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설위원의 뉴스 요리] 고진영·방신실이 우리에게 준 것

임광명 논설위원 kmyim@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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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여자골프의 새로운 스타 방신실
롤 모델로 세계랭킹 1위 고진영 지목
부단한 노력으로 역경 극복, ‘닮은꼴’


방신실이 올해 5월 28일 강원도 원주시 성문안컨트리클럽에서 열린 ‘제11회 E1 채리티 오픈’ 최종라운드에서 우승이 확정되자 환호하고 있다. KLPGA 제공 방신실이 올해 5월 28일 강원도 원주시 성문안컨트리클럽에서 열린 ‘제11회 E1 채리티 오픈’ 최종라운드에서 우승이 확정되자 환호하고 있다. KLPGA 제공

■여자골프계의 새 별

한국 여자골프계에 새 별이 떴다. 300야드를 넘나드는 호쾌한 장타에 주눅 들지 않는 화끈한 플레이, 거기다 대회를 치를수록 성장하는 모습이 확연하다. 신인다운 풋풋함까지 갖추었으니, 골프 치는 사람이라면 반하지 않을 도리가 없다. ‘괴물 신인’ 소리를 듣는 방신실 얘기다. 2004년 생이니 아직 스무 살도 되지 않았다. 이 어린 선수가 드라이버로 300야드를 날린다. 300야드는 남자 프로선수에게도 쉽지 않은 비거리다.

방신실은 지난달 28일 막을 내린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 투어 ‘E1 채리티 오픈’에서 마침내 우승컵을 들어 올렸다. 올해 처음 뛰어든 정규투어에서 다섯 번째 도전 끝에 따낸 성과다. 이 덕에 KLPGA 데뷔 전 740위에 머물렀던 여자골프 세계랭킹이 110위에 올랐다. 기세가 대단하다. 한때 세계 최강을 자부하다 근래 극심한 부진에 빠진 한국 여자골프다. 골프팬들은 이런 침체된 분위기를 바꿀 새로운 스타의 탄생을 기다렸는데, 방신실이 그 주인공이 됐다.


방신실이 올해 5월 17일 강원도 춘천시 라데나CC에서 열린 2023 두산매치플레이 챔피언십 1라운드 2번 홀에서 티샷하고 있다. KLPGA 제공 방신실이 올해 5월 17일 강원도 춘천시 라데나CC에서 열린 2023 두산매치플레이 챔피언십 1라운드 2번 홀에서 티샷하고 있다. KLPGA 제공

■‘괴물 신인’의 롤 모델

그런 방신실에게, 스스로 밝힌 바, 롤 모델이 있다.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투어에서 뛰고 있는 고진영이다. 고진영이 1995년 생이니 방신실과는 9살 차이다. 고진영은 3일 현재 여자골프 세계랭킹 1위다. 그냥 1위가 아니다. 세계 1위 최장 기록 경신을 눈앞에 두고 있다. 2006년 여자골프 세계랭킹 시스템이 도입된 이래 최장 1위 기록은 지금은 은퇴한 멕시코의 로레나 오초아가 갖고 있다. 그는 158주 동안 1위 자리를 내 주지 않았다.

고진영이 정상에 있었던 기간은 3일 기준 147주다. 지난해 손목 부상으로 잠시 1위 자리를 내놓았지만, 올해 들어서는 컨디션을 회복하며 7개 대회에 출전해 2승을 포함해 톱 10에 다섯 차례나 올랐다. 지금 추세라면 오초아의 기록을 깰 날이 머지않아 보인다. 방신실은 고진영을 롤 모델로 삼은 이유에 대해 “멘털이 강하고 항상 그 자리에서 성실하게 노력하는 모습에 배울 점이 많다”고 밝혔다.


고진영이 올해 5월 14일(현지시간) 미국 뉴저지 클리프턴 어퍼컨트리클럽에서 열린 LPGA 투어 코그니전트 파운더스컵에서 우승한 뒤 포즈를 취하고 있다. AP연합뉴스 고진영이 올해 5월 14일(현지시간) 미국 뉴저지 클리프턴 어퍼컨트리클럽에서 열린 LPGA 투어 코그니전트 파운더스컵에서 우승한 뒤 포즈를 취하고 있다. AP연합뉴스

■피와 땀으로 일군 성과

고진영과 방신실이 선수로서 걸어온 길은 닮았다. 고진영은 평범한 프로 골퍼였을 뻔했다. 초등학교 때 골프에 입문했는데, 그때 ‘골프 천재’ 김효주가 있었다. 동갑내기인 김효주가 고진영은 부러웠다. 초등 5학년이던 2006년 유소년 대회에서 고진영은 92타를 쳤다. 그 역시 우수한 성적이었는데, 김효주는 무려 78타였다. 고진영은 “정말 대단해 보였다”라고 회고했다.

‘예상’대로 김효주는 국내 무대를 평정한 뒤 2015년 미국으로 진출했다. 천재를 따라잡는 방법은 단 하나, 피땀 어린 노력이다. “공을 보면 구역질 날 정도”의 혹독한 노력을 통해 고진영은 자신만의 골프를 완성했다. 김효주가 그랬던 것처럼 한국 여자골프를 평정한 뒤 2018년 LPGA 무대에 뛰어들었고, 불과 1년 만에 세계 최고에 올랐다. 타고난 재능으로 늘 앞에 있던 김효주를 넘어섰다.

일곱 살 때 골프채를 처음 잡았던 방신실은, 고등학교 때 국가대표로 있었으니, ‘될성부른 떡잎’이긴 했다. 하지만 특출나지는 않았다. 지난해 KLPGA 정규투어 진출을 위한 시드 순위전에서는 겨우 40위로, 일부 경기에만 출전할 수 있는 조건부 시드를 받는데 그쳤다. 갑상샘기능항진증에도 걸렸다. 증상이 심할 땐 숨이 차 훈련도 할 수 없었다. 체중도 10kg이나 줄었다. 선수 생활을 그만둘 뻔했다.

그러나 방신실은 별명 그대로 ‘오뚝이’이었고, 부단한 노력으로 역경을 딛고 섰다. 장타 능력 역시 처음부터 갖고 있던 게 아니다. 자기만의 무기를 만들고자 스윙 스피드를 높이는 훈련에 지독하게 매달린 결과물이다. 그런 노력 끝에 올 시즌 투어에서 마침내 5번째 출전 만에 기어코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렸고, 당당하게 시즌 풀시드(전경기 출전 자격)를 따냈다.


■우울의 시대에 한 줄기 빛

우리나라 국민 5명 중 1명이 ‘우울 위험군’에 속해 있다고 한다. 그냥 하는 말이 아니라 지난해 정부가 공식 발표한 통계가 그렇다. 따지고 보면, 정치 경제 사회 모든 면에서 뭣 하나 순리대로 풀리는 게 없으니 집단 우울증에 걸릴 만도 하다.

고진영 방신실 같은 젊은 층에서 더 그럴 테다. ‘워라밸’(일과 삶의 균형)을 외치지만, 극심한 취업난에 연애조차 포기하는 터에 워라밸은 언감생심이다. 사회적으로 고립·은둔 상태에 있는 청년이 파악된 것만 37만 명이고, 정신질환을 앓고 있는 청년은 인구 1000명 당 36명 꼴이다. 더 어린 10대 청소년들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일도 비일비재하고, 충격적이게도 이들의 극단적 선택 장면이 SNS로 생중계되는 세상이다. 이게 현실이다.

이런 우울의 시대에 고진영이라는 존재와 방신실의 등장은 한 줄기 빛이라 하겠다. 진정한 노력은 결코 배신하지 않는다는 만고불변의 진리를 새삼 깨닫게 하고, 힘들어하는 이에게 일어설 용기와 위안을 줘서 그렇다.




임광명 논설위원 kmyim@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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