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키시마호’ 희생자 유해 봉환 서둘러야 [8000 원혼 우키시마호 비극 ③]

이승훈 기자 lee88@busan.com , 변은샘 기자 iamsam@busan.com , 손희문 기자 moonsla@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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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존자·유족 점점 줄어드는 현실
진상 규명만큼 봉환에도 큰 의미
한일 양국 정부도 반대 명분 없어
성사 땐 추모공간 건립 등도 탄력

부산일보 | #미스터리 #미스테리 #대한민국 1945년 8월 24일. 해방의 기쁨도 잠시, 강제동원 한국인을 태운 귀국선 ‘우키시마호’가 일본 마이즈루항 앞바다에서 침몰했다. 4730t급 거함은 돌연 뱃머리를 돌려 그곳으로 향했고, 의문의 폭발과 함께 사라졌다. ▶영상제공 및 도움 _ 김진홍 감독
우키시마호 희생자 유족 김자야(77) 씨가 78주년 광복절을 하루 앞둔 14일 부산 남구 일제강제동원역사관 5층 ‘기억의 터’에서 선친 김복경 씨의 위패를 보며 눈물을 훔치고 있다. 78년 전 발생한 우키시마호 사건은 수천 명의 한국인 희생자를 낳았지만, 지금까지 국내에 봉환된 유해는 241구에 불과하다. 김종진 기자 kjj1761@ 우키시마호 희생자 유족 김자야(77) 씨가 78주년 광복절을 하루 앞둔 14일 부산 남구 일제강제동원역사관 5층 ‘기억의 터’에서 선친 김복경 씨의 위패를 보며 눈물을 훔치고 있다. 78년 전 발생한 우키시마호 사건은 수천 명의 한국인 희생자를 낳았지만, 지금까지 국내에 봉환된 유해는 241구에 불과하다. 김종진 기자 kjj1761@

광복 78년이 되도록 여전히 일본 땅에 방치된 우키시마호 사건 희생자 유해를 이제는 고국으로 모셔 와 희생자와 유족, 생존자의 오랜 한을 풀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정부와 여당은 미래지향적 한일 관계를 강조하는 만큼 그에 걸맞게 유해 봉환에 적극 나서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유해 봉환이 전격적으로 성사되면 이를 안치할 추모공간 건립도 탄력을 받을 것으로 전망된다.


〈부산일보〉 취재진은 지난 60일간 전국을 돌며 생존자와 유족 10여 명을 찾아내 인터뷰했다. 대부분의 생존자와 유족은 선결 과제로 78년간 돌아오지 못한 유해 봉환을 꼽았다. 과거에는 진상 규명과 일본의 사죄에 초점을 뒀지만, 이제는 유해 봉환을 먼저 강조하고 나선 것이다.

우키시마호희생자유족회 한영용 회장은 “생존자와 유족이 점점 세상을 등지는 상황에서 유해를 찾는 일을 더는 미룰 수 없다”면서 “유해 봉환과 추모 공간 마련으로 우키시마호 사건이 후대에 알려져야 향후 진상 규명과 일본의 사죄도 진전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일본 도쿄 유텐지에는 우키시마호 희생자 유해 280구(남한 출신 275구, 북한 출신 5구)가 안치됐다. 우키시마호는 1945년 8월 24일 일본 마이즈루만 바다에서 의문의 폭발과 함께 침몰했다. 일본의 고의 폭침 의혹을 최초 보도한 당시 부산의 한 언론에 따르면 탑승객 8000여 명 중 일부 생존자를 제외하고 모두 수장됐다. 당시 유해 수백 구만 수습돼 도쿄 유텐지로 옮겨졌다.

행정안전부는 그간 일본의 사죄를 원하는 유족의 뜻을 최우선으로 여긴다는 이유로 유해 봉환을 미뤄왔다. 일본 정부도 유해 반환에 부정적이지 않은 만큼 유족의 뜻만 확인되면 도쿄 유텐지의 유해 봉환에는 큰 걸림돌이 없을 전망이다. 일본의 사죄나 진상 규명을 외면하는 게 아니기 때문에 여야 정치권에서도 큰 이견이 없을 것으로 보인다.

도쿄 유텐지의 유해 봉환을 계기로 마이즈루만 일대에서 유해 조사가 이뤄질지에 관심이 쏠린다. 육지에 묻힌 유해의 매장 위치는 정확하지 않고 이미 많은 건축물이 들어선 탓에 정밀한 조사가 시급하다. 하지만 침몰지 수중에서는 유해 발굴 가능성이 높다. 침몰 지점이 명확하고, 마이즈루만은 조류에 따라 퇴적층이 쌓이는 곳이어서다. 2012년 수중 조사 때 3m 정도 펄이 쌓인 게 확인됐는데, 이를 걷어내면 유품이나 유해를 발견할 수 있다.

유해가 국내에 들어오면 이를 안치할 추모 공간 건립에도 속도를 낼 수 있다. 특히 우키시마호 희생자 유해는 대부분 합골, 분골돼 실제 희생자의 것이 맞는지 확인하기 어렵다. 유해를 한데 모아 추모하는 게 더 의미 있다는 뜻이다.

추모 공간은 잊힐 위기에 놓인 우키시마호 사건을 알리는 데에도 필요하다. 2018년 전국 10개 도시에서 진행된 설문조사에서 ‘우키시마호 사건을 안다’고 답한 응답자는1000명 중 60명에 불과했다. 중국의 난징대학살(75%)보다 턱없이 낮았다. 현재 우키시마호를 기억할 수 있는 공간은 부산 남구 일제강제동원역사관 야외 한쪽에 있는 1m 길이의 추모비가 전부다.

우키시마호희생자추모협회 김영주 회장은 “부산은 우키시마호의 당초 목적지일 뿐만 아니라 UN평화공원과 국립일제강제동원역사관 등이 있어 우키시마호 추모 공간이 세워지기에 적합하다”고 말했다.


이승훈 기자 lee88@busan.com , 변은샘 기자 iamsam@busan.com , 손희문 기자 moonsla@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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