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재파의 생각+] 문해력 논란의 허와 실

부산닷컴 기사퍼가기

동아대 기초교양대학 교수·공모 칼럼니스트

2020년에는 ‘사흘’을 ‘4일’로, 2021년엔 ‘무운(武運)’을 ‘운이 없음’으로 잘못 이해한 데 이어 올해에도 ‘심심(甚深)한’을 ‘지루한’으로 오해한 문해력 저하 논란이 유행처럼 돌아왔다. 특히 올해 문해력 논란은 한글날과 겹치면서 신문·방송 등에서 관련 보도가 어느 때보다 많이 쏟아졌다.

최근 보도된 문해력 논란에 대한 논의 구조는 대체로 먼저 특정 단어를 이해하지 못한 사례를 들어 젊은 세대의 문해력이 떨어지고 있음을 소개한다. 그런 뒤 실질 문맹률이 75%나 된다는 자료를 근거로 문제의 심각성을 강조한다. 마지막으로 그 원인을 진단하고 해법으로 한자 교육과 독서 확대를 제안한다.

젊은 세대 문해력 저하, 근거 없어

사실·의견 식별력 최하위 더 문제

분열 유발 불필요한 논쟁 멈춰야

이러한 논의는 얼핏 타당해 보이지만 상당한 오류를 내포하고 있다. 먼저 특정 단어를 이해하지 못한 사례를 통해 젊은 세대의 문해력이 떨어지고 있음을 지적한 부분을 살펴보자. 문해력 논란에 인용되는 사례들은 어휘력에 해당하기 때문에 이를 근거로 문해력이 떨어졌다고 말하는 것은 곤란하다. 문해력은 몇몇 단어를 알고 모르는 것으로 결정되지 않기 때문이다. 또 일부 댓글을 근거로 해당 세대 모두가 문해력이 떨어졌다고 말하는 것은 일종의 출판편향 오류이자 성급한 일반화이다. 나아가 만약 해당 세대 대부분이 특정 단어의 뜻을 모른다면 이는 언어의 변화로 해석하는 것이 타당하다.

젊은 세대의 문해력이 떨어진다는 근거로 제시된 실질 문맹률 자료도 마찬가지다. 고려대 신지영 교수가 밝힌 바와 같이 해당 자료는 21년 전인 2001년 조사 결과이며, 그마저도 문해력 측정의 한 하위 영역에 관련된 수치다. 따라서 보도에서 인용되는 실질 문맹률 75%라는 자극적 수치는 객관적 근거로서의 지위를 잃었다고 할 수 있다. 문해력과 관련된 다른 자료(국가평생교육진흥원, 2020 성인 문해능력 조사)를 보면 오히려 젊은 세대의 문해력이 기성세대보다 뛰어나다. 국제 기준에서도 젊은 세대의 문해력은 최상위권이지만, 기성세대의 경우 하위권에 속한다(OECD, 2013 국제 성인역량 조사).

마지막으로 문해력 향상의 해법으로 제시하고 있는 한자 교육 실시와 독서 확대는 어떤가. 한자 교육을 해야 한다는 주장은 우리나라 어휘의 70%(필자가 조사한 바에 따르면 표준국어대사전 기준 54%)가 한자어로 이뤄졌으며 한자를 알면 모르는 단어의 의미도 쉽게 유추할 수 있다는 논리이다.

그러나 ‘노래방’, ‘만화방’과 같은 어휘에서 ‘방(房)’을 한자로 인지하지 않고도 의미와 쓰임을 아는 것처럼 대부분 어휘는 한자를 따로 교육할 필요가 없다. 오히려 공교육에서 한자 교육을 실시하거나 교과서 등에 한자를 병기하는 방안은 그 편익에 비해 투입되는 비용과 부작용이 더 크다. 또한 문해력 향상을 위해 독서를 많이 해야 한다는 주장에 이견은 없지만, 젊은 세대가 기성세대보다 독서를 더 많이 하는 현실(문화체육관광부, 2021 국민 독서 실태)에서 기성세대가 젊은 세대에게 문해력 저하를 질타하며 이러한 방안을 제시하는 것은 다소 모순적이다.

문해력은 사전적으로 ‘글을 읽고 이해하는 능력’으로 정의되나, 단순히 문자 해독에 머무르지 않고 다양한 텍스트의 의미를 분석해 비판적으로 읽어 낼 수 있는 능력을 의미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몇몇 단어를 빌미로 문해력 운운하며 특정 세대를 비판하는 것은 객관적이지도, 생산적이지도 않다.

문해력의 본질에 비추어 우리가 주목해야 할 사실은 우리나라 학생들이 ‘사실과 의견을 식별하는 능력’ 평가에서 식별률 25.6%로 최하위 성적을 받았다는 것이다(OECD, 2018 PISA). 텍스트에서 사실과 의견을 식별하지 못한다는 것은 ‘필터 버블(정보 제공자가 선별된 정보만을 제공하는 것)’과 ‘에코 체임버(자신이 선호하는 관점만 소비하는 것)’ 즉 확증 편향에 취약하다는 의미다. 필터 버블과 에코 체임버, 확증 편향은 가짜뉴스에 날개를 달고 건전한 비판과 지성에 기반한 토의를 불가능하게 만든다. 이러한 맥락에서 매리언 울프 교수가 말한 것처럼 문해력 저하는 곧 민주주의 위기로 이어진다.

민주시민의 소양과 역량으로서 문해력은 단순히 국어 시간을 조금 더 늘린다고 향상되지 않는다. 현재의 획일적인 지식 전달 중심, 정답 찾기식의 교육으로는 오히려 문해력을 떨어뜨릴 뿐이다. 문해력은 텍스트를 비판적으로 읽고 사유하며, 자신의 입장과 대척점에 서 있는 사람의 말이라도 경청하고, 논리적으로 토론하는 인문·교양교육을 통해 배양될 수 있다. 지금이라도 문해력을 협소하게 해석하여 사회를 분열시키는 불필요한 논쟁을 멈춰야 한다. 그리고 문해력의 본질적 의미에 대해 고찰하고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 함께 숙의를 시작해야 할 것이다.


당신을 위한 AI 추천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