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설위원의 시선] 이민 사회, 그 명과 암

이병철 논설위원 peter@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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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성이 곧 경쟁력’ 준우승 거머쥔 프랑스 대표팀

프랑스 대표팀 15명 이민자 출신
인종·문화적 다양성 가치 ‘응집’
팀 운용에 폭발적 변화 일으켜
반이민 정서·자국우선주의 자극
극우 정치 부각… 전망은 엇갈려
저출산·고령화로 국가 소멸 위기
동질적 팀 구성 ‘질적 도약’ 한계
외국의 유능한 인력 대거 유치를
체류 외국인 220만 명 다인종 시대
다문화 사회는 대한민국의 현실
국가·민족이라는 틀에서 벗어나야

지난 19일(한국시간) 카타르 루사일 스타디움에서 열린 2022카타르 월드컵 결승전에서 아프리카계가 대부분인 프랑스 대표팀 선수들이 아르헨티나에 승부차기 끝에 패한 후 망연자실한 표정을 짓고 있다. 오른쪽은 프랑스 대표팀 킬리안 음바페가 월드컵 16강에서 팀의 세 번째 골을 넣고 기뻐하는 장면. 연합뉴스 지난 19일(한국시간) 카타르 루사일 스타디움에서 열린 2022카타르 월드컵 결승전에서 아프리카계가 대부분인 프랑스 대표팀 선수들이 아르헨티나에 승부차기 끝에 패한 후 망연자실한 표정을 짓고 있다. 오른쪽은 프랑스 대표팀 킬리안 음바페가 월드컵 16강에서 팀의 세 번째 골을 넣고 기뻐하는 장면. 연합뉴스

유색인 프랑스 월드컵 대표팀 맹활약

2022카타르 월드컵 결승전. 아르헨티나의 우승으로 막을 내렸지만, 반전은 프랑스 킬리안 음바페(파리 생제르맹)의 발에서 시작했다. 끝난 게임이라고 생각한 순간, 음바페가 해트트릭으로 기적적인 반전을 이끌어 승부차기까지 끌고 갔기 때문이다. 까무잡잡한 피부의 음바페는 카메룬 출신 축구 코치였던 아버지와 알제리 출신 핸드볼 선수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이민 2세다.


프랑스 대표팀은 후반 선수를 교체하면서 골키퍼를 빼고는 유색인 선수 10명이 그라운드를 누볐다. ‘무지개 군단’이었다. 프랑스 국가대표 선수 24명 중 18명이 유색인이다. 이 중 13명은 아프리카 이민 2세로 채워져 있다. 부상으로 못 뛴 카림 벤제마도 알제리계다. 선수들 대부분이 프랑스 식민 지배를 받았던 콩고민주공화국, 세네갈, 카메룬, 토고, 말리, 알제리 등 아프리카 출신이다. 경기 직후 월리엄 루토 케냐 대통령은 자신의 SNS에 “아프리카팀(프랑스 대표팀)은 훌륭한 경기를 펼쳤다”면서 아프리카 출신 대표팀 15명의 사진을 게재하기도 했다.

프랑스 인구 구성에서 백인이 80%, 아프리카계가 8% 정도인 점을 감안하면 유색인 선수 비율이 월등히 높다. 프랑스처럼 이민자 후손들과 조화를 이룬 국가의 팀들이 카타르 월드컵에서 눈에 띄었다. 축구의 본향 영국 대표팀과 벨기에 월드컵 대표팀도 아프리카계 이민자 2세 출신들이 맹활약을 펼치고 있다.

이민으로 피지컬 경쟁력 급상승

프랑스 축구는 이민자들로 인해 강해졌다. 국가 대표팀은 선수의 신체적인 한계가 일정해 경기 스타일을 급격하게 바꾸기가 어렵다. 하지만, 프랑스처럼 이민자 출신 선수들로 대표팀이 채워지면서 피지컬이 강해지고, 팀 운용에 폭발적인 변화를 일으킬 수 있다. 이민자 계통 선수의 비율이 높아지는 것은 프랑스에 국한된 현상은 아니지만, 오랫동안 식민지를 운영한 프랑스는 그 역사가 깊다. 이것이 프랑스 대표팀 레 블뢰(파랑을 뜻하는 프랑스 축구 국가대표팀 애칭)에 영향을 끼쳤다.

1958년 레 블뢰가 스웨덴 월드컵에서 3위에 올랐을 때는 폴란드계 레이몽 코파는 최다 어시스트로 발롱도르를 수상했고, 모로코계 스트라이커 쥐스트 퐁텐은 한 대회 최다 13득점을 올리는 기록을 세웠다. 1984년 유럽선수권대회에서 프랑스는 이탈리아계 미셸 플라티니, 말리계 장 티가나, 스페인계 루이스 페르난데스 등을 앞세워 스페인을 물리치고 우승을 차지했다.

1998년 프랑스 자국 월드컵에서 내전(1953년)을 피해 프랑스로 이민한 알제리계 지네딘 지단과 티에리 앙리, 릴리앙 튀랑 등 아프리카계 선수를 대거 앞세워 브라질을 3-0으로 꺾고 우승컵을 들었다. 2018러시아 월드컵에서도 카메룬계 사뮈엘 움티티, 음바페 등 15명의 이민자 가정 출신이 모여 월드컵 우승컵을 거머쥐면서 프랑스 대표팀은 ‘무지개 군단’이란 애칭을 얻었다.

이민, 인구 위기와 경제 침체 해결책

1985년 영국. 저출산과 고령화가 심각해지면서 65세 이상 인구 비중이 15%에 이를 정도로 늙어 갔다. 유럽에서 핀란드에 이어 두 번째로 늙은 나라였지만, 지금은 유럽에서 네 번째 젊은 나라로 탈바꿈했다. 과감한 이민 수용 정책이 주효했다. 분야별 전문성 등 요건을 갖춘 외국인을 적극적으로 수용하는 이민 정책으로 경제활동인구가 25%가량 더 늘어났기 때문이다. 저출산과 인구 감소가 심각하지 않은 유럽과 미국,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 등 국가의 공통점도 이민을 꾸준하게 받아들이고 있다는 점이다.

하지만, 순혈주의 울타리에 스스로를 가두고 있는 한국과 일본 등은 인구 감소의 위기에 허덕이고 있다. 대한민국 총인구는 2021년 5173만 8000명으로 1년 전보다 9만 1000명(-0.2%) 감소했다. 정부 수립 이후 처음이다. 2050년에는 노인 인구 비중이 40%대로 늘고 생산가능 인구는 절반으로 줄어든다고 예측했다. 심각한 국가 재난 사태를 맞게 된다. 근본 원인은 역대 최저 수치인 합계출산율 0.81명인 저출산 탓이다.

옥스퍼드대 데이비드 콜먼 교수는 “대한민국이 저출산으로 인한 인구소멸 1호 국가가 될 것”이라고 예측했다. 인구 소멸은 다름 아닌 국가의 소멸이다.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도 최근 트윗에서 “한국과 홍콩이 세계에서 가장 빠른 인구 붕괴를 겪고 있다”면서 “한국은 현재 출산율이 유지된다면 3세대 안에 인구가 현재의 6% 이하 수준으로 급감하고 대다수가 60대 이상이 될 것”이라고 경고했을 정도다.

다문화사회에 접어든 대한민국

한국도 프랑스 대표팀처럼 보다 강해지고, 지속적인 성장 동력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출산 장려 등과 함께 외국인 이민을 대폭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다. 이민을 인구 감소와 우수한 인력 확보 대안으로 활용해야 한다는 지적은 끊이지 않았다. 한국과 비슷한 일본은 향후 50년 이내에 1000만 명의 이민을 받아들인다는 정책을 공식화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총인구 중 이민 배경 인구가 4.3%에 육박해 사실상 다문화 국가이다. 일부 지자체에선 15% 수준에 이르면서 사실상 다문화·다민족 국가다. 다문화 학생도 16만 명으로, 초등학생이 70%, 중학생 21%, 고등학생 9% 순(2022년 청소년 통계)이다. 우리나라 초·중·고교 전체 학생 수는 감소했지만, 다문화 학생 수는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는 경향을 보인다. 이민 온 외국인 배우자들과 자녀들이 인구 유지에 기여하고 있는 셈이다. 실제로 최근 10쌍 중 1쌍은 외국인과의 결혼이고, 농촌의 경우는 절반까지 이르기도 한다. 우리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 다민족, 다인종 사회로 접어들었음을 인정해야 한다.

문화적 정치적 포용 가능성은

만약 월드컵 한·일전 대표팀에 프랑스와 같은 이민자 위주로 선수가 채워진다면 국민은 어떤 반응을 보일까? 여전히 단일 민족 신화에 빠져, 단일 민족 팀을 구성하고 있는 한국과 일본에서 이를 정서적으로 수용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또한, 이슬람권 이민자 가정 출신 학생들이 소속된 학교의 단체급식에서 돼지고기를 두껍게 썰어 넣은 김치찌개나 부대찌개를 일률적으로 배식하지 못하는 기본적인 불편함부터 빈곤과 양극화 등 이민 선진국에서 벌어지는 각종 문제를 어떻게 대응할지는 미리부터 고민해야 할 과제다.

실제로 2018년 제주도의 예멘 난민 신청에서 보여 준 사회 혼란, 대구 이슬람 사원 건설 현장 ‘삶은 돼지머리 사건’ 등을 떠올리면 갈 길은 멀고 험하기만 하다. 무엇보다 단일 민족이라는 폐쇄적 대외관을 극복하는 것이 급선무이다.

하지만, 프랑스 레 블뢰처럼 우수한 이민자층을 수용할 경우 사회의 다양성과 전문성 확대, 국가 운용 능력 전반에 큰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점은 분명하다. 국가나 사회, 조직이 우수한 성과를 내기 위해서는 다양한 배경을 갖춘 구성원이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다양성이 능력을 이긴다’는 조직 원리 때문이다.

프랑스에서 오랫동안 연구 활동을 한 부경대 국제지역학부 안상욱 교수는 “프랑스 극우 정당 후보가 2022년 대선에서 결선 투표에 올라가는 등 반이민 감정이 고조되면서 언제까지 다인종에 대한 톨레랑스(관용)를 유지할 수 있을지 의문”이라면서 ”이민 사회의 장점과 함께 피로감과 불편함을 극복하고, 함께 살기 위한 다양한 방안을 이제부터라도 찾아야 한다”라고 지적했다.

이병철 논설위원 peter@busan.com


이병철 논설위원 peter@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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