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국에서] 지하철 적자를 노인 탓으로 모는 나라

이현우 기자 hooree@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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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우 신문센터장

노인 지하철 무임승차 논란 확대
‘공짜 수송’ 주된 적자 요인 지목

부산·서울 등 지하철 운영 적자는
낮은 운임 구조가 근본 원인 분석

방만 경영 등 문제 외면한 채
노인 세대 애물단지 취급해서야

지하철 적자가 노인 탓이라고 한다. 참 수월한 논리다. 거대 공기업들의 적자 요인을 이렇게 단순하게 요약하는 용기가 놀랍다. 노인들 마음은 어떨까. 졸지에 애물단지 신세로 전락한 듯한 상황이 달가울 리 없다. 한쪽으론 사회에 부담을 준다는 자책감에 모두가 속으로만 끙끙 앓는 건 아닐까 싶다.

부산도시철도 2021년 당기순손실은 1948억 원이었다. 그해 노인 승객을 위한 무임수송비는 1090억 원으로 집계됐다. 부산교통공사는 이를 ‘무임손실액’으로 잡아 전체 손실의 56%를 차지한다고 설명한다. 만 65세 이상 노인들을 공짜로 태워주는 게 적자의 가장 큰 요인이라는 변명이다. 서울도 엇비슷하다. 서울지하철을 운영하는 서울교통공사의 2021년 영업손실은 9385억 원이다. 그해 노인 무임수송비는 2311억 원이다. 같은 논리를 들이대면 노인 무임수송비가 서울지하철 전체 영업손실의 24%가량을 차지한다. 2021년 국내 6개 도시 지하철 전체 무임수송비 규모는 4717억 원에 이른다. 65세 이상 노인 지하철 무임승차 논란은 국내 지하철의 만성적 적자구조에서 비롯됐다. 부산교통공사, 서울교통공사 등이 운영하는 각 도시 지하철은 엄청난 규모의 적자에서 헤어나지 못한다. 부산교통공사 올해 적자 규모는 1365억 원에 달할 것으로 부산시는 추정한다. 서울교통공사 총 누적 적자는 17조 원에 달한다.

국내 지하철은 수익 구조가 열악하다. 건설비는 어마어마한데도 상대적으로 낮은 운임 체계를 유지해 적자가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 우리와 경제적 수준이 비슷한 외국을 다녀봤다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우리만큼 지하철과 시내버스 등 대중교통 요금이 저렴한 선진국은 흔하지 않다. 그래서 ‘대중교통 천국’이라 불리기도 한다. 국민 편의와 교통복지를 위해 우리 사회가 태생적 적자 구조의 지하철 시스템을 ‘채택’한 것이다. 그런데도 지방자치단체와 교통공사들은 만만한 노인만 물고 늘어지며 적자 타령이다. 노인 무임승차가 지하철 적자의 주범인양 떠든다. 그렇다면 노인에게 요금을 꼬박꼬박 다 받는 시내버스 적자는 어떻게 설명할 수 있나. 준공영제인 부산 시내버스는 무임승차 제도가 없는데도 만성 적자에 허덕인다. 결손액 보전을 위해 해마다 거액의 혈세가 시내버스 업계에 지원된다.

사회적 약자인 노인이 타깃이 된 듯하다. 정부와 지자체 등은 구조적 요인은 깊숙이 숨겨 놓고 약한 고리만 들춘다. 저렴한 요금 체계, 공기업의 방만 경영, 인구 구조 변화 등이 지하철 적자에 더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지하철 운영 적자는 무임승차 제도로 인한 손실이 원인이 아니라는 한국교통연구원 보고서도 있다. 수송원가에 비해 낮은 운임을 징수하는 구조가 근본 원인이라는 분석이다. 하지만 누구도 이 같은 근원적 문제에는 관심을 크게 두지 않는 듯하다. 말 없는 노인들만 억울한 노릇이다.

노인 무임승차 논란은 어제오늘 이야기도 아니다. 폐지 또는 축소 시도가 여러 차례 있었지만 번번이 퇴짜 맞았다. 부산교통공사 등 전국도시철도운영기관은 2005년 무임수송비용 관련 법률 개정을 국회에 건의하기도 했다. 당시 노약자 ‘무임우대권’ 폐지 시도는 무위에 그쳤다. 노약자에 대한 사회적 책임 회피로 지하철 공공성 훼손이 우려된다는 여론이 높았던 까닭이다. 2010년 이명박 정부의 김황식 국무총리는 노인 지하철 무임승차를 ‘과잉 복지’라고 말했다가 엄청난 역풍을 맞았다. 김 총리는 결국 사과로 꼬리를 내리고 말았다.

부산도시철도를 타면 노인이 유독 많은 건 사실이다. 국내 지하철 무임승차 비율을 살펴보면 부산이 광주 다음으로 높다. 부산도시철도 이용객의 60%가량이 65세 이상이다. 그런데 부산도시철도 무임승차 비율이 높은 것도 노인들 탓은 아니다. 수도권 초집중화로 젊은이들이 왕창 빠져나갔으니 부산에 노인이 많아 보일 수밖에 없다. 지역도 그럭저럭 살 만하던 나라가 어느새 사람과 돈이 모조리 한데 쏠린 ‘서울 공화국’으로 변질돼 버렸다. 통계청 집계 결과 부산에선 지난해 1만 3562명이 다른 지역으로 순유출됐다. 이 가운데 1만 2317명이 서울(7885명)과 경기도(4432명)로 떠났다. 부산 순유출 인구의 91%가 수도권으로 쏠린 것이다. 수도권 일극화로 지역은 빈사 상태다. 나라가 이 지경에 이른 건 노인들만이 아닌 모두의 책임이다.

노인 세대가 요즘 무척 쓸쓸해 보인다. 한때 고도 성장기 산업화의 역군이었던 그들이다. 선진국 기틀을 닦은 한 시대 주역들을 성가신 짐짝 취급하는 건 몹시 무례한 태도다. 대한민국을 오늘의 모습으로 키운 노인들은 무임승차를 누려 마땅하다. 그들의 피와 땀으로 일군 선진국에 우리가 무임승차한 건 아닌가부터 따져 보자.


이현우 기자 hooree@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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