묻지 마 범죄 당해도 가해자 묻지 말라는 법

안준영 기자 jyoung@busan.com , 변은샘 기자 iamsam@busan.com , 양보원 기자 bogiza@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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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면 돌려차기 등 흉악 범행에도
검·경·법원, 알 권리 철저히 외면
피해자는 증거물조차 얻지 못 해
소송 도중 가해자에 신분 노출돼
보복 두려움까지 고스란히 떠안아

지난해 5월 부산 서면 오피스텔 공동현관에서 귀가하던 20대 여성을 아무런 이유도 없이 무차별 폭행한 30대 남성의 모습. 피해자 측은 당시 가해 남성이 CCTV 사각지대로 끌고 가 성범죄를 저지른 것으로 보고 있다. 피해자 측 제공 지난해 5월 부산 서면 오피스텔 공동현관에서 귀가하던 20대 여성을 아무런 이유도 없이 무차별 폭행한 30대 남성의 모습. 피해자 측은 당시 가해 남성이 CCTV 사각지대로 끌고 가 성범죄를 저지른 것으로 보고 있다. 피해자 측 제공

부산 서면 한복판에서 일면식도 없는 남성에게 무차별 폭행을 당한 이른바 ‘부산 돌려차기’ 사건은 피해 여성이 폭행 장면이 담긴 충격적인 CCTV 영상을 공개하면서 국민적 관심을 모으기 시작했다. 이후 가해자가 CCTV 사각지대에서 성범죄가 아닌 ‘나름의 구호 활동을 했다’고 주장하고, 범행 직후 ‘서면 강간’ ‘강간 살인’ 등을 검색한 휴대폰 포렌식 기록이 있다는 사실 등이 알려지며 공분에 불을 붙였다.


이는 피해자가 지난 1년간 생업을 뒤로한 채 오로지 사건 규명에만 천착해 수사기관으로부터 겨우 얻어 낸 증거다. 첫 폭행의 충격으로 ‘해리성 기억상실장애’를 겪은 피해자는 그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누가 그에게 이런 일을 저질렀는지를 알기 위해 꼬박 1년이라는 세월을 바쳤다.

심지어 피해 여성은 개인정보가 가해자에게 넘어갈 위험을 떠안으면서 민사로 손해배상소송까지 제기해야만 했다. 경찰과 검찰, 법원에 이르는 전 과정에서 피해자는 항상 제3자였고, 피해자의 ‘알 권리’는 철저히 외면당했기 때문이다. 이런 지난한 과정 끝에 결국 피해자의 정보는 가해자의 손에 넘어갔고, 피해 여성은 보복 범죄의 공포로 밤낮없이 두려움에 떨고 있는 실정이다.

돌려차기 사건과 흡사한 구조의 무차별 폭행 사건이 지난달 18일 부산에서 또 일어났다. 동구 초량동의 한 노래주점을 찾은 50대 남성은 혼자 있던 60대 여성 점주를 무자비하게 폭행했다.

폭행 장소는 CCTV 사각지대인 화장실 앞이었다. 피해 여성은 큰 충격으로 사건 당시 상황을 정확히 기억하지 못한다. 응급실에 입원한 피해자에게 가해자의 일행 중 한 사람이 전화를 걸었고, 경찰에게는 피해자 딸의 연락처를 묻기도 했다. 피해 모녀는 보복 범죄의 두려움에 생업이었던 노래주점을 접어야 할 처지지만, 가해자에 대한 정보는 아무것도 갖고 있지 않다.

심지어 지난달 부산 영도구 어린이보호구역에서 대형 화물에 부딪혀 숨진 10세 여아의 아버지도 “개인정보 보호를 이유로 업체명은 물론 CCTV도 보여 주지 않는다”며 분통을 터뜨렸다.

피해자의 알 권리가 배제되면서 가해자를 향한 피해자의 공포와 두려움은 더욱 커진다.

수사기관은 피의자 신분으로 조사하고 있다면서 가해자의 사생활은 보호돼야 한다는 입장이지만 이미 일상에서 자유와 인격권을 짓밟힌 피해자는 답답함과 억울함을 호소한다.

전문가들은 진정한 ‘회복적 사법’을 위해서는 피의자의 정보 보호보다는 피해자의 알 권리가 우선돼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한국이 사법 체계를 모방해 온 미국 등 선진국에서는 ‘피해자통지시스템’을 통해 피해자가 원하는 수준의 정보를 원하는 때에 제공하고 있다.

이에 〈부산일보〉 취재팀은 부산 돌려차기 사건과 초량동 노래주점 폭행 사건을 촘촘히 되짚어 보고, 사건 이후 홀로 남겨진 피해자의 목소리와 현행 사법 체계의 문제점, 대안과 해외사례 등을 상중하 3차례에 걸쳐 전하고자 한다.

“정보의 무지 속에 제3자로 남겨지는 피해자가 더 이상 나오지 않길 바란다”는 목소리가 실질적인 변화를 이끌어 낼 수 있도록 힘을 보태고자 한다.



안준영 기자 jyoung@busan.com , 변은샘 기자 iamsam@busan.com , 양보원 기자 bogiza@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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