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석 분분한 ‘논란의 2표’… 복잡한 민주 내부 상황 ‘투영’

전창훈 기자 jch@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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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독 어려워 개표 80분 지연
“지도부에 불만 표출” 분석도
“의도적 무효표면 집에 가야”
강성 지지파 ‘낙인 찍기’ 나서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28일 학교 급식실 노동자 폐암 진단과 관련해 서울의 한 초등학교 조리실을 둘러보고 있다. 연합뉴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28일 학교 급식실 노동자 폐암 진단과 관련해 서울의 한 초등학교 조리실을 둘러보고 있다. 연합뉴스

더불어민주당 지도부의 “압도적 부결” 공언에도 대규모 이탈표가 발생한 이재명 대표 체포동의안 표결의 여파가 28일에도 정치권에 파장을 낳고 있다. 특히 전날 체포동의안 개표를 80분가량 지연시킨 2장의 기표용지와 기권·무효표를 두고 해석이 분분하다. ‘부’자를 쓴 듯 하지만 해석의 혼선을 빚을 정도로 명확치 않게 표기한 그 두 표에 민주당의 척박한 당내 현실이 녹아 있다는 시각도 있다.

체포동의안 기표용지에는 의원들이 직접 손으로 ‘가’(可·가결) 혹은 ‘부’(否·부결)를 적어야 하는데, 문제의 표에는 ‘부’ 또는 ‘무’로 보이는 글씨가 쓰여 있어 ‘부결’인지 ‘무효’인지를 두고 논란이 일었다. 국민의힘 감표 위원들은 “둘 다 무효표”라고 주장한 반면 민주당 감표 위원들은 “부결표”라며 맞섰다. 결국 김진표 국회의장이 한 표는 부표로, 한 표는 무효표로 분류해 체포동의안은 ‘가(찬성) 139표, 부(반대) 138표, 기권 9표, 무효 11표’로 부결됐다.


해당 표는 육안으로 보면 부표로 볼 여지가 다분하다. 표결용지에 ‘가·부란’으로 써 있어 글자를 착각할 가능성이 거의 없고, ‘ㅜ’로 보이는 모음이 아래에 있어 ‘가’로는 볼 수 없기 때문이다. 결국 부표를 했지만 내키지 않는다는 심리가 흐릿한 글자에 반영된 것 아니냐는 해석이 나온다. 민주당 출신으로 강성 친명(친이재명)계인 무소속 민형배 의원은 이날 페이스북에 해당 기표용지 사진을 올리면서 '흘려 쓴 ‘부’자가 원래 자신의 필체가 아니라 의도적인 무효표 논란을 불러일으키기 위한 것이었다면 그 의원은 제 발로 걸어 나가 집을 향하는 게 어떨까'라고 분노를 표출했다.

기권·무효표에 대해서도 검찰의 무리한 수사라는 시각과 지도부에 대한 불만이 뒤섞인 결과라는 해석이 나온다. 당내 비주류인 비명계가 체포동의안에 대해 부결은 해 주지만 이 대표와 당 지도부에 대한 불만은 드러내야 하겠다는 복잡한 속내가 담겼다는 것이다.

비명(비이재명)계나 당내 중도층에서는 이 대표에 반하는 어떤 정치적 행보나 발언도 강성 지지층인 이른바 ‘개딸’에 의해 ‘수박’(겉과 속이 다르다는 의미의 은어)으로 불리며 척결 대상이 되는 당 상황에서 일종의 정치적 저항을 한 것이라고 본다. 이번 체포동의안의 경우, 이 대표의 정치 생명을 좌우할 사안이라는 점에서 그 어느 때보다 강성 지지층의 거센 반발이 자명했기 때문이다.

실제 표결 직후부터 트위터 등에는 ‘다음 총선 퇴출 대상’이라는 문구와 함께 과거 이 대표를 겨냥하거나 당내 반발을 보였던 수십 명 의원의 명단이 ‘살생부’로 공유되고 있다. 이 명단에는 조응천·박용진·이상민·이원욱 등 비명계 또는 친문(문재인)계 의원이 대부분이지만, 친명계 원내대표 후보군으로 분류되는 의원의 이름도 올라 있는 등 상당히 자의적이다. 표결 내용에 분노한 강성 지지층이 ‘친명 핵심’이 아닌 경우 대부분 ‘수박’으로 ‘낙인 찍기’를 하고 있는 셈이다.

이들은 또 명단의 의원들에게 문자와 전화를 통해 무기명 표결 내용을 공개하라고 압박하고, 일부 의원은 ‘부표를 던졌다’고 읍소하는 상황도 나타나고 있다. 헌법상 독립기관인 국회의원 개인의 양심의 자유, 표결의 자유가 심대하게 침해되는 상황이지만, 친명계는 이를 방관하거나 오히려 조장하는 모습이다. 민주당이 겉으로는 단일대오를 외치지만 안으로는 갈등이 곪아가는 상황은 더욱 악화될 공산이 크다.

이상민 민주당 의원은 이날 한 라디오 인터뷰에서 “이 대표의 지지자들이 저한테도 ‘찬성한 것이 너지’, ‘가만히 안 두겠다’, ‘색출하겠다’ 등의 문자를 보내고 있다”면서 “이런 것들이 확대, 재생산될 경우 결코 아름다운 치열한 논쟁이 되는 것이 아니라 저급한 싸움으로 치닫게 된다. 대오각성하고 개과천선하지 않으면 더 큰 화를 맞이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당의 한 원로도 “이 대표가 정말 당을 생각한다면 이런 행태를 방치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전창훈 기자 jch@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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