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데믹 이후 첫 ‘여름 대목’? 영화계 ‘한숨’
한국 영화 개봉작, 대부분 대작
‘밀수’ 유일하게 손익분기점 넘겨
“작품성 있는 영화도 힘든 상황”
극장 대신 OTT로 방향 선회도
올 여름 대전에 출격했던 영화들이 하나둘 성적표를 받아들고 있다. 코로나19 엔데믹 이후 열린 첫 여름 영화 시장인 데다 개봉작 대부분이 큰 제작비가 들어간 작품이라 영화계가 더 주목하고 있다. 다만 대부분 예상보다 저조한 성적이라 한국 영화 산업의 회복에 우려가 높아지고 있다.
22일 영화진흥위원회 영화관입장권 통합전산망을 보면 올 여름 개봉작 가운데 손익분기점을 넘은 한국 영화는 ‘밀수’ 한 편뿐이다. 전날까지 이 영화가 모은 관객 수는 479만 명이다. 흥행작을 여러 편 만든 류승완 감독이 메가폰을 잡았고 시원한 수중 장면이 많아 여름 영화로 호평을 받았다.
지난 9일 개봉한 엄태화 감독의 ‘콘크리트 유토피아’도 순항하는 분위기이지만, 아직 낙관하긴 이르다. 작품의 완성도가 높고 이병헌·박보영·김선영 등의 연기에 호평이 이어지며 관객 사이에 입소문이 나고 있다. 하지만 이 작품의 손익분기점은 약 410만 명으로, 전날까지 285만 명이 본 걸 고려하면 아직 갈 길이 남았다.
영화 ‘비공식작전’과 ‘더 문’은 고전 중이다. 외교관 납치사건을 그린 ‘비공식작전’은 전날까지 관객 104만 명을 모았다. 충무로 대표 배우인 하정우와 주지훈이 뭉친 영화라 제작 단계부터 기대가 높았지만, 관객의 마음을 사로잡진 못했다. 한국형 SF 영화인 ‘더 문’은 전날까지 관객 50만 명을 동원했다. 두 작품 모두 손익분기점은 넘지 못했다.
한 제작사 관계자 A 씨는 “‘더문’의 경우에는 수준급의 시·청각 기술을 보여줘 한국 영화의 또 다른 가능성을 보여줬는데 아쉬움이 크다”며 “할리우드 10분의 1 정도의 제작비로 높은 완성도를 보여준 작품이라 앞으로 한국에서 SF 영화에 나설 제작자가 있을까 싶다”라고 봤다. 다른 배급사 관계자 B 씨도 “여름 시장 성적이 생각보다 너무 안 좋아 지켜보고 있다”면서 “작품성이 있는 영화도 흥행은 고사하고 손익분기점을 넘기 힘든 상황”이라고 했다.
영화계 관계자들은 이번 여름 영화 시장의 성적표가 앞으로 영화계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칠 거라고 내다보고 있다. 코로나19 팬데믹 기간 제작된 많은 영화가 개봉조차 가늠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 올여름 시장의 결과는 향후 결정에 중요한 이정표로 작용해서다. 현재 촬영을 마치고 개봉하지 못한 이른바 ‘창고 영화’는 약 90여 편에 이른다. 심지어 팬데믹 직전인 2019년 말 촬영을 마친 영화 ‘바이러스’도 아직 공개 예정이 없다.
전찬일 영화 평론가는 “확실히 팬데믹을 지나면서 관객들의 영화 선택이 달라졌다”며 “극장에서 개봉하고 얼마 뒤면 온라인 동영상 서비스(OTT)에 올라오기 때문에 관객이 OTT로 볼 영화라고 판단하면 극장을 굳이 찾지 않는 분위기”라고 했다. 다른 평론가 C 씨도 “영화 ‘범죄도시3’의 흥행 이후 한국 영화 부활을 기대했지만, 여전히 힘든 상황”이라면서 “예전보다 가볍게 웃으면서 즐길 수 있는 영화를 선호하는 경향이 있다”고 봤다.
극장 개봉 대신 OTT 공개를 고려하는 작품도 늘고 있다. 제작사 관계자 D 씨는 “극장 개봉에 드는 프로모션 비용을 고려하면 극장 대신 OTT 공개를 논의하는 영화가 많아졌다”면서 “다만 오래 묵은 작품의 경우에는 OTT에서도 제값 주고 사려고 하지 않기 때문에 쉽지 않은 상황”이라고 했다.
남유정 기자 honeybee@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