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필남의 영화세상] 영화, 절대 망하지 않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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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평론가

영화 ‘바빌론’ 스틸 컷. 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영화 ‘바빌론’ 스틸 컷. 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코로나19로 격리와 해제가 반복되는 사이, 극장에서 영화를 보는 건 의미가 없어졌다는 기사들이 쏟아져 나왔다. 실제 코로나로 극장에 가는 관객이 줄어들었고, 제작자는 개봉을 미루거나 OTT 공개로 방향을 선회하는 선택을 하기도 했다. 함께 영화 보기가 불가능해지자 OTT 구독자는 점점 늘어났고, 극장에서 영화를 보지 않아도 충분히 영화를 즐길 수 있는 시대가 열린 것처럼 보였다.

그래서 정말 찬란했던 극장의 영광은 사라졌을까? 영화는 그 어떤 예술보다 늦게 탄생했지만, 대중이 원하는 바를 빠르게 알아차렸고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았다. 아니 기술의 발전에 발맞춰 영화를 경험하는 방법도 다양해지는 등 어떤 예술보다 눈부시게 진화했다. 동시에 영화는 가장 대중 친화적인 예술이 되었다.

영화 역사 영화적으로 접근한 ‘바빌론’

1920~1950년대 할리우드 민낯 그려

시대 변화 맞는 배우와 영화인 이야기

영화의 의미 되새기려 고전 영화 활용

미국 상업 영화 태동기와 부흥기를 소재로 영화사를 과감히 그려내면서 영화가 무엇인가를, 영화적으로 접근하는 작품이 바로 ‘바빌론’이다. 그것도 영화사 시간에나 배움직한 이야기를 3시간가량의 러닝 타임 동안 영화라는 매체를 빌려 황홀하게 그려낸다. 한시도 스크린에서 눈을 뗄 수 없게 만드는 인물들과 섬세한 미장센, 강렬한 음악을 통해 급변하는 영화의 시간을 말한다. 영화를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이 영화의 매력에 빠지지 않고는 견딜 수 없어 보인다.

인상적이고 자극적인 오프닝 시퀀스를 지나면 영화의 제목이 왜 ‘바빌론’인지 알 수 있다. 화려했지만 타락했던 도시 바빌론. 성경에서 이 도시는 온갖 죄악의 상징이자 타락한 인간상을 투사한 곳으로 묘사한다. 그리고 바빌론을 닮은 할리우드와 그 속에서 살아가는 스타들. 예술 및 실험 정신이 빛났던 유럽 영화들과 달리 할리우드는 대중문화 산업을 이끌어간다. ‘바빌론’은 바로 무성영화에서 유성영화로 교체되는 1920년대부터 1950년대까지를 시대 배경으로 삼으며 할리우드의 민낯을 그려낸다.

무성영화 시대를 대표하는 슈퍼스타 잭 콘래드, 야성의 매력이 넘치는 신인배우 넬리 라로이, 영화 일을 하고 싶은 멕시코 청년 매니 토레스 그리고 흑인 트럼펫 연주자 시드니 팔머의 이야기를 통해 할리우드의 낭만과 비극, 타락과 광기를 오간다. 하지만 영원히 빛나는 별이 없듯이, 영화 속 한 시대를 풍미했던 별들은 ‘자신의 목소리’로 연기를 해야 하는 순간이 도래하자 모든 것이 바뀐다. 브래드 피트가 연기한 존 콘래드는 유성영화 시대가 시작되면서 퇴물 취급을 받자 극 중 영화평론가를 만나 따진다. 평론가는 “당신의 시대는 갔지만, 당신의 재능으로 빚은 영화는 천사의 영혼처럼 영원히 살아 있을 것”이라는 의미심장한 말을 던진다.

기술이 발전하고 새로운 이야기가 넘쳐남에도 우리는 언제 어디서든 영화를 즐긴다. 그 속에서 영원히 살아있는 스타들, 영화 산업이 만들어내는 환상을 보며 달콤한 미래를 꿈꾼다. 할리우드를 떠났던 매니는 시간이 흐른 후 극장에 앉아 영화 ‘사랑은 비를 타고’를 보며 눈물을 흘린다. 그가 본 것은 한 편의 영화가 아니라, 그가 보냈던 화려하고 위험천만한 바빌론, 그 속에 살았던 스타들과 할리우드를 꿈꾸었던 자신의 모습이었을 것이다. 한 시대가 끝나도 영화는 남아 매니의 마음을 울린 것이다. 그리고 이 엔딩은 영화 ‘시네마 천국’을 오마주하며 영화란 무엇인지 생각하게 만든다.

데이미언 셔젤 감독은 ‘라라랜드’로 배우를 꿈꾼 여성과 재즈를 사랑한 남성의 열정과 사랑을 그렸다면, 이번 영화는 할리우드의 역사와 영화를 사랑하는 감독의 마음을 드러낸다. 또한 코로나로 힘을 잃어가는 극장에서 ‘다시’ 영화를 체험하는 행위가 무엇인지 전한다. 별이 져도 영화가 사라지지 않는 것처럼 영화 혹은 극장도 시대와 상황에 맞게 변모한다. 상황이 이러한데 극장이 사라질지도 모른다는 말은 영화를 진정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의 한심한 소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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