늑장 진입 통제·펌프 고장… 반복되는 저지대 참사
오송 참사, 부산 초량 참사 닮아
방재 당국 차량 통제 제때 안 해
배수펌프 4개도 제 기능 못 해
지하공간 침수 속도 안내 부족
윤 대통령, 진입통제 강화 주문
기습적인 호우가 지하도의 대형 인명 사고로 이어지는 일이 반복되면서, 지하 침수 참사는 사실상 구조적 문제에 따른 ‘인재’라는 지적이 거세지고 있다. 지하 주차장이나 지하도가 물에 잠겨 침수되는 속도는 일반적인 경험치를 넘어서는데, 이를 간과하고 출입 통제 등이 한발 늦어지는 경우가 허다하기 때문이다.
지난 15일 발생한 오송 지하차도 참사는 앞서 2020년 7월 23일 발생한 부산 동구 초량 지하차도 참사와 여러 면에서 닮았다. 당시 부산엔 시간당 최대 80㎜ 비가 쏟아졌고, 도로를 타고 내려온 물이 순식간에 왕복 2차로 지하차도를 가득 채웠다. 지하차도 내에는 차량 7대가 있었고, 9명은 빠져나왔으나 3명은 미처 빠져나오지 못해 목숨을 잃었다. 이 사고는 침수 대비 매뉴얼이 있는데도 방제 당국이 이를 따르지 않아 차량 통제를 제때 못한 것으로 드러났다. 관련 공무원 11명이 관련 혐의로 기소돼 1심에서 모두 실형과 벌금형 등을 선고 받기도 하는 등 전형적인 인재로 평가받는다.
지난해 9월 태풍 ‘힌남노’로 기습 폭우가 쏟아지면서 발생한 경북 포항 인덕동 아파트 침수 사고 역시 인재에 가깝다. 인근 하천에 범람해 지하 주차장에 물이 차기 시작하자, 차를 옮기라는 관리사무실 안내 방송이 나갔다. 이를 듣고 차를 빼러 간 주민 7명이 순식간에 차오른 물에 잠겨 목숨을 잃었다. 침수된 지하 주차장은 길이 150m, 너비 35m, 높이 3.5m 상당히 넓은 규모였는데도 물이 차오르는 속도가 너무 빨라 대피할 시간이 없었다. 곧 침수가 될 수 있는 상황인데도 이를 미처 파악하지 못하고 차량 이동 방송을 한 것이 인명 피해를 키운 셈이다.
2016년 10월 태풍 ‘차바’ 때도 울산에선 태화강에서 넘친 강물이 인근 주상복합아파트 지하주차장으로 모이면서 차를 빼러 간 주민 1명이 숨지는 사고가 발생했다. 2014년 8월엔 부산 동래구 우장춘로 지하차도에서도 불어난 물에 70대 할머니와 10대 손자가 차량에 갇혀 숨지는 사고도 있었다.
이에 대해 안전 관련 전문가들은 기본적으로 저지대의 침수 위험에 대한 사회 전반의 경각심 부족을 참사의 근본적 원인으로 꼽는다. 지하차도 같은 저지대는 물이 차오르기 시작하면 지형에 따라 초 단위로 수위가 몇 cm씩 올라갈 수 있다. 이런 경우 위험을 감지하고 대피하려고 하면 이미 늦다는 것이다.
하지만 재난 시 국민행동요령에 지하공간에 대한 행동 지침을 따로 마련해 구체화한 것은 지난해 8월이다. 이전까지는 지하공간 침수 사고에 대한 위험성이 제대로 인식되지 않았다. 시민들 사이에서 지하공간의 침수 속도를 제대로 이해하는 이는 드물었고, 관련 공무원들 역시 침수 위험성을 간과하다 보니 통제가 늦어지는 불상사가 매번 되풀이되고 있다.
지하차도 배수펌프 문제에 대한 지적도 참사 때마다 반복된다. 지난 15일 사고가 발생한 오송읍 제2 궁평지하차도 내부엔 배수펌프가 4개나 있었지만 제 기능을 하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펌프가 용량을 초과해 오작동이 발생했거나, 관리부실 등으로 고장났을 가능성 등이 제기된다. 부산 동구 초량 지하차도 참사의 경우에도 지하차도 분당 20t 용량의 배수펌프 3개가 있었지만, 쏟아지는 빗물에 대응하기엔 사실상 무용지물에 가까웠다.
방재 당국은 지하도 등 저지대 침수 참사를 막기 위해 다각도의 방안을 검토할 예정이다. 특히 기후변화에 따라 갑작스러운 폭우가 잦아지면서, 비슷한 사고가 더 빈번해질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호우시 지하차도 출입을 더 엄격하게 통제하고, 위험성이 큰 지역의 배수펌프 용량 확대 등이 대안으로 거론되고 있다.
한편 윤석열 대통령은 집중호우 피해와 관련, “경찰은 지자체와 협력해 저지대 진입 통제를 무리하다 싶을 정도로 해 달라”고 지시했다.
윤 대통령은 16일 폴란드 현지에서 중앙안전대책본부와 화상으로 연결해 집중호우 대처 점검회의를 주재하며 호우 피해상황 및 대응상황을 긴급 점검하고 “이번 폭우로 인해 돌아가신 분들의 명복을 빌며 유가족 여러분께 위로의 말씀을 드린다”고 애도를 표했다.
김백상 기자 k103@busan.com , 박석호 기자 psh21@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