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두대간] 지리산 무박 종주, 도전은 아름답다
-성삼재서 천왕봉 거쳐 중산리까지
-새벽에 출발해 당일 산행 마무리
-도상거리 34km 15시간 걸려
-체력은 기본, 인내력 필요한 코스
지리산 천왕봉 정상 파노라마 풍경. 진한 감동 보다는 마쳤다는 안도감이 앞섰다.
흔히 산 좀 타는 사람들끼리 내공을 가늠하다 보면 빠지지 않는 것이 "지리산 몇 번 가 봤니?"이다. 남한 육지의 최고봉인 천왕봉(1915m). 그리고 아흔아홉 골짜기로 이야기되는 첩첩산중. 보통의 산은 조망이 좋은 정상에 올라서면 도시와 인가가 먼저 보이지만, 지리산 주 능선에서는 주로 산과 골짜기가 보인다. 깃대종 반달곰이 방사돼 서식하고 있는 산. 어머니 산이라 불리는 지리산 종주산행을 무모하게 무박으로 계획했다. 그리고 해냈다. 해 낸 뒤에 한 이틀 몸살을 앓는다. 따져 보면 결국 2박 3일이다.
종주산행을 무박으로 다녀온 뒤 뒤늦게 지도책을 찾아봤다. 한 산악잡지에서 나온 책에는 산세가 험하고 산행 거리가 길어 '2박 3일은 꼭 필요한 구간'이라고 써 놓았다. 책이 나온 지가 2005년이니 세월이 흘러도 한참이다. 황계복 부산시민등산아카데미 강사는 말했다. "길이 예전과 다르게 좋아졌고, 교통수단이나 도로도 발달해 예전과 비교할 수 없다." 황 강사는 예전에는 부산에서 중산리 오는 길만해도 한나절이 걸렸다고 말했다.
형제봉에서 바라본 천왕봉 능선. 풍뎅이 한 마리가 끼어들었다.
종주 도중 일부 사람들이 부지런히 수첩에 스탬프를 모으고 있었다. 어떤 사람은 구간을 통과하면서 모바일앱에서 '달성 배지'를 받았다는 음성이 흘러나왔다. 모바일 GPS 앱은 시작한 시간과 지금까지의 걸음 수와 거리, 평균속도를 부지런히 알려주었다. '독도법'을 애써 공부할 필요가 없는 시대가 된 것인가. 길이 달라진 곳은 "경로를 이탈했습니다"란 경고 문구가 연신 쏟아졌다. 산행 풍경이 예전과 많이 달라졌다. 지리산 종주수첩은 구례군에서 발행하는 것으로 화엄사~대원사 혹은 화엄사~중산리 완주 스탬프를 모으면 메달을 준다.
새벽 2시 45분 산행을 시작한다. 오전 3시부터 개방하나 직원이 통행을 허락해 주었다.
성삼재 주차장에서 시작
새벽 2시가 조금 넘어 성삼재 주차장에 도착했다. 주차장은 대부분 텅 비어 있었는데, 한 10분이 지나니 서울에서 온 관광버스 두 대가 도착해 산꾼을 내려주고 쏜살같이 주차장을 빠져나간다. 조금 있으니 서울에서 출발한 성삼재행 고속버스가 도착했다. 이 버스는 함양을 거쳐 온단다. 예전처럼 구례구역에서 새벽에 출발하는 버스는 없고, 구례터미널에서 오는 버스는 있다고 한다. 우리는 빨리 도착했지만, 다만 문제는 오전 3시가 산행 허용 시간이라 출발이 불가능한 상황이었다.
동태를 살피던 일행 한 명이 '들어갈 수 있다'는 말을 했다. 어쩐 일인지 출입구가 개방된 것이다. 그 말에 일행들은 평소 성실히 수행하던 체조도 없이 부랴부랴 산행을 시작한다. 그렇게 새벽 2시 45분에 산행을 시작했다. 이어 노고단대피소~노고단 고개~돼지령~피아골 삼거리~임걸령(샘터)~노루목~화개재~연하천산장~음정마을 갈림길~형제봉~벽소령대피소~덕평봉~선비샘~조망지~칠선봉~영신봉~세석산장~장터목산장~천왕봉(1915m)~법계사(로터리산장)~두류학습원(버스 이용 편도 2000원)~중산리 탐방지원센터까지 도상거리 약 34km를 14시간 48분 동안 걸어 마침내 종주를 마무리 지었다.
오늘은 장기전이니 처음부터 무리할 필요가 없다고 했던 신세균 수목산악회 회장이 저만치 앞서간다. 매주 산행하는 분이라 체력을 따라갈 수가 없다. 그래도 노고단대피소까지는 차량이 다닐 수 있는 넓은 길이라 2열, 3열로 각기 자기 가고 싶은 데로 오른다. 대피소까지는 랜턴을 켜지 않고 갔다. 주변에서 밝혀주는 불빛이 워낙 밝았기 때문이다. 노고단대피소는 기존 대피소를 철거하느라 공사가 한창이다.
옹달샘 물을 달게 몸에 채워 넣었다.
임걸령 물 맑은 옹달샘
노고단 정상은 아직 개방시간이 되지 않아 꽁꽁 막혀있었다. 노고단 고개 초소를 지나 본격 종주산행을 시작한다. 엄밀히 따지면 지금까지 걸었던 길은 접속 구간이고, 지금부터가 대간길이다. 어차피 종석대 코스도 가지 못하는 마당에 '접속과 대간'의 구분이 무슨 의미가 있으랴. 어차피 바래봉 쪽으로 북진하려면 역시 온 길을 내려가는 길이 대간길이다.
노고단대피소 철거 현장을 자연훼손으로 여기는 사람들도 많았다. 저렇게 중장비로 파헤치면서 공사하며 (자기들은)대간을 훼손하면서 산꾼들이 비법정탐방로에 들어서기라도 하면 닭 몰아 잡듯이 단속하는 행태에 산꾼들의 화가 단단히 난 탓이리라. 그래서 국립공원관리공단 직원을 줄여 부르는 '국공'은 예전에 경찰을 '짭새'라 부르고, 공무원을 '정부미'라 부르는 것만큼 어감이 좋지 않은 것은 사실이다. 사람들은 단속을 위한 단속이 아니라 합리적인 해법을 원한다.
소위 '국공'을 안주 삼아 씹으며 초반 구간을 부지런히 걸어 헬기장에 도착해 잠시 쉰다. 다시 출발해 10여 분을 지나니 돼지령이다. 해발 1370m. 노고단 고개에서 2.1km를 걸었다. 피아골로 하산하는 삼거리 갈림길을 무심코 지난다. 여기서 직전마을로 하산할 수 있으나 관심 밖이다. 오직 천왕봉을 향해 간다. 임걸령 표지판에 5m만 가면 샘터가 있다고 해 놓았다. 물은 넉넉하지만, 샘터로 갔다. 아뿔싸. 5m는 아니었다. 10m는 족히 돼 보였다. 멀게 느껴진 것은 체력을 아껴야겠다는 마음이 앞섰기 때문일까?
샘터의 정확한 이름은 '임걸령 옹달샘'. 반야봉에서 내려온 기운을 모아 솟구치는 시원한 옹달샘에서 물 한 바가지를 얻어 마신다. 폐부까지 시원해진다.
손이 시릴 정도로 차가운 연하천 샘물.
연하천 돌절구통 샘터
샘터에서 물을 넉넉하게 채워 또 천왕봉을 향해 걷는다. 노루목에서 반야봉 오르는 갈림길이 있다. 종주 산행을 할 때 가장 애매해지는 경우다. 반야봉은 종주 능선에서 1km 정도 벗어나 있다. 시간이 넉넉하다면 반드시 들러야 하나, 오늘은 대부분 반야봉을 포기하고 1km 떨어진 삼도봉으로 내달린다. 그래도 몇몇은 반야봉에 오른다.
노루목을 지날 즈음 주변이 밝아오더니, 삼도봉에서는 날이 완전히 밝았다. 해도 이미 뜬 상태일 텐데 구름안개에 가려 보이지 않는다. 뾰족한 삼도봉(경남 전남 전북) 탑 앞에서 사진도 찍고 여장도 정리한다.
화개재에 도착했다. 뱀사골(반선)으로 내려가는 갈림길이다. 뱀사골대피소가 "있다." "없다." 말들이 많았는데 최근 산행 후 이 코스를 다녀온 분들이 기록을 살펴보니 없어진 것이 맞는 모양이다.
토끼봉 헬기장에는 서울 산꾼들이 간식을 먹고 있다. 자리를 피해주며 더 걷는다.
갑자기 덱 길이 나타났다. 최근 새로 깐 것이 분명한 야자매트도 산뜻하다. 이렇게 등산로가 잘 정비돼 있으면 뭔가 있다는 것이다. 연하천대피소였다. '연하천산장'이라는 이름이 더 정감이 있다. 예전엔 산장이라고 했다.
의자에 앉아 아침을 먹는다. 물 좀 마시러 갔더니 바닥에 흘린 쌀이며, 라면 몇 가닥이 청정 샘물에 속절없이 씻기고 있다. 조금만 주의를 기울여도 잔반을 샘터에 흘리지는 않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들었다. 이럴 때 플라스틱 소쿠리가 필요한 것이다. 마냥 이용객만 나무랄 수도 없다.
벽소령 물은 대피소 벽에 수도꼭지가 있어 가장 편하게 얻을 수 있었다.
벽소령대피소 수도꼭지
아침을 먹고 한껏 여유를 부리다가 출발하자마자 크게 헛다리를 짚는다. 산딸나무 탓이다. 지리산 주 능선 일대에 산딸나무가 만개했는데 꽃잎이 죄다 하늘을 향하고 있어 나무 밑에서는 잘 보이지 않는다. 높은 곳에서 내려다본 산딸나무 군락은 장관이었다. 산딸나무를 찾느라 위만 보다가 다리가 꼬였다. 다행히 넘어지지는 않았는데 높은 낙차로 뛰어내리면서 약간의 무리가 있다. 긴장을 늦추지 말자고 다짐한다.
음정마을 하산로가 있다. 3시간 걸린다고 하니 중간 탈출로로 제격이겠다. 언젠가 <부산일보> 산&길에서 벽소령대피소로 올랐다가 음정마을로 하산하는 코스를 소개한 적이 있다. 겨울에도 개방된 등산로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형제봉의 조망이 좋다. 멀리 천왕봉까지 일망무제다. 멋진 조망에 셔터를 연신 눌러댄다. 형제봉에서 내려가니 형제바위가 있다. 원래 부자바위가 맞는다고 하는데, 형제바위라는 이정표도 이제는 없다. 대신 새겨진 것은 '낙석주의'다.
사념에 잠겨 내리막을 내려 오니 벽소령 대피소다. 벽소령대피소의 샘이 가장 현대화돼 있다. 수도꼭지 하나다. 아마도 취사용 샘물이 따로 있는지는 모르겠다. 샘은 오직 물만 받게 돼 있어 깔끔했는데 슬쩍 손이나 수건을 씻는 사람도 있었다. 물 한 통을 받아 길게 맛을 본다. 그리고 부족한 물을 수통에 다시 채운다.
오전 9시 30분이다. 산행을 시작한 지 7시간이 다 돼 간다. 피로가 쌓인다. 거기에 길마저 평온하다. 잠이 쏟아진다.
누구나 화전민의 무덤을 향해 조아려야 하는 선비샘.
머리 좋은 화전민의 선비샘
벽소령대피소를 출발하면서 야자매트 깔린 평탄한 길이 이어진다. 오르내림이 거의 없는 거의 무장애급 오솔길이다. 길이 이러면 나중에 어떻게 될지 좀 불안하다. 낙석지대에는 돌 절벽과 한참을 띄워서 길을 만들어 놓았다. 나무 한 그루를 살리기 위해 덱이 우회하기도 했다. 자연에 한없이 자애로운 국립공원관리공단이다. 그런데, 각 구간에 있는 철 혹은 덱 계단의 높낮이는 좀 총괄 조사해서 개선해 주면 좋겠다. 산꾼들의 정형외과 진료수가를 올릴 요량이 아니라면.
덕평봉을 지나 세석으로 간다. 등산로에 한 분이 앉아 있다. 돌부리에 걸려 넘어지면서 무릎이 까졌단다. 걱정만 해 주고 지나친다. 나중에 들으니 후미에 오던 명용익 부산아카데미 백두대간종주대 산행대장이 정성껏 치료를 해 주었다고 했다. 나홀로 산행을 왔더라고 했다.
선비샘이 있다. 선비샘은 유래를 크게 적어 안내문을 세워 놓았는데 평생 멸시와 천대를 받던 화전민이 샘터 위에 무덤을 만들어달라고 후손에게 유언했단다. 이후 이 길을 지나는 선비 등 모든 사람이 허리를 숙여 물을 받으니 죽어서야 남들로부터 존경 아닌 존경받고 있다는 이야기다. 하필 안내판에는 선비 복장의 나그네가 허리를 숙여 물을 받고 있다. 선비샘의 수량이 지금껏 본 샘 중에 가장 풍부하다.
앞이 탁 트인 조망지가 있다. 사진 안내판을 세웠는데 천왕봉의 위치가 상세히 기재돼 있다. 멀리 천왕봉 능선뿐만 아니라 근처 꽃들도 눈에 들어온다. 함박꽃, 눈개승마, 마가목꽃이 한창이다.
숲으로 천이하고 있는 세석평전. 샘은 대피소 아래 20여 m 지점에 있었으나 지쳐서 도무지 갈 수가 없었다.
세석산장 샘물은 상상으로만
칠선봉에서 세석산장까지는 1.9km. 점심을 먹을 수 있다기에 힘을 낸다. 그런데 허기가 지기 시작한다. 뭘 좀 먹었어야 하는데 그렇게 하지 못했다. 영신봉을 지날 즈음 배꼽시계가 더 세차게 울리기 시작한다. 세석까지 남은 거리는 0.6km. 시간은 막 12시다. 점심시간은 때를 거의 맞췄지만, 배는 이미 고파 삐진 상태였다. 입맛이 도통 없었다. 10시간 가까이 걸은 터라 체력도 얼추 소진됐다. 겨우 물 한 모금을 마시고 음식을 억지로 욱여넣는다.
70대인 신세균 회장은 예전에 젊은 시절 지리산 철쭉제를 하면 세석평원 전체가 각양각색 텐트로 가득 찼다며 추억을 소환했다. 60년대 후반 그때는 장비도 변변찮고 텐트 등 장비 무게도 만만찮았는데 어찌 그 험한 등산에 취미를 가졌던지. 어렵게 산에 와서 배낭을 열어보면 어머니가 장만해 넣어주신 각종 반찬이 푸짐했다며 모정을 회상했다. 그때 수백 개의 텐트가 들어서던 자리는 이제는 제법 나무와 풀이 자라 울창한 숲이 되어가는 중이다.
세석산장에도 물 맛 좋은 샘이 있었지만, 눈앞에 보이는 20m를 내려갈 엄두가 나지 않았다. 장터목에서 물을 보충하기로 하고 세석산장의 물은 포기했다. 더러 물을 보충하러 내려가는 분이 빈 병을 모으고 있었지만, 염치가 없어 부탁하지 못했다. 어쨌든 점심을 먹고 장터목을 향해 또 무거운 발걸음을 뗀다.
지리산에서 가장 자주 만난 장터목 산희샘. 물 맛 하나는 언제라도 좋다.
산희샘 덕분에 꼴찌 등극
세석산장에서 천왕봉을 향해 오르막길을 오르면 말처럼 생긴 멋진 바위가 있는 봉우리가 있다. 그 아래 세석평전 자연관찰로 안내판이 있다. 세석~장터목 구간은 길지는 않지만 이름난 험로라고 한다. 그래도 계단을 올라 작은 봉우리에라도 도착하면 지리산 주 능선이 운무 속에서 장엄한 모습을 보여준다. 구상나무의 새순도 눈을 황홀하게 한다.
천왕봉에 다가갈수록 날씨는 변화무쌍해져 구름과 안개가 수시로 능선을 넘는다. 안부를 지날 때는 야생화 밭이었고, 멀리 고개를 드니 연하봉의 봉우리가 선인들의 세계인 양 유혹한다. 붉은병꽃나무꽃도 반긴다. 말없이 묵묵히 걷는다.
사소한 상상조차 할 시간이 없다. 오르막을 만나면 오르고, 내리막길에서는 뚜벅뚜벅 내려간다. 그렇게 세석대피소를 출발한 지 1시간 40분 만에 장터목산장에 도착했다. 익숙한 장터목산장에서 희망을 얻는다.
장터목산장은 라면을 끓이는 사람, 이미 천왕봉을 다녀온 사람, 이제 올라가야 하는 사람들로 붐볐다. 그 시설 좋은 화장실에도 가지 않았다. 덱 지대에서 남은 간식을 먹는데 다들 덱 위에 벌러덩 눕는다. 정말 눕고 싶었는데 누우면 일어나지 못할 것 같았다.
일정 휴식을 취한 후 물을 좀 채워야 하기에 산희샘으로 갔다. 그런데 다들 쉬고 계시는 분들이 주섬주섬 일어나는 게 아닌가. 물도 차례가 있어 한참을 기다렸다가 수통 2개를 채웠다. 샘에서 능선으로 오르는 그 짧은 오르막길을 올라가는데 너무 힘들었다. 능선에 도착하니 황 강사와 후미대장이 한참을 기다리고 있다. 꼴찌라는 말에 머쓱해졌다.
참 귀한 물이었던 천왕샘. 수량이 제법 있어 퍼내도 금세 고였다.
천왕샘도 물이 있었다
제석봉 인근 고사목 지대 복원 사업이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다. 벌목꾼들이 증거를 없애기 위해 불을 질렀다는 이야기인데, 한국전쟁 당시에도 많은 나무와 사람이 쓰러졌을 것이다. 초기 지리산에 오면 한 아름이 넘는 구상나무가 많았다. 지리산 일대 식당이나 중국집, 심지어 관공서에도 고사목 사진은 단골로 걸려있었고, 많은 사진작가들이 고사목을 담아 지리산의 아름다움을 표현했다. 그런데 지금은 서 있는 고사목이 몇 개 되지 않았다. 대신 사람 키 높이가 넘는 구상나무가 열심히 자라고 있다.
제석봉 인근의 덱에서 한 무리의 산꾼들이 하하호호 즐거워한다. 천왕봉의 휘감는 구름을 보면서 여유를 부리는 것 보니 이미 정상을 다녀온 분들이다. 부러워하지 않고 1.1km 남은 정상을 향해 간다. "힘들어도 쉬지는 말고 천천히 가도 좋으니 지속해서 가세요." 황 강사가 팁을 주었다. 다행히 쉬지 않고 걸었더니 어느덧 꼴찌를 탈출했다.
하늘로 통한다는 통천문을 지나니 정상이 500m 남았다. 쇠 난간을 잡고 기를 쓰며 드디어 천왕봉 정상에 오른다. 호흡을 가다듬고 잠시 서 있으니 감격보다 추위가 먼저 밀려온다. 단체 사진을 찍는다기에 뒤따르는 일행을 기다린다. 바람이 너무 차가워 서쪽 비탈 양지에 조용히 숨듯이 앉았다. 다들 정상석과 독사진을 찍는 중이라 도무지 공간이 나지 않는다. 그래도 기념은 남겨야 하기에 멀찌감치서 정상석을 배경으로 셀카로 몇 장 찍었다.
이제 중산리로 하산한다. 천왕샘에도 누군가 바가지를 가져다 두었다. 예전에 왔을 때는 바짝 말라 물 구경이 힘들었다. 이번에는 천왕샘물 한 잔 맛나게 먹는다.
가파른 개선문을 지나 법계사로 하산한다. 이제 팀이 쪼개졌다. 먼저 간 팀 나중에 오는 팀 이렇게 자연스레 순번이 정해졌다.
로타리산장. 바로 위에 법계사 입구 샘터가 있다. 미처 사진을 찍지 못하고 내려와 다시 올라갈 수가 없었다.
법계사 샘물과 식당 샤워장
내려오는 도중 분주한 셈법이 이어졌다. 법계사~칼바위~중산리 탐방지원센터 코스는 법계사~두류생태학습원~중산리 탐방지원센터 보다 거리는 짧지만 길이 험하다고 한다. 그리고 식당까지는 또 한참 걸어가야기에 우리 일행의 선택지는 '버스'였다. 법계사 신도들을 위한 버스인데 산꾼들이 더 많이 애용한다는 그 버스다. 로타리산장에 버스 시간을 확인했던 한 일행이 와서 서두르면 마지막 버스인 오후 6시 버스를 탈 수 있다고 안내해 주었다.
일단 하산로 결정은 했는데 가만히 생각해 보니 법계사 넉넉한 샘터를 사진에 담지 못했다. 다시 올라갈까 하다가 그만두었다. 샘터에서 곱게 머리까지 감는 사람들을 보았기 때문이다. 그들을 보면 괜히 한마디 해야 할 것 같아서, 마음에만 담고 두류생태학습원으로 하산한다.
역산해 봤다. 버스승강장에서 로타리산장까지 2.3km를 48분 만에 내려온 것이다. 조금만 더 힘을 내면 더 편해진다는 생각으로 무리를 좀 했다. 그래서 거의 마지막 순번으로 무사히 버스를 탈 수 있었다. 40명 정원 버스가 만석이 되자 기사 아저씨도 신이 났는지 부드럽게 핸들링해서 계곡을 내려간다.
그런데 애써 달려왔는데 팩트가 틀린 부분이 있었다. 예약한 식당이 중산리탐방지원센터 바로 근처에 있었다. 그래서 칼바위 코스를 내려오는 사람들을 한참 기다려야 했다. 그런데 희소식 하나. 식당에 샤워장이 있다는 것이다. 국립공원 구역은 계곡에 들어갈 수 없다. 모두 기분 좋게 몸을 씻는다. 그깟 비빔밥 한그릇 1만 2000원이야 샤워비 따지면 아무 것도 아니다.
백두대간 종주에 빠짐없이 참가하는 84세의 1번 참가자가 한마디 한다. "34km 무박 지리산 종주 대단합니다. 우리 모두 자랑합시다."
연하천대피소의 비상대피 용품 판매 안내.
▲지리산 종주 준비물
호기롭게 단 하루 만에 종주를 마쳤지만, 주말 내내 누워 있었다. 급기야 감기가 찾아와 하루를 더 쉬었으니 과연 지리산 종주는 책에서처럼 2박 3일 동안 느긋하게 하는 것이 맞을지, 아니면 무리해서라도 하루에 끝낼지는 각자의 판단에 맡길 일이다.
우선 백두대간 지리산 구간은 여느 구간과 다르게 물이나 비상식량을 걱정할 필요가 없다. 대피소마다 건전지, 우의, 아이젠, 장갑, 스패치, 랜턴은 물론 생수와 즉석밥, 휴대용 가스 등을 판매하기 때문이다.
특히 지리산 구간은 일정 거리마다 맑은 샘터가 있어 물 걱정을 덜 수 있으니 백두대간 종주 코스 중 최고다. 다만 중등산화는 필수. 운동화는 지리산 길 대부분이 커다란 돌로 된 구간이 대부분이어서 오래 걸으면 발바닥 통증이 심해 더 이상 걷지 못하는 수가 있다. 물론 신발도 각자의 처지나 취향에 따를 일이다. 고무신 신고 지리산 오르는 사람까지 본 적도 있으니.
당일 종주를 마치려면 복장과 짐이 가벼워야 한다. 그러나 간식은 남겨오더라도 넉넉한 것이 좋으며, 허리 주머니 등에 넣고 다녀야 귀찮아서 못 꺼내 먹는 일이 없다. 이번에 보니 서울에서 온 산꾼들은 중등산화에 목이 긴 양말, 반바지, 쿨맥스 티셔츠로 간단하게 갖춰 입었다. 남녀 할 것 없이 반바지 차림이 많아 저게 유행인가보다 생각했다. 그 외에는 타이즈에 반바지를 겹쳐 입고, 반소매에는 토시를 착용했다.
대피소나 등산로 곳곳에는 비상 연락처가 있기에 혹여 상처를 입더라도 크게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물론 다치지 않는 것이 가장 좋다.
시간적 여유가 있다면 장터목이나 세석산장을 예약해 느긋하게 종주하는 것이 좋겠다. 단, 코로나 이후 산장에서 모포를 대여하지 않는다 하니 침낭이 필수 장비여서 짐이 늘어날 수 있다.
글·사진=이재희 기자 jaehee@
이맘때 지리산 종주산행에서 만난 야생화. 마가목, 함박꽃,눈개승마,붉은병꽃.
성삼재 차단봉을 지나며 지리산 무박 종주산행을 시작한다.
노고단 고개에서 본격 백두대간 종주를 시작한다. 처음 만나는 헬기장에서 휴식.
반야봉 갈림길인 노루목이다. 반야봉은 왕복 2km라 오르지 않았다.
삼도봉에서 모두 기념사진을 찍는다. 전남북과 경남의 경계다.
연하천산장 가기 전 뱀사골로 하산하는 갈림길을 지난다.
연하천산장에 도착했다. 정식 이름이 대피소로 바뀌었지만, 산장이 더 정감있다.
벽소령대피소 가기 전 음정마을 하산로가 있다.
형제봉에서 바라본 천왕봉 능선.
형제바위라는 이정표는 없어지고 낙석주의가 붙어있다.
벽소령대피소에 도착한다. 한참을 쉬어간다.
벽소령대피소를 출발하자마자 평지 오솔길이 제법 이어진다.
덕평봉에 도착했다.
선비샘이다. 유래를 잘 설명해 놓았다. 선비의 한복이 곱다.
조망지에서 천왕봉 능선을 감상한다.
칠선봉에 다다랐다.
낙남정맥 갈림길인 영신봉을 지난다. 영신봉은 출입금지돼 있었다.
세석산장에 도착했다. 사람들이 몰려 자리가 부족했다. 점심을 먹는다. 피로가 몰려왔다.
오르내림이 심한 구간이다. 장터목까지 긴장을 늦출 수 없다.
시원한 조망에 그나마 피로를 덜어낸다.
성큼 바위에 올라선 산꾼들. 장터목이 지척이다.
장터목 산장에 도착한다. 장이 설 만큼 공간이 넓다.
제석봉을 지난다. 고사목은 점점 없어지고 있다.
제석봉에서 바라본 천왕봉.
통천문을 지난다. 정상이 눈앞이다.
마침내 정상에 섰다. 어떤 분은 태극기를 휘날리며 즐거워했다.
중산리로 하산하며 개선문을 지난다.
로타리산장에서 두류학습원으로 하산 방향을 잡는다.
계측기를 통과했다. 끝이 보인다.
마침내 버스 정류소다. 도상거리 34km의 긴 산행을 마무리 짓는다. 오후 6시가 채 되지 않았다.
이재희 기자 jaehee@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