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 비평] '재벌집 막내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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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영호 부산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명예교수

흙수저 복수 드라마, 시대 감수성 자극
현실성·시대정서 담은 게 큰 인기 비결
뉴스는 현실 고발·진단보다 재미 추구
외면받고 사라질 우려 있어 경계해야

지난해 연말에는 모 종편채널에서 방영한 ‘재벌집 막내아들’이라는 드라마가 단연 화제였다. 드라마에서 흙수저 출신의 회사원 윤현우는 출세를 위해 총수 일가의 온갖 궂은일을 뒤처리하며 충성을 다하지만, 죄를 뒤집어쓰고 억울하게 죽음을 당한다. 그리고는 1987년으로 회귀해 자신을 죽인 재벌집의 막내아들로 빙의한 뒤 복수를 하고 재벌 총수가 된다는 그런 내용이다. 전체적인 이야기 구조는 현실성과 거리가 먼 황당무계한 판타지라고 봐도 무방하다. 그런데 모든 드라마가 그렇듯이 이 드라마는 순수한 허구이면서도 현실성의 요소도 갖고 있다.


이 드라마는 계층 간 갈등과 분노, 흙수저의 복수극을 소재로 다뤘다는 점에서 정치적 폭발성을 매우 강하게 안고 있다. 상당히 어두운 내용인데도 이례적으로 높은 시청률을 기록한 것을 보면 시청자들의 시대적 감수성을 자극하는 뭔가 있었던 게 틀림없다. 이 정서는 안간힘을 써도 흙수저 신세를 벗어나기 어려운 대다수 보통 사람들의 욕망이나 좌절과 무관하지 않다. 드라마 역시 언뜻 복수극으로 마무리하는 듯하지만, 야망에 초점을 맞추면서 이 정서를 부추긴다. 작품의 전체적인 분위기는 1980년대 중반 화제작인 이현세의 만화 〈공포의 외인구단〉을 연상시킨다. 현실에서는 불가능한 출세의 욕망을 판타지 형식으로나마 실현할 수 있도록 해 주기에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것이다.

이 드라마에서 눈여겨볼 부분은 허구가 갖고 있는 일말의 진실성이다. 드라마와 만화에서는 주인공이 패자에서 승자로, 아니면 현실에서 환상의 세계로 도약할 수 있게 해 주는 극적인 계기가 존재한다. 〈공포의 외인구단〉에서는 어렵긴 하지만, 개연성이 전혀 없지는 않은 ‘지옥 훈련’이라는 시련의 단계가 그 계기 노릇을 한다. 반면에 ‘재벌집 막내아들’에서는 현실성이 전혀 없는 회귀와 환생, 빙의라는 구조를 취하고 있다. 주인공의 야망 달성이 가능했던 것은 막내 손자이긴 해도 재벌집에 태어났을 뿐 아니라 미래에 일어날 일까지 알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의 흙수저가 비록 가상 세계에서나마 복수를 달성할 가능성은 1980년대에 비해 훨씬 더 어려워졌고 지금이 더 절망적인 상황이라는 뜻으로 풀이할 수도 있다. 미래 희망이 보이지 않는 데도 무한 경쟁에 내몰릴 수밖에 없는 ‘3포’(연애·결혼·출산 포기) 세대에게는 공포의 외인구단식 지옥 훈련조차도 환생만큼이나 성공의 수단으로서 그다지 현실성이 없을지도 모른다. 노력이라는 단어에 대해 ‘노오력’이라는 냉소적 표현이 존재하는 걸 보면 이 시대에는 젊은이들이 치열한 무한 경쟁에 뛰어드는 것 역시 성공에 대한 믿음이 있어서가 아니라 달리 대안이 없기 때문이 아닐까? 드라마는 이런 시대정서를 꿰뚫어 본다는 점에서 허구이면서도 완전히 허구인 것 같진 않다.

이 드라마의 호소력은 허구이면서도 끊임없이 실제 현실을 비추어 가면서 묘사한다는 점에도 있다. 드라마 속 인물이나 사건, 심지어 배경 묘사까지도 특정한 재벌가 사례를 연상시킨다. 전생의 주인공 윤현우가 겪은 상황은 극 중의 극단적 설정이 아니라 수많은 흙수저 출신의 직장인이 실제 겪고 있는 일상적 현실이니 충분히 공감할 만하다. 드라마에서 순양그룹 가문의 갑질 행태나 봉건적 가신 관계라든지 정치인, 검사, 언론인들이 재벌과 결탁해 벌이는 추악한 행태는 일반 대중이 상상하는 0.1% 상위층의 세계와 한 치도 어긋나지 않는다. 이 점에서 드라마는 판타지 형식을 띠면서도 마치 다큐멘터리나 시사 보도처럼 대중이 궁금해하는 추악한 현실을 리얼하게 묘사한다. 이 드라마의 재미는 허구이면서도 현실보다 더 리얼한 허구라는 이중성에 있다.

드라마가 끝나고 채널을 돌리니 정치뉴스가 나오고 있었다. 그런데 뉴스에서는 한국 사회가 당면한 시급한 현안은 어디 가고 온통 ‘그들만의’ 말장난과 싸움질로 넘쳐 난다. 현실을 생생하게 고발하고 진단해 보도해야 할 뉴스는 재미만 추구하는 개그나 막장 드라마로 변질하고 있다. 아니면 첨예한 사회적 이슈가 불거질 때마다 대중의 관심사를 포착해 예리하게 파고들기보다는 부와 권력을 가진 자에 대한 낯 뜨거운 용비어천가만 불러 대는 것을 보고 있자니 홍보자료인지 기사인지 종종 헷갈리기도 한다.

어떤 면에서는 허구에 불과한 드라마가 이 시대의 모순투성이 현실과 보통 사람들의 정서를 더 잘 읽어 내 생생하게 전하고 있다. 드라마는 현실의 변화를 빠르게 반영하면서 대중의 갈채를 받고, 뉴스는 보는 사람도 많지 않은 ‘삼류 소설이나 쓰는’ 이러한 역할 전도는 뭔가 잘못되어도 한참 잘못된 것이다. 이러다가 언젠가 뉴스라는 형태가 사라진다고 해도 아쉬워하며 눈물을 흘릴 사람이 얼마나 남아 있을지 우려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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