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킹차갓산직’ 지원서 쓰다 보니 없던 마음도 ‘드릉드릉’ [MZ 편집국]

김동우 기자 friend@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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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Z 편집국] 현대차 생산직 지원해 보니

고연봉·워라밸 보장에 지원 몰려
자소서 공략 영상 높은 조회 수
관련 경력 없이 작성도 쉽지 않아
공무원·대기업 현직자도 큰 관심

지난달 19일 부산 부산진구의 한 서점 별도 매대에 ‘현대자동차 생산직’ 필기시험 대비용 수험서가 여러 종 비치돼 있다. 김동우 기자 friend@ 지난달 19일 부산 부산진구의 한 서점 별도 매대에 ‘현대자동차 생산직’ 필기시험 대비용 수험서가 여러 종 비치돼 있다. 김동우 기자 friend@

“선발인원 제한으로 금번 전형에서는 합격하지 못하였음을 알려 드립니다.” 지난달 29일 현대자동차 생산직 공채 서류전형 결과가 발표됐다. 기자는 지난달 12일 직접 입사 지원서를 썼다. 현직자를 비롯한 구직자들이 ‘킹차갓산직’(현대차 생산직)에 열광하는 현상을 취재하기 위해서였다.

■700자 채우기도 쉽지 않네

그날 오후 편집국 데스크탑 앞에 앉아 채용 공고를 살펴보고 있었다. 괜히 눈치가 보여 누군가 내 뒤로 지나갈 때마다 황급히 ‘Alt+Tab’ 자판 키를 눌러 화면을 전환했다.

첫 문항부터 막혔다. ‘자신이 모빌리티 기술인력이라고 생각하는 이유와 남들과 차별화된 본인만의 강점을 기술해 주십시오.’ 700자라는 비교적 짧은 분량을 요구했다. 하지만 자동차 산업, 모빌리티 기술과 관련된 별다른 경험이나 경력이 없는 기자로서는 ‘쓸 말’을 찾기 어려웠다.

유튜브에는 문항별 해설과 공략법 등이 올라와 있었다. 자기소개서 작성 요령을 가르치는 영상 속 강사는 전기차 생산, 자율주행 등 자동차 산업 전반의 구조와 경향을 파악하고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접근 방식 역시 생산직 경력 유무에 따라 달랐다. 기자처럼 관련 경력이 없다면 다른 직군에서 업무를 수행하는 과정에서 얻은 경험 등이 생산직군과 어떤 접점이 있는지를 부각하라고 조언했다.1년 3개월 남짓 짧은 언론사 생활이 경력의 대부분인 기자로서는 들어도 난감한 설명이었다. 고민 끝에 첫 문장을 적었다. “매일 정해진 시간 안에 발제와 취재, 기사 작성 등을 거쳐 뉴스 콘텐츠를 ‘생산’했고 지금도 지면을 ‘제작’하고 있습니다.” 마감 시간 직전에 지원서를 겨우 제출할 수 있었다.

지원자들의 관심을 반영하듯 관련 영상의 조회수는 수만 건에 달했다. 한 이용자는 “현직 공무원인데 공무원 재직 중이라고 자소서에 적어도 무관할까요?”라고 물었고 “지역은 밝히지 말고 공직 생활 정도로 표현하라”는 답이 달렸다.

■“휴가라도 마음 편히 쓸 수 있다면”

직장인 커뮤니티에도 현대차 생산직 지원을 고려한다는 글이 많았다. ‘좋은 직장’으로 꼽히는 대기업이나 공공기관에서 일하는 이들도 적지 않았다. 7급 공무원과 현대차 생산직 중 어디를 더 선호하는지 투표로 묻는 글에서는 응답자 4000여 명 중 생산직을 꼽은 사람이 65%를 차지했다. 한 대기업 재직자는 “칼퇴근해서 편하게 산책하는 생활만 되면 자식에게도 권한다. 그리고 제발 퇴근하면 카톡 좀 하지 마라”고 전했다.

또래 직장인들의 생각도 비슷했다. 이직을 고민하는 이유로 끊임없이 눈치를 봐야 하는 조직 문화를 꼽은 이들이 많았다. 물류 업계에서 일하고 있는 민 모(36) 씨는 “중소기업에서는 인력이 적어 업무 부담이 크고 동료 눈치를 보느라 휴가도 쓰기 어렵다”며 “대기업 생산직은 적어도 그런 문제에서 자유로울 것 같다”고 말했다.

기자도 업무의 특성 탓에 취재원들과 퇴근 후에도 이어지는 술자리를 피하기 어려웠다. 회식마저 자주 잡히면서 술을 잘 마시지 못하는 기자로서는 버거웠던 기억이 앞선다. 술자리도 일의 일부고, 취재원들과 좋은 관계를 형성해 정보를 얻는 것이 여전히 장려되는 게 ‘업계 문화’다. 이런 문화가 앞으로도 과연 통할지, 새롭게 직장에 들어올 세대에게도 받아들여질지는 미지수다.

성과와 업무 강도의 압박을 토로하는 이들도 있었다. 3년 차 은행원 김원진(32) 씨는 “슬슬 실적에 대한 압박감이 드는데, 생산직은 그런 부담이 덜해 보인다”고 밝혔다. 김 씨의 말을 들으니 출입처의 다른 매체 기자가 ‘단독 기사’를 써서 ‘낙종’했던 날의 기억이 스쳐 지나갔다. 특별한 실적만이 아니다. 매일 기사를 마감하고도 다음 날 기삿거리를 찾지 못해 퇴근 후에도 쉽게 집으로 가지 못했던 날들이 떠오르자 서류 탈락이 비로소 아쉽게 다가왔다.

이들은 임금이 다소 적어도 적성과 흥미를 살려 일할 수 있다면, 주 4일제처럼 일과 삶의 균형을 이룰 수 있는 여건이라면, 쉽게 이직을 결심하지 않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수많은 현직자의 밤잠을 설치게 했던 현대차 생산직 지원 대란은 MZ세대 직장인들의 평범하지만 소중한 고민을 담고 있었다.


김동우 기자 friend@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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