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화재 무방비 노후 아파트 안전 대책 마련 시급하다
피난 시설·스프링클러 미비 참화 키워
전수조사 등 조치, 재발 방지책 찾아야
9일 부산의 한 아파트에서 일가족 3명 중 2명이 숨지고 1명이 중상을 입은 화재 사고를 계기로 노후 아파트에 대한 안전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지은 지 30년이 넘은 해당 아파트는 경량 칸막이·완강기 같은 피난 시설이나 스프링클러 등 소방시설이 전혀 갖춰지지 않아 참화를 키운 것으로 확인됐다. 노후 아파트는 소방설비 의무 설치 대상이 아닌 데다 관련 법률의 소급 적용도 불가능해 화재에 무방비로 노출돼 있는 게 현실이다. 유사한 인명 피해 사례가 언제 어디서든 다시 일어날 수 있는 만큼 소방시설이 없는 노후 아파트에 대한 안전 대책 마련을 서둘러야 할 때다.
이번 사고에서 참변을 키운 것으로 지목되는 건 피난 시설의 미비다. 해당 아파트에는 위험 상황 시 베란다를 통해 옆집으로 대피하게 하는 경량 칸막이가 없었다. 피난 시설 구비 규정이 만들어진 1992년 이전에 지어진 건물이기 때문이다. 화재 등을 피해 건물 외부로 천천히 하강할 수 있는 완강기가 외벽에 갖춰지지 않은 것도 문제로 지적된다. 이 역시 노후 아파트라서 설치 의무가 없었던 탓이다. 불을 피해 베란다로 몰린 일가족은 창틀에 매달렸다 결국 7층 아래로 추락하고 말았다. 2022년 부산지역 아파트 피난 시설 전수조사 결과, 피난 시설 등이 갖춰진 곳은 전체의 36.3%에 불과했다. 노후 아파트의 안전 불감증은 이보다 더욱 심각한 것으로 보인다.
화재를 초기 진압하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하는 스프링클러가 없었던 점도 안타깝다. 스프링클러는 1992년 소방법에 따라 16층 이상 공동주택에 대한 설치가 의무화된 이후 2005년 11층 이상 아파트 건물 전체로 설치 기준이 확대됐다. 2018년에는 6층 이상 건물을 지을 때 모든 층에 스프링클러를 설치하는 것으로 강화됐다. 문제는 법률 제정이나 개정 이전에 지어진 아파트다. 대체로 스프링클러가 설치되지 않았거나 오작동할 가능성이 크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부산 지역 공동주택의 스프링클러 설치 비율이 57% 수준이라면, 노후 아파트의 경우는 더욱 열악한 처지가 아닐까 짐작된다.
부산 지역의 소방시설 미설치 아파트를 전수 조사해 근본적인 화재 예방책을 세우는 게 급선무다. 공동주택의 경우 상업 건물과 달리 개인 소유의 생활 공간이라서 소방설비를 강제할 수가 없다. 그렇다면 지자체 차원의 소방시설 설치 지원도 대안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노후 아파트에 경량 칸막이나 대피 시설 등을 새로 만드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다. 안전 점검을 꼼꼼하게 실시하고 주민들을 대상으로 대피 시설과 요령 등을 숙지하도록 교육하고 홍보하는 게 현실적이다. 아파트 주차난 때문에 소방차 진입이 늦어지는 문제 역시 해결 방안을 찾아야 한다. 노후 아파트 안전 관리 대책, 더 이상 손 놓고 있을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