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국에서] 도시 일상에 '문화라는 안단테' 스며든다면…

정달식 선임기자 dosol@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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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포동 건어물맥주축제 너무 반가워
장소성과 역사성 활용 아이디어 빛나
참신함은 엉뚱함과 상상력의 산물
일회성보다는 일상의 문화 더 고민을
부산역 뒤 덱 ‘부산 알리기’에 좋아
연극이나 한바탕 춤판 펼쳐진다면…

“건어물과 맥주, 무엇보다 아이디어가 참신하고 좋았다.” “공간과 콘텐츠의 조화가 돋보였다.” “이런 곳을 놔두고 왜 여태 이런 생각을 못 했지.” 2023 유라리건맥축제(혹은 건어물맥주축제, 이하 건맥 축제)가 성황리에 끝났다는 소식을 접한 기자는 곧바로 이런저런 생각이 들었다. 특별히 도시 문화에 관심이 많은 기자로서는 이런 축제가 너무나 반가웠다.

건맥 축제는 지난 8~9일 부산 중구 남포동 영도대교 앞 유라리광장에서 펼쳐졌다. 이틀간 열린 축제에 방문객만 해도 자그마치 2만 명을 훌쩍 넘었다고 한다. 준비한 건어물 안주 1만 5000여 개가 행사 종료 전 완판됐고, 수제 맥주 물량도 행사 중간에 모두 동이 나 추가로 확보할 정도였다. 무엇보다 건맥 축제는 장소 선택이 탁월했다. 맥주 안주에 빼놓을 수 없는 건어물을 파는 부산 최대 시장이 근처에 있고, 영도대교와 바다가 바로 보이는 곳에서 축제가 열렸기 때문이다. 맥주 안주엔 치킨(치맥)도 좋지만, 마른 오징어와 문어, 대구포, 쥐포 등 건어물과의 만남은 이런 게 오랜 맥주 안주라는 점에서 장소성을 십분 활용한 아이디어가 돋보였다. 한마디로 ‘건어물’과 ‘맥주’ 여기에 덤으로 ‘바다 풍경’이 만나 대박을 이끈 셈이다.


여기다 이곳 건어물시장은 1931년 남항 매축으로 선착창이 생기면서 조성된 시장이기에 축제의 바탕이 되는 역사성과 스토리도 탄탄하게 뒷받침됐다. 짭조름한 건어물에 역사성이란 ‘시간의 켜’를 웃기처럼 얹었다고나 할까. 명소를 만들기 위해서는 얘깃거리가 필요한데 돈을 주고도 살 수 없는 오징어·쥐포 등의 안주에 대한 추억과 기억은 가장 좋은 소재가 됐다. 또 건어물과 맥주란 콘텐츠가 장소성과 결합해 살아 숨 쉬는 공간으로 탈바꿈했다.

영국의 도시 이론가 찰스 랜드리가 말한 ‘창조 도시’는 바로 이런 것이다. 차근차근 살펴보면 장소성과 역사성, 스토리, 어느 하나 빠지는 게 없다. 건맥 축제는 참신한 콘텐츠가 있으면 원도심 지역 축제도 얼마든지 성공할 수 있다는 걸 보여준 사례로 평가된다.

혹자는 조그마한 지역 축제 하나를 놓고 왜 이렇게 호들갑이냐고 얘기할지 모른다. 하지만 이런 게 바로 도시를 풍요롭게 하는 상상력이고, 도시를 살아있게 하는 상상력이기에 얘기하는 것이다.

가을을 맞아 도시 곳곳에서 하나둘 축제가 펼쳐진다. 특색 있는 행사도 있지만, 상당수는 엇비슷한 행사들로 넘쳐난다. 지자체들이 좀 더 고민하고 상상력을 발휘해 건맥 축제처럼 색다른 공간에, 참신한 스토리를 담은 축제를 많이 발굴하고 창조해 주었으면 좋겠다. 참신함은 엉뚱함과 상상력에서 나오고, 특정 공간의 가치는 적극적으로 창조하는 데서 나오기에 하는 얘기다. 그래서 상상력을 지역의 역량이라고 말하지 않던가.

나아가 시민들은 축제 때만 이런 행사를 접하기보다는 일상의 삶 속에 이런 문화가 함께하길 고대하고 있다. 일회성보다는 일상의 문화로 거듭나길 바란다. 그런 점에서 건맥 축제를 부산을 상징하는 상시 행사로 키워나가는 것도 한 번쯤 고려해 볼 일이다.

흔히 도시를 평가하는 가늠자로 ‘매직 텐(magic ten)’이라는 게 있다. 시민들이 자주 이용하고, 또 그 도시를 방문하는 사람들도 가고 싶어 하는 매력적인 곳 열 군데를 말한다. 그게 특정 거리나 광장, 시장이나 동네일 수도 있고, 카페나 대학, 공연장이나 미술관일 수도 있다. 그런 점에서 건맥 축제가 열리는 유라리광장이 ‘매직 텐’이 되지 못하란 법은 없다.

건맥 축제가 펼쳐진 유라리광장처럼 부산 도심 곳곳에는 부산만의 오감을 보여 주고, 각종 행사를 펼치기에 적합한 공간이 많다. 이를테면 부산역 뒤 북항이 내려다보이는 덱(deck) 같은 곳이다. 수많은 외지인이 드나드는 곳이기에 부산만의 공연을 펼치고 알리기에 이만한 공간도 없다. 특히 이곳은 북항을 한눈에 바라볼 수 있고 바다 쪽이 탁 트여 있어 ‘개방성’ ‘해양성’의 특색을 갖는 도시 부산의 이미지와도 잘 맞는다. 이곳에선 팬터마임이나 저글링도 좋고, 마술 공연도 괜찮다. 짧은 연극이나 한바탕 춤판이 펼쳐진다면 더 좋다. 특히 2030엑스포가 부산에 유치된다면 부산을 알리는 데, 이만한 홍보 장소도 없을 것이다. 어쩌면 유치 전인 지금이 더 절실하고 필요한지도 모른다.

탁 트인 북항을 바라보면서 부산의 문화를 즐기고 알릴 수 있다면 더 할 수 없는 공간일 터이다. 시민 입장에선 바쁘게 움직이는 도시 일상에서 공연을 매개로 잠시 휴식과 힐링을 만들어 주는 ‘문화라는 안단테(andante)’가 우리 삶에 스며든다면 그걸로 족하다.

스토리가 살아있는 곳, 상상이 살아 숨 쉬는 곳, 문화라는 안단테가 스며있는 곳, 그게 부산이란 도시였으면 좋겠다.

정달식 경제·문화 파트장 dosol@busan.com


정달식 선임기자 dosol@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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