 품질 좋은 해산품이 자라는 청사포 다릿돌 5개 바위섬 중 한 곳. 정수원 PD blueskyda2@busan.com

그중 ‘쫄쫄이 미역’은 전국적으로 알려졌다. 조선 시대에 진상품이 될 만큼 맛과 향이 뛰어났기 때문이다. 조류가 센 곳에서 자란 덕에 잎이 두껍고 주름이 많은 게 특징이다.

1960년대 이후로는 청사포에서 양식 미역 생산도 확대됐다. 그래서 12월 말부터 3월까지는 물질 대신 미역 양식을 하는 해녀도 많다. 이러한 청사포 미역 이야기는 2021년 해운대구청과 해운대문화원이 발간한 ‘주민의 기억으로 담은 이야기, 미포 청사포 구덕포 가을포’에 담겼다.


농사도 짓는 해녀들

청사포는 해변열차 정거장과 산책로 등이 생긴 이후 관광객 발길이 더욱 잦아졌다. 명물인 조개구이집을 넘어 많은 카페도 들어선 상태다. 물질한 날이면 청사포 마켓에서 해산물을 파는 해녀도 덩달아 주목받는다.

6월 17일 청사포 앞바다 인근 철로로 해변열차가 지나가고 있다. 정윤혁 PD jyh5873@busan.com 6월 17일 청사포 앞바다 인근 철로로 해변열차가 지나가고 있다. 정윤혁 PD jyh5873@busan.com

청사포 해녀들은 적당히 물질한다고 말하지만, 마냥 여유를 즐기는 건 아니다. 6월 13일 오전 바람이 강한 날씨 탓에 물질 일정이 취소돼도 해녀들은 마냥 쉬지 않았다. 그들은 ‘바다밭’은 못 가도 육지에 ‘밭일’을 하러 간다고 했다. 김업이 해녀는 “들깨나 콩뿐만 아니라 쪽파까지 웬만한 채소는 기르고 있다”며 “물질을 가지 않는 날엔 밭에 나가고 판매도 하고 있다”고 말했다.

6월 17일 청사포 앞바다에서 물질하고 있는 해녀들. 정수원 PD blueskyda2@busan.com 6월 17일 청사포 앞바다에서 물질하고 있는 해녀들. 정수원 PD blueskyda2@busan.com

물질부터 밭일까지 해온 청사포 해녀들은 알고 보면 누구보다 부지런히 살아왔다. 그러한 청사포 해녀들도 서서히 나이가 들어가고 있다. 몇 년만 지나면 60대 해녀도 찾아보기 어려운 실정이다.

정영자 해녀는 “80세가 넘은 해녀에게 물질 그만하고 경로당에 가라는 농담도 한다”면서 “그래도 물질을 해온 사람들은 계속해서 바다에 가고 싶어 한다”고 말했다.


※‘해녀 출입구’ 그림 이야기

청사포 해녀에게 바다로 가는 통로는 중요하다. 그 출입구는 청사포 마켓에서 다릿돌 전망대 방향 주차 공간 사이에 뚫려있다. 그런데 관광객이 많을 때 주차된 차량이 입구를 막을 때도 있었다.

그 공간에는 지금 의자가 하나 놓여 있다. 의자에는 ‘해녀 출입구’라는 문구와 함께 귀여운 해녀 그림이 같이 그려져 있다. 정영자 해녀 며느리가 낸 아이디어다.

청사포 해녀 출입구 쪽에 해녀 그림과 관련 문구가 적힌 의자가 놓여 있다. 정윤혁 PD jyh6873@busan.com 청사포 해녀 출입구 쪽에 해녀 그림과 관련 문구가 적힌 의자가 놓여 있다. 정윤혁 PD jyh6873@busan.com

정영자 해녀는 “자동차가 주차돼 있으면 물질을 마치고 지친 해녀들이 불편한 점이 많았다”며 “자동차 백미러 등에 수확물을 담은 망사리가 부딪칠 때도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처음에 의자를 뒀는데 사람들이 그걸 치우고 주차했다”며 “며느리가 그림을 그린 후로는 다른 곳에 주차를 해주셨다”고 덧붙였다.

해녀들은 이 의자 덕에 바다와 육지를 편히 오간다. 특히 청사포 해녀들은 손수레나 유모차 등을 이용해 무거운 수확물과 테왁을 옮기기도 한다. 이제 그들은 의자 옆에 손수레와 유모차를 세워둔 채 편한 마음으로 물질을 떠난다.


※청사포 해녀 이야기를 생생히 담은 영상은 기사 위쪽과 유튜브 ‘부산일보’ 채널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다음 편에서는 인터뷰 기사로 청사포 해녀들의 삶과 문화를 소개할 예정입니다.


장병진 기자 joyful@busan.com , 이우영 기자 verdad@busan.com , 서유리 기자 yool@busan.com , 남형욱 기자 thoth@busan.com , 정수원 PD blueskyda2@busan.com , 정윤혁 PD jyh6873@busan.com , 이지민 에디터 mingmini@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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