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가업승계 제도 개선으로 경제 활력을
허현도 중소기업중앙회 부산울산중소기업회장
독일은 장수기업이 많기로 유명하다. 100년 기업은 1만 개가 넘고, 200년 된 기업도 1500개가 넘는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100년 기업은 14개에 불과하다. 짧은 산업화의 역사 탓도 있겠지만, 가업승계 지원 제도를 살펴보면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를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다. 가업승계 전후로 각종 까다로운 요건을 요구하는 탓에 기업들은 제대로 제도를 활용하기 어렵다. 혁신과 성장을 위한 업종 변경과 자산 처분도 제한되고, 회사가 어려워지더라도 고용은 똑같이 유지해야 하는 요건들이 있다. 그 때문에 특별한 제한 없이 가업승계 제도를 운영하고 있는 독일의 연간 제도 활용 건수가 1만 건이 넘는 동안 우리나라는 100건에도 미치지 못하고 있다.
최근 정부는 중소기업인들의 현장 목소리를 대폭 반영한 ‘2023년 세제개편안’을 발표했다. 중소기업계는 즉각 환영 의사를 보냈다. 이번 세재개편안이 중소기업의 원활한 승계 지원 내용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가업승계 증여세 과세특례 저율과세(10%) 구간을 60억에서 300억 원으로 상향조정해 세 부담을 줄였고, 조세의 일부를 장기간에 걸쳐 나눠 납부할 수 있는 연부연납도 가업상속공제와 동일하게 20년으로 확대해서 적용하기로 했다. 또 승계기업이 기업 환경에 유연하게 대응할 수 있도록 업종 변경의 범위를 중분류 내에서 대분류로 범위를 확대해 사후관리 요건을 완화했다. 이번 제도 개선을 통해 가업승계를 계획한 중소기업들은 어려운 경제 여건 속에서 조금이나마 숨통을 틔울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하지만 아직 과제는 남아있다. 산업 트렌드 변화와 생산인구 감소 등 급변하는 경영 환경 속에서 중소기업이 투자를 늘리고 혁신 동력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먼저 업종 변경 제한 요건을 완전히 폐지하는 것이 필요하다. 현행 제도는 투자가 잘 돼 업종이 바뀌면 요건을 위반한 게 돼 투자도 자유롭게 할 수 없도록 설계되어 있기 때문이다. 가업승계가 활성화된 독일과 일본의 경우 업종 변경의 제한이 없고, 오히려 일본은 사업 전환을 위해 보조금까지 지원하고 있다. 산업이 다양해지고, 변화의 속도도 빨라지는 만큼 업종 변경을 제한하는 것은 시대에 맞지 않다.
그간 가업승계 지원 제도 개선이 미진했던 이유는 2008년 가업승계 지원 제도 도입 이후 꼬리표처럼 따라붙었던 ‘부자 감세’라는 편견 때문이다. 일각에서는 가업승계로 인해 주주가 피해를 본다는 주장도 있다. 하지만 이는 중소기업계의 현실과 괴리가 크고, 적기에 세대 교체가 이뤄져야 스케일업 할 수 있는 가업승계의 중요성을 외면한 주장이다.
중소기업의 경영 환경이 열악하다는 것은 모두가 알고 있는 사실이다. 전문경영인을 초빙할 수도 없고, 자녀들도 부모 세대가 힘들게 기업을 경영한 것을 봐왔고, 자신들도 기업을 물려받으면 부모와 같이 힘든 길을 걸어야 할 것을 알기에 승계를 쉽게 결정할 수 없다. 현재 한국은 고령화가 세계에서 유례가 없을 정도로 빠른 속도로 진행되고 있으며, 70세 이상 중소기업 CEO도 2만 명이 넘는 것으로 집계됐다. 이들 가운데 상당수는 승계가 원활하지 않으면 폐업이나 매각을 고려하고 있다고 한다.
사실 승계를 고민하는 기업들은 중소기업 가운데에서도 경쟁력이 있는 기업들이다. 그렇지 않아도 빨간불이 들어온 경제 상황에서 경쟁력 있는 기업들이 적기에 승계를 못해 문을 닫는다면 경제 둔화와 세수 감소로 이어질 수 있다. 이렇게 승계는 개별 기업의 문제를 넘어 국가 경제에도 영향을 미친다. 또한 근로자의 생계와 그 기업과 함께하는 협력사들의 운명이 달린 사회 문제다. 그렇기 때문에 기업을 개인의 자산이 아닌 사회의 자산이라 보고, 우리 사회의 자산이 소실되지 않도록 적극적인 지원이 필요한 것이다.
이제는 가업승계를 ‘기업의 지속적 성장, 일자리 창출과 유지, 무형의 사회‧경제적 자산의 전수’라는 관점으로 인식 전환을 하고, 안정적인 가업승계 지원을 통해 위기에서도 견딜 수 있는 장수기업 육성이 필요한 때이다. 우리 경제의 활력이 꺼지지 않도록 현실에 맞는 확실한 제도 개선이 하루빨리 이뤄지길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