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간토대지진 100년, 반성·사과 없이 한일 미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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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국주의 시대 벌어진 반인륜적 범죄
일본, 아픈 과거 직면하는 용기 갖춰야

관동대지진 당시 학살된 조선인. 연합뉴스 관동대지진 당시 학살된 조선인. 연합뉴스

100년 전 9월 1일은 일본 간토대지진이 발생한 날이다. 일본으로서는 메이지유신 이후 최대의 국난이었지만, 재일 조선인들에게는 참혹한 피의 역사로 기억된다. 6000~1만 명으로 추정되는 간토 지역의 조선인이 ‘불을 질렀다’는 유언비어에 휩쓸려 도끼와 일본도로 무자비하게 학살됐다. 100년 동안 제대로 된 진상 조사조차 없어 정확한 희생자 규모조차 파악되지 않고 있다. 죽창을 든 자경단의 발아래 살해된 조선인 시신들이 쌓인 사진이 그날의 참상을 전할 뿐이다. 일본 경찰이 개입해 학살을 증폭시킨 정황도 드러나고 있다고 한다.

지난 100년 동안 일본 정부는 사죄는커녕 진상 조사조차 거부하면서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다. 도쿄도 지사는 2017년부터 조선인 희생자 추도식에 7년째 추모문을 보내지 않고 있다고 한다. 소위 ‘문화 선진국’이라고 자처하는 일본의 국격이 의심스러운 장면이다. 다만 일본의 양심적인 시민단체와 언론, 법조계에서 희생자를 추모하고, 일본 정부의 진상 규명을 요구하는 노력이 꾸준히 이어져 왔다. 다행스럽게도 일본 요미우리 신문 등 언론도 최근 “조선인이 폭동을 일으켰다는 유언비어가 퍼지면서 각지에 결성된 자경단이 조선인을 닥치는 대로 죽였다”라고 그날의 정황을 보도하면서 진상 규명을 요구하고 있다고 한다.

간토 대학살은 일본 제국주의 시대 벌어진 최악의 반인륜적 범죄지만, 철저히 은폐된 역사다. ‘학살은 없었다’면서 오리발을 내민다고 해서 그 역사의 질곡에서 벗어날 수 없다. 오히려 역사적 퇴행만 발생하고, 그 모든 폐해는 일본 국민에게 돌아가게 된다. 오죽했으면 아사히신문이 사설을 통해 “교훈을 가슴에 새겨야 할 시점에 잘못을 반복하지 않겠다는 결의를 왜 명확하게 보이지 않는가”라고 질타할 정도이다. 잘못된 역사에 대해서 심각하게 반성하고 사과하지 않으면, 유사한 상황이 발생할 경우 또다시 참사가 일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역사를 기억하고, 반성하지 못하는 민족이 겪을 수밖에 없는 안타까운 업보이다.

윤석열 대통령과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지난달 미국 캠프 데이비드에서 만나 준동맹에 버금가는 수준의 한일 관계 개선을 약속했다. 이 약속의 정신을 실현하기 위해서라도 일본은 간토대학살이란 국가적 범죄의 진상을 철저하게 규명하고 사과해야 한다. ‘정부 기록이 없다’라며 회피할 일이 아니다. 일본 정부가 끝끝내 진상 규명을 외면한다면 한일 관계 개선은 물론이고, 새로운 국제 질서 재편에도 걸림돌로 작용한다. 한일 관계가 거짓말과 속임수로 사상누각이 될 것인지, 진실과 화해의 기반 위에 천년을 지탱할 것인지는 일본 정부에 달렸다. 과거를 직면하는 용기, 솔직히 반성하고 용서를 구하는 결단만이 양국 관계를 개선할 수 있다. 100년이나 늦었지만, 일본 정부의 현명한 판단을 촉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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