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복도로 ‘골병’ 보행권…‘수직형 교통수단’ 통해 불편 줄이고 문화적 원형 살려야
영도구청, 장미계단길 정비 완료
고령자 혼자 걷기 힘든 높이 낮춰
서구도 손질 시급 계단 1800개
개선 사업 후 편의성은 늘지만
골목길 가진 역사성 훼손 딜레마
폐가 활용·경사형 E/V 대안 부상
걷기 불편한 부산 산복도로의 특성은 그동안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졌다. 가파른 공간에 오래된 생활 공간이다 보니, 길들은 좁고 꼬불꼬불할 수밖에 없었다. 오히려 산업화 초기 도시의 원형을 유지한 덕에 산복도로는 이색적인 공간으로 대중의 관심을 받고 관광상품으로 가능성을 확인했다. 하지만 걷기 불편한 길을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동안 정작 산복도로에서 생활하는 주민들의 불편은 무시돼왔다.
■현황 파악도 안 된 가파른 계단 길
22일 영도구청에 따르면, 구청은 지난달 26일 봉래동 길이 17m의 장미계단길 전체 계단 개수를 60개에서 80개로 늘리는 정비 사업을 완료했다. ‘주택건설기준 등에 관한 규정’에 따르면 공동으로 사용하는 계단의 경우 단 높이는 18cm 이하, 단 너비(발 딛는 곳)는 26cm 이상, 유효 폭(가로)은 120cm 이상이어야 한다. 옛 장미계단길의 단 높이는 평균 25cm나 됐다. 그나마도 계단 크기가 들쭉날쭉해, 계단 높이가 45cm나 되는 곳도 있었다. 고령자 등은 혼자서는 오르기 힘든 수준의 높이다. 이에 구청은 계단 개수를 늘려 평균 간격을 18cm 수준으로 조정했다.
평소 장미계단길을 사용하는 동네 주민 김둘남(75) 씨는 “다른 길로 둘러갈 때도 많았고, 인근에 사는 어떤 할머니는 팔로 계단을 짚고 기어 올라가기도 했다”며 “계단 정비 이후 집에 오가는 게 너무 편해졌다”고 말했다.
걷기 힘든 계단 문제는 산복도로를 품은 원도심 지자체의 공통 문제지만, 그동안은 지자체 관심 밖에 있었다. 민원이 들어오면 담당 공무원이 현장을 나가 인근 계단 상태를 파악하는 정도에 그쳤다는 게 일선 구청들의 설명이다.
다만 서구청만이 지난해 9월 ‘관내 계단도로 및 골목길 단계별 정비계획’을 실시해 관내 계단을 전수 조사했다. 조사 결과, 서구에서는 1800여 개의 계단 도로와 골목길이 정비가 필요한 것으로 나타났다. 대부분 계단 간격이 일정하지 않고, 보행이 어려울 정도 간격이 큰 경우였다. 이에 서구청은 5개년 정비계획을 세워 총 48억 6500만 원을 투입해 147개소 계단과 골목길을 정비하기로 했다.
대다수 지자체는 경사로 계단의 문제점에 대해선 전수 조사 없이 민원과 자체 판단으로 정비 사업지를 정하고 있다. 관련 사업을 모두 구비로 충당해야 하기 때문에 예산 확보에 어려움이 따르는 실정이다.
■원형과 이동권을 함께 보장해야
일선 구청이 주도하는 산복도로 계단 개선 사업에 불안한 시선도 상당하다. 기초자치단체의 제한된 예산 탓에 정비 사업이 길의 역사성이나 문화적 가치를 고려하지 않고, 단순히 걷기 편하게 고치는 방향으로만 진행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경우 그동안 산복도로가 간직해 온 도시 원형의 틀이 깨질 수도 있다.
이 때문에 시 차원에서 산복도로의 원형을 유지하면서 동시에 지역 내 이동권을 보장하는 방법을 모색할 필요성이 제기된다. 산복도로 전반의 모습을 지키면서 부분적으로 이동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선, 구 단위를 넘어선 종합 계획이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산복도로 주변으로 늘고 있는 공·폐가를 활용하는 방안도 거론되고 있다. 공·폐가를 이어 새 길을 만들고 옛길을 보존하는 방안이다. 도로를 정비하고 주차 공간을 늘려 차량을 통한 대체 이동권 확보도 꾸준히 제기된 방안이다.
산복도로의 원형을 유지해 관광객 유입을 요구하는 이들도 지역 내 ‘수직형’ 교통수단의 필요성은 인정하고 있다. 위아래로 오가는 이동성이 떨어지다 보니, 관광객 유입과 지역경제 활성화 효과가 떨어진다는 분석이 많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 경사형 엘리베이터 확대가 대안으로 제시된다. 산복도로 모노레일은 잦은 고장으로 철거 예정이지만, 경사형 엘리베이터는 비슷한 구조에도 상대적으로 안정적으로 운영되고 있다.
동아대학교 권태정 도시공학과 교수는 “경사형 엘리베이터 설치 시 지자체가 비용 문제로 어려움을 겪을 순 있지만, 충분한 예산을 확보해 유지관리까지 하면서 주민들의 보행권을 보장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준현 기자 joon@busan.com , 양보원 기자 bogiza@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