탑승 기다리던 아이, 엄마 손 뿌리치고 순식간에 차도로 ‘아찔’
[어린이 통학버스 불안하다] ① 등원·등굣길 현장
지난 13일 3살 난 어린이가 통학버스에 몸이 끼여 크게 다친 부산 부산진구 사고 현장 인근 좁고 경사진 도로에서 20일 오전 차량과 행인들이 뒤엉켜 지나고 있다. 정대현 기자 jhyun@
“차가 쌩쌩 달리는데 아이가 도로에 정차한 통학버스만 보고 겁도 없이 차도에 뛰어드는 걸 지켜볼 때면 조마조마하죠. 연이은 사고가 남의 일 같지가 않아요.”
부산 수영구 광안동 한 어린이집에 다니는 민준(가명·5)이 엄마 김 모(38) 씨는 매일 아침 민준이를 통학버스에 데려다준다. 민준이의 어린이집 통학버스 정차 지점은 왕복 4차로 도로가로 바로 옆에는 아파트 지하주차장 입구가 있다. 탑승 시간은 출근시간대라 도로를 오가는 차량부터 주차장에서 나오는 차량까지 더해져 도로에는 차량이 쉴 새 없이 오간다.
인솔교사 아이들 착석 확인할 때
다른 애 차량 앞쪽 가 서성거려
학부모 “아이, 어디로 튈지 몰라”
교사·운전자 서로 소통 잘해야
안전하게 승하차할 공간 마련
사고 막을 기술적 장치 등 필요
20일 오전 9시 노란색 통학버스가 멈춰 서자 민준이는 엄마 손을 붙잡고 차례를 기다렸다. 민준이처럼 버스에 타기 위해 인도에 줄 선 아이들만 7명이었다.
인솔교사가 차도에 내려 엄마 손을 붙잡은 아이의 손을 한 명씩 건네받아 버스 안으로 올려 보냈다. 아이는 7명인데 인솔교사는 단 한 명. 한 아이가 버스에 올라 좌석까지 가서 앉는 데 1분은 족히 걸렸다.
차례를 기다리던 민준이는 그새를 못 참고 엄마 손을 뿌리쳤다. 인솔교사가 좌석에 앉은 아이의 상태를 확인하는 사이 탑승 차례를 기다리던 민준이가 차로로 내려가 차량 앞쪽에서 서성였다. 민준이의 키는 120cm 남짓이다. 통학버스의 높은 운전석에 앉은 운전사가 민준이를 못 본 채 출발했다면 자칫 사고로 이어질 수 있는 아찔한 순간이었다.
놀란 김 씨가 얼른 차도에서 민준이의 손을 끌고 인도로 올라갔다. 김 씨는 “이런 일이 한두 번이 아니다. 아이들은 금방 산만해져서 계속 지켜보지 않으면 어디로 뛰어나갈지 알 수가 없다”며 놀란 가슴을 쓸어내렸다.
이달 들어 어린이 통학버스 승하차 과정에서 사고가 잇따라 발생해 부산에서만 2명의 아이가 목숨을 잃거나 크게 다쳤다. 사고 당시 아이들은 〈부산일보〉 취재진이 만났던 민준이처럼 보호자의 시야에서 잠깐 떠났을 뿐인데, 돌이킬 수 없는 끔찍한 사고를 당하고 말았다. 어린이 교통사고 특성상 순간의 부주의가 대형 사고로 이어지는 만큼 학부모들의 불안은 커지고 있다.
워킹맘인 이 모(36) 씨는 “큰 사고가 나면 점검이 이뤄지고 대책 마련에 분주하지만 그때뿐인 것 같다”며 “아이들이 타고 내릴 때 서두르지 말고 인솔교사와 통학버스 운전사가 서로 큰 목소리로 소통이라도 잘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영도구에서 아이를 키우는 박재한(35) 씨는 “아무래도 직장인 출퇴근길과 아이들 등하원 시간이 겹치다 보니 위험한 상황이 자주 발생한다”며 “택시나 버스 정류장처럼 아이들이 안전하게 대기하고 타고 내릴 공간이 정책적으로 마련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어린이 통학버스 탑승 자체가 불안해진 부모들은 아이를 직접 등하원시키기도 한다. 6살 아들을 유치원에 등원시키던 양 모(33) 씨는 이날 “최근 통학버스 사고 소식도 계속되고 유치원 근처에서 새로운 공사가 시작돼 불안한 마음에 항상 함께 등원한다”며 “차량에서 타고 내리는 짧은 순간에도 아이들은 언제 어떻게 돌발 행동을 할지 모르는데, 안전수칙만 믿고 마냥 지켜볼 수만은 없다”고 말했다.
20일 부산시와 부산시교육청에 따르면 부산지역에는 어린이집 통학버스 1175대와 유치원 통학버스 591대가 운영되고 있다. 부산시가 어린이집 통학버스를 관리·감독하고 부산시교육청이 유치원 통학버스를 관리·감독하도록 업무가 나뉘어 있다.
부산시와 부산시교육청은 매년 두 차례씩 통학버스 정기점검을 실시한다. 관계당국은 이달 발생한 2건의 어린이 통학버스 사고 이후 부산지역 어린이집과 유치원 등에 등하원 시 안전사고에 유의하라는 협조 공문을 보냈다. 부산시는 하반기 어린이집 통학버스 안전 점검을 강화해 실시하겠다고도 밝혔지만, 현장점검은 전체 통학버스의 20~30% 정도만이 대상이어서 한계가 분명하다. 나머지는 점검표 등을 활용한 어린이집이나 유치원의 자체점검에 의존한다.
전문가들은 지자체의 현장점검이나 안전 교육, 인식 전환 등도 중요하지만 각종 돌발 상황에 따른 어린이 교통사고를 근본적으로 막으려면 기술적 강제 장치가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가천대 허억 안전교육연수원장은 “어린이 교통사고 방지를 위한 다양한 현행 법규가 있지만 운전자가 인간인 이상 실수는 계속 나올 수밖에 없다”며 “운전자의 시야는 한정돼 사각지대가 있을 수밖에 없고 인솔교사가 대체로 1명인 상황에서 여러 명의 아이들을 완벽하게 확인하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허 원장은 “안전 교육, 인식 전환 등을 지속적으로 시행하되 차량의 장치적 개선을 통해 안전 사고를 기술적으로 방지하고, 아이들의 안전을 위한 보조 장치를 도입해 이중 점검을 강화하는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안준영 기자 jyoung@busan.com , 변은샘 기자 iamsam@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